2010년 7월 27일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 북부의 아르간다프 전투기지에서 한 아프간 병사가 탈레반과의 교전 도중 로켓포를 발사하는 모습.
1000명 이상 사망자 낳는 유혈충돌
21세기를 맞았을 때 지구 곳곳에서는 ‘밀레니엄 축제’가 벌어졌고 사람들은 평화가 뿌리내리기를 간절히 바랐다. 21세기의 문턱을 넘어선 지 10년, 새해 2011년의 지구촌 전쟁과 평화의 기상도는 어떠할까. 맑게 갠 하늘처럼 평화로운 해가 될까, 아니면 각종 유혈사태로 어수선한 해가 될까. 안타깝게도 그 대답은 평화보다 유혈 쪽이다.
일반적으로 전쟁이란 ‘교전 당사국이 1년에 10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낳는 유혈충돌’이라 정의한다. 스웨덴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발표한 ‘군비·군축·국제안보 연감’에 따르면, 21세기 들어 1년에 1000명 넘는 희생자를 낳은 전쟁이 해마다 15개 이상 벌어지고 있다(2009년 17개, 2008년 16개, 2007년 14개, 2006년 17개, 2005년 17개, 2004년 19개). SIPRI는 전쟁과 군비·군사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싱크탱크로 유명하다. SIPRI의 연감은 해마다 초여름에 나오는데, 2010년에도 16개쯤의 전쟁이 벌어진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여기에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카슈미르(인도-파키스탄 분쟁지역), 수단(서부 다르푸르 지역) 같은 분쟁지역이 포함돼 있다. SIPRI 통계로 미뤄보면, 2011년에도 1000명 이상의 사망을 강요하는 전쟁이 16~17개 벌어질 것이 틀림없다.
2011년 지구촌 분쟁 상황을 가늠해볼 수 있는 또 다른 자료가 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국제분쟁연구소(HIIK)는 지구촌에서 일어나는 여러 종류의 분쟁(국제분쟁, 내전, 정치적 유혈충돌)을 꼼꼼히 조사해 해마다 12월이 오면 그에 관한 보고서를 냈다. 지난 연말 나온 HIIK 보고서를 보면, 2010년 한 해 동안 무려 363개의 분쟁이 터졌다. 단순히 산술적으로 보면, 어림잡아 하루 한 개꼴로 충돌사태가 일어난 셈이다. 이 HIIK 보고서가 집계한 유혈충돌의 대부분은 저강도 분쟁에 그쳤지만, 28개의 ‘매우 폭력적인 분쟁(highly violent conflicts)’에서 많은 사상자가 생겨났다. HIIK 분석에 따르면 21세기 들어 지난 10년 동안 해마다 30개쯤의 폭력적인 유혈분쟁이 일어났다(2007년 31개, 2008년 31개, 2009년 33개). 2011년에도 이런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점 한 가지. 지구촌 곳곳에서 정치적 폭력과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이러한 통계는 허수에 지나지 않는다. 지구촌 분쟁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지역적으로 전쟁이 주는 고통의 편차가 크기 때문이다. 이른바 ‘소리 없는 내전’이 낳는 고통도 빼놓을 수 없다. ‘소리 없는 내전’이란 세계의 메이저 언론사들조차 관심을 크게 기울이지 않는 탓에 국제사회에 부각되지 못하는 내전을 가리킨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유혈분쟁 현장이 너무 멀고 교통이 불편해 취재기자의 접근이 쉽지 않고(아프리카 콩고 동부지역 내전의 경우) △현지 상황이 매우 위험한 데다 무장조직에 납치돼 곤욕을 치를 가능성까지 있어 언론사에서 취재기자를 아예 보내지 않거나(러시아-체첸 내전, 아프리카 소말리아 내전) △유혈분쟁을 워낙 오래 끈 탓에 상업적인 미디어들이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경우(1947년 영국에서 독립할 때부터 인도-파키스탄의 해묵은 분쟁이 계속된 지역인 카슈미르 등)로 나뉜다.
북핵 위기 한반도 기상도도 ‘흐림’
벨기에 브뤼셀에 본부를 둔 민간 싱크탱크인 국제위기감시기구(The International Crisis Group, ICG)는 올 한 해 전쟁이나 유혈폭동, 대규모 테러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16개 선정해 최근 발표했다. 그곳은 아시아 4곳(이라크, 파키스탄, 타지키스탄, 레바논), 아프리카 7곳(콩고, 소말리아, 짐바브웨, 기니, 수단, 코트디부아르, 나이지리아), 중남미 5곳(콜롬비아, 멕시코, 과테말라, 아이티, 베네수엘라)이다. 큰 그림으로 보면 아시아는 친미냐 반미냐의 정치적인 갈등이, 아프리카는 석유를 비롯한 자원을 누가 차지할 것이냐의 갈등, 중남미는 마약 문제가 유혈충돌의 주요인이다.
2011년에 가장 치열하게 전투가 벌어질 곳으로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아프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파키스탄 동부지역이 꼽힌다. 두 곳 모두 미국이 반미 이슬람무장조직(탈레반)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지역이다(파키스탄의 경우는 미국이 파키스탄군을 앞세워 벌이는 사실상의 대리전쟁 성격을 지녔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간-파키스탄 지역에서의 군사적 승리가 재선 길을 닦는 주요한 승부처이기에 전력투구할 것으로 보인다. 그에 따라 아프간-파키스탄에서 전사자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2010년 한 해 벌어진 전투로 파키스탄에서만 6899명이 죽었고 아프가니스탄에선 군인 700명, 민간인 1200명이 사망했다.
21세기 지구촌의 또 다른 고민은 고질적인 분쟁지역이다. 해마다 1000명 이상의 전쟁 희생자를 낳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카슈미르, 스리랑카(이상 아시아), 체첸(유럽), 콜롬비아(남미)는 지구촌의 단골 분쟁지역으로 꼽힌다. 이들 지역은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으며, 살아남은 사람들조차 폭력의 위협에 떨며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안타까운 일은 이런 상황이 2011년 들어 나아질 전망이 없다는 것이다.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국가를 세운 이후 유혈충돌이 끊이지 않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국경지역도 여전히 많은 민간인의 희생을 강요할 게 틀림없다.
모든 분쟁지역에 유엔평화유지군이 파견돼 있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지금 9만9000명의 유엔평화유지군(경찰 1만4000명 포함)이 푸른 헬멧을 쓰고 레바논을 비롯한 전 세계 16개 분쟁지역에서 활동 중이지만, 그들이 파병돼야 마땅한데도 그렇지 못한 곳이 훨씬 많다. 중동의 만성적 분쟁지역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같은 곳도 유엔평화유지군이 없다. 이스라엘이 주권국가임을 내세워 파병을 거부해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북한 합쳐 7200만 명(남한 4900만 명, 북한 2300만 명)이 살고 있는 한반도의 2011년 전쟁과 평화 기상도는 어떠할까. 지난해 천안함 침몰사건과 연평도 포격 도발을 거치면서 한반도 긴장지수는 훨씬 높아졌다. 그렇지만 올 한 해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질 위험은 거의 없어 보인다. 앞의 ICG 보고서도 남북한의 무력충돌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북핵 폐기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다. 6자회담이 가까운 시일 안에 다시 열릴 가능성은 낮다. 한반도를 포함한 2011년 지구촌 평화 기상도는 여전히 ‘흐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