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충북 청주시 상당경찰서 성안지구대 안. 대낮부터 술에 취한 30대 여성이 지구대로 들어왔다. 이 여성은 의자에 앉더니 몸을 가누지 못해 허리를 숙였다, 폈다를 수차례 반복했다. 갑자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여성은 경찰에게 다가가 욕설을 퍼붓고 시비를 걸었다. 욕설을 묵묵히 들은 경찰은 여성을 달래 다시 의자에 앉혔다. 조용해진 여성은 의자에 앉은 채 소변을 봤다. 당황한 경찰은 묵묵히 대걸레질을 할 뿐 손쓸 도리가 없었다.
2010년 9월 상당경찰서 용암지구대. 술에 취한 남성 2명이 들어왔다. 한 경찰이 남성 2명을 보살피려고 둘 사이에 앉았다. 그런데 갑자기 한 남성이 일어서더니 오른쪽 다리로 앉아 있던 경찰의 머리와 얼굴을 찍었다. 이를 목격했던 경찰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다행히 시력에 이상은 없었지만 얼굴 전체에 멍이 드는 등 아찔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주취자(酒醉者)가 지구대를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루에도 수십 명이 술에 취해 서로 싸우거나 기물을 파손하거나 택시비를 내지 않는 등의 이유로 지구대에 온다.
서민 생활 방해 사회적 위해사범
충북지방경찰청(이하 충북청)이 최근 ‘주폭(酒暴)’과의 전쟁을 선포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일반인에게 생소한 주폭은 충북청이 고안한 개념으로 “만취 상태에서 상습적으로 선량한 시민들에게 폭행과 협박을 해 서민의 평온한 생활을 방해하는 사회적 위해범”을 뜻한다. 충북청은 조직의 힘을 빌려 폭력을 행사하는 조폭(組暴) 못지않게 술의 힘을 빌려 주변을 위협하는 주폭이 위험하고 대책이 시급함을 알리고 있다. 흥덕경찰서 안병연 사창지구대장은 “얼굴만 봐도 이름과 그동안의 행적을 줄줄 외울 정도로 익숙한 사람도 있다. 하루에도 서너 명의 주폭이 지구대로 온다”고 말했다.
충북청이 주폭을 고안한 결정적 계기는 2010년 10월 14일 40대 남성 A씨를 구속하면서다. A씨는 술에 취하면 관할 지구대를 찾아와 경찰들에게 욕설하고 행패를 부렸다. 이른 새벽 주변 아파트에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기도 했다. 경찰은 A씨가 주변 사람을 위협하고 가족을 폭행해왔다는 제보를 받고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 끝에 경찰은 A씨가 단순한 공무집행방해 사범이 아닌 20여 년 동안 어머니를 상습적으로 발로 밟고 주먹으로 때린 존속폭행 사범임을 밝혀낼 수 있었다.
이 사건 이후 충북청은 청주 상당·흥덕서, 충주서 등에 공무집행방해 수사전담반을 2명 이상 꾸려 상습적으로 관공서에서 행패를 부리는 주폭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충북청 김성훈 치안만족관리팀장은 “‘술에 취해 지구대까지 찾아와 행패를 부릴 정도면 가족과 직장 동료, 주변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행패를 부렸을까’란 진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충북경찰은 지구대에 들어온 취객 중 공무집행방해, 폭행 등을 상습적으로 저지른 사람을 경찰서로 넘긴다. 경찰서 전담팀은 이를 맡아 공무집행뿐 아니라 가족이나 직장 동료, 이웃 주민에게 피해를 끼친 적은 없는지 CC(폐쇄회로)TV나 사진 등을 확보해 조사한다.
주폭과의 전쟁은 긍정적 효과를 낳고 있다. 전담팀이 꾸려진 뒤 구속영장 기각률이 0%로 줄었다. 시행 전인 2010년 1월 1일부터 10월 12일까지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인원 23명 중 19명이 발부돼 기각률이 17%였으나 시행 이후 12월 7일까지는 8명을 신청해 8명 모두 발부됐다. 검거 발생 사건도 시행 전 월평균 36.5명에서 시행 후 18.3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김 팀장은 “전담팀을 꾸린 뒤 주취자 행위의 위법성을 증명하는 게 훨씬 수월해졌다. 경찰도 과거에는 주폭을 공권력에 도전하는 공무집행방해범으로 생각했지만 이젠 일반 시민에게 얼마나 위해한지를 먼저 따져본다”고 밝혔다. 주폭의 잦은 폭행에 시달렸던 한 주민도 “행패를 부리던 사람이 포악한 성격이라 신고도 꺼렸는데 경찰이 알아서 잡아가주니 정말 고맙다. 해방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경찰청도 충북청의 실험을 전국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경찰청은 12월 29일 ‘국민과 선진법질서 확립을 위한 상습고질적 사회적 위해범 엄정 대응방안’을 각 지방청에 하달해 전국 248개 경찰서에 843명의 수사 인원을 배치하게 했다. 경찰청 형사과 관계자는 “치안 현장에서 공무집행방해를 하는 주폭은 경찰의 업무 부담을 늘린다. 결국 공권력을 떨어뜨리고 치안 서비스를 약화시키니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갔다. 이 악순환을 끊으려는 시도다”고 말했다.
부산 경찰도 치료·보호 프로그램 운영
하지만 시민들은 “경찰이 더 분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청주시 택시운전사 전모(64) 씨는 “주폭이란 말을 처음 들었다. 술에 취해 난동 부리는 승객도 여전하다. 난동을 부리는 승객을 지구대에 신고해도 여전히 귀찮아하거나 늦게 처리해준다”고 말했다. 한 지구대의 경찰도 “경찰 내부에서 호응을 얻고 있지만 아직 주폭이 줄었다고 실감하기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현장에서 주폭을 상대하는 경찰들은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한 지구대 경찰은 “상습적으로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는 사람 대부분은 알코올중독 증세를 보인다. 이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구대 처벌이 아닌 치료다”고 말했다. 충북청이 있는 청주에는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운영하는 청주 알코올상담센터가 있지만 ‘주폭 대처’에는 무용지물이다. 이 센터 관계자는 “상담을 받고 정기적으로 치료하는 사람은 꽤 있다. 하지만 정작 주폭으로 불릴 만큼 심한 상습적 주취자는 찾아오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알코올상담센터 이상의 병원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상습적 주취자가 대부분 생계가 어려워 일반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경제적 형편이 안 된다는 점이다.
부산지방경찰청은 상습 주취 소란자에 대한 치료·보호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부산 경찰은 주폭의 이력을 조회해 과거에도 비슷한 행패, 폭력을 행사했는지 조사하고 본인이나 가족의 동의 아래 병원에서 알코올 치료 프로그램을 받도록 한다. 비용은 병원과 환자가 나눠 부담한다. 이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경찰은 “일단 상습적인 주취자는 의료기관에 연계해주고 치료를 먼저 받게 한다. 그 후 공무집행방해죄 등의 위법성을 판단한다”고 말했다. 충북청도 부산청의 프로그램을 참고해 주폭의 치료와 보호를 도울 예정이다.
2010년 9월 상당경찰서 용암지구대. 술에 취한 남성 2명이 들어왔다. 한 경찰이 남성 2명을 보살피려고 둘 사이에 앉았다. 그런데 갑자기 한 남성이 일어서더니 오른쪽 다리로 앉아 있던 경찰의 머리와 얼굴을 찍었다. 이를 목격했던 경찰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다행히 시력에 이상은 없었지만 얼굴 전체에 멍이 드는 등 아찔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주취자(酒醉者)가 지구대를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루에도 수십 명이 술에 취해 서로 싸우거나 기물을 파손하거나 택시비를 내지 않는 등의 이유로 지구대에 온다.
서민 생활 방해 사회적 위해사범
충북지방경찰청(이하 충북청)이 최근 ‘주폭(酒暴)’과의 전쟁을 선포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일반인에게 생소한 주폭은 충북청이 고안한 개념으로 “만취 상태에서 상습적으로 선량한 시민들에게 폭행과 협박을 해 서민의 평온한 생활을 방해하는 사회적 위해범”을 뜻한다. 충북청은 조직의 힘을 빌려 폭력을 행사하는 조폭(組暴) 못지않게 술의 힘을 빌려 주변을 위협하는 주폭이 위험하고 대책이 시급함을 알리고 있다. 흥덕경찰서 안병연 사창지구대장은 “얼굴만 봐도 이름과 그동안의 행적을 줄줄 외울 정도로 익숙한 사람도 있다. 하루에도 서너 명의 주폭이 지구대로 온다”고 말했다.
충북청이 주폭을 고안한 결정적 계기는 2010년 10월 14일 40대 남성 A씨를 구속하면서다. A씨는 술에 취하면 관할 지구대를 찾아와 경찰들에게 욕설하고 행패를 부렸다. 이른 새벽 주변 아파트에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기도 했다. 경찰은 A씨가 주변 사람을 위협하고 가족을 폭행해왔다는 제보를 받고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 끝에 경찰은 A씨가 단순한 공무집행방해 사범이 아닌 20여 년 동안 어머니를 상습적으로 발로 밟고 주먹으로 때린 존속폭행 사범임을 밝혀낼 수 있었다.
이 사건 이후 충북청은 청주 상당·흥덕서, 충주서 등에 공무집행방해 수사전담반을 2명 이상 꾸려 상습적으로 관공서에서 행패를 부리는 주폭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충북청 김성훈 치안만족관리팀장은 “‘술에 취해 지구대까지 찾아와 행패를 부릴 정도면 가족과 직장 동료, 주변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행패를 부렸을까’란 진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충북경찰은 지구대에 들어온 취객 중 공무집행방해, 폭행 등을 상습적으로 저지른 사람을 경찰서로 넘긴다. 경찰서 전담팀은 이를 맡아 공무집행뿐 아니라 가족이나 직장 동료, 이웃 주민에게 피해를 끼친 적은 없는지 CC(폐쇄회로)TV나 사진 등을 확보해 조사한다.
주폭과의 전쟁은 긍정적 효과를 낳고 있다. 전담팀이 꾸려진 뒤 구속영장 기각률이 0%로 줄었다. 시행 전인 2010년 1월 1일부터 10월 12일까지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인원 23명 중 19명이 발부돼 기각률이 17%였으나 시행 이후 12월 7일까지는 8명을 신청해 8명 모두 발부됐다. 검거 발생 사건도 시행 전 월평균 36.5명에서 시행 후 18.3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김 팀장은 “전담팀을 꾸린 뒤 주취자 행위의 위법성을 증명하는 게 훨씬 수월해졌다. 경찰도 과거에는 주폭을 공권력에 도전하는 공무집행방해범으로 생각했지만 이젠 일반 시민에게 얼마나 위해한지를 먼저 따져본다”고 밝혔다. 주폭의 잦은 폭행에 시달렸던 한 주민도 “행패를 부리던 사람이 포악한 성격이라 신고도 꺼렸는데 경찰이 알아서 잡아가주니 정말 고맙다. 해방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경찰청도 충북청의 실험을 전국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경찰청은 12월 29일 ‘국민과 선진법질서 확립을 위한 상습고질적 사회적 위해범 엄정 대응방안’을 각 지방청에 하달해 전국 248개 경찰서에 843명의 수사 인원을 배치하게 했다. 경찰청 형사과 관계자는 “치안 현장에서 공무집행방해를 하는 주폭은 경찰의 업무 부담을 늘린다. 결국 공권력을 떨어뜨리고 치안 서비스를 약화시키니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갔다. 이 악순환을 끊으려는 시도다”고 말했다.
경찰이 취객을 말려보지만 역부족이다.
하지만 시민들은 “경찰이 더 분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청주시 택시운전사 전모(64) 씨는 “주폭이란 말을 처음 들었다. 술에 취해 난동 부리는 승객도 여전하다. 난동을 부리는 승객을 지구대에 신고해도 여전히 귀찮아하거나 늦게 처리해준다”고 말했다. 한 지구대의 경찰도 “경찰 내부에서 호응을 얻고 있지만 아직 주폭이 줄었다고 실감하기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현장에서 주폭을 상대하는 경찰들은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한 지구대 경찰은 “상습적으로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는 사람 대부분은 알코올중독 증세를 보인다. 이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구대 처벌이 아닌 치료다”고 말했다. 충북청이 있는 청주에는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운영하는 청주 알코올상담센터가 있지만 ‘주폭 대처’에는 무용지물이다. 이 센터 관계자는 “상담을 받고 정기적으로 치료하는 사람은 꽤 있다. 하지만 정작 주폭으로 불릴 만큼 심한 상습적 주취자는 찾아오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알코올상담센터 이상의 병원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상습적 주취자가 대부분 생계가 어려워 일반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경제적 형편이 안 된다는 점이다.
부산지방경찰청은 상습 주취 소란자에 대한 치료·보호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부산 경찰은 주폭의 이력을 조회해 과거에도 비슷한 행패, 폭력을 행사했는지 조사하고 본인이나 가족의 동의 아래 병원에서 알코올 치료 프로그램을 받도록 한다. 비용은 병원과 환자가 나눠 부담한다. 이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경찰은 “일단 상습적인 주취자는 의료기관에 연계해주고 치료를 먼저 받게 한다. 그 후 공무집행방해죄 등의 위법성을 판단한다”고 말했다. 충북청도 부산청의 프로그램을 참고해 주폭의 치료와 보호를 도울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