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자, 존스홉킨스대학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저서 ‘역사의 종언’을 통해 “세계화란 비(非)서구 세계가 서구화되는 것”이라며 “인간이 만든 정치 체제의 최종 형태는 서구의 자유민주주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약 20년이 지난 지금 이런 주장은 수정이 필요하다. 거대한 대륙에서 천하를 놓고 한판 승부를 벌인 후 국민당을 대만으로 몰아내고 1949년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한 중국이 20세기 굴욕의 역사를 청산하고 세계를 향해 포효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서구식 민주주의 제도의 도입 없이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로 당당히 미-중 양극체제를 구축했다. 이로써 미국의 보수논객 후쿠야마 교수의 자신에 찬 주장을 완전히 뒤엎었다.
1990년대 구미 학계에서는 ‘중국 붕괴론’ ‘중국 분열론’이 유행했다. 그러나 중국은 붕괴하지도, 분열되지도 않았다. 오히려 21세기 이후 국제사회에서 영향력과 역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부터 ‘대국굴기’(大國堀起·대국으로 우뚝 솟아오른다)에 이르기까지 날카로운 발톱을 조금씩 드러내며 경제력과 군사력을 키워 세계 초강대국으로 우뚝 섰다.
책임대국인가 패권국가인가
영국 언론인 제임스 킹은 세계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을 강조하면서 “중국의 수요 증가로 고철 가격이 급등하자 전 세계 도로에서 맨홀 뚜껑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중국의 중력은 지구 반대편에까지 미쳤다”며 중국의 급상승을 설명한 바 있다. 국제문제 전문가인 마틴 자크는 저서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When China Rules the World)’을 통해 “어떠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중국은 경제성장을 지속하면서 미국과 함께 양대 강국으로 부상하고, 궁극적으로 유일한 세계 강대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뒤집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미국 단극체제에서 이미 미-중 양극체제로 바뀌었으며 머지않아 중국 단극체제, 즉 ‘중국 천하’로 옮겨갈 가능성이 있음을 언급했다.
중국에 대한 시각이 ‘중국 붕괴론’ ‘중국 분열론’에서 ‘중국 위협론’ ‘중국 책임론’으로 바뀌어가는 현시점에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을 방문해 전 세계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다. 후 주석의 방미를 앞두고 많은 외교 전문가가 이를 1979년 1월 덩샤오핑(鄧小平)의 미국 방문 이후 최대 사건으로 부각했다. 또 후 주석의 10년 집권을 결산한다는 점에서 이번 방문은 미중 관계에 중요한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고 봤다. 특히 강한 경제력으로 무장한 중국이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책임대국’으로 나아갈지, 아니면 또 다른 ‘패권국가’로 향할지 알 수 있는 잣대가 될 것이며, 중국 외교가 진정한 시험대에 올랐다고 분석했다.
초미의 관심 속에 1월 19일 오전(현지시각)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 중국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을 했다. 핵심 이슈는 ‘안보와 경제’였다. 안보 안건에서는 한반도 평화와 북한 핵문제를 중요하게 다뤘다. 후 주석은 정상회담 후 가진 공동회견에서 “중국과 미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한반도의 비핵화를 촉진하며, 동북아의 지속적인 평화·안보를 위해 관련 당사자들과 공조·협력하며 함께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말해, 중국의 대(對)동북아 인식은 기존의 입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후 주석이 ‘동북아의 지속적인 평화·안보’를 언급한 부분이다. 2010년엔 천안함 폭침과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 등으로 한반도 안보위기가 고조되면서 미중·한중·남북 관계가 삐걱거렸다. 이런 점에서 후 주석의 언급은 이제 갈등과 반목을 끝내고, 공조와 협력 강화로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포함한 불안정 요인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자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중국의 북한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에 대한 우려 입장 표명은 판단 유보 입장을 보인 과거에 비해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위안화 절상문제, 인권문제 등과 관련해서는 양국 정상 간 이견을 보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대중국 적자 폭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미-중 간 교역의 공정성을 강조하며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상을 요구했다. 특히 중국 정부의 환율시장에 대한 인위적인 개입으로 위안화는 여전히 평가절하된 상태라는 생각을 확실히 표명했다.
이에 중국은 위안화 절상문제에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다만 미국 내 여론을 무마하려는 듯 보잉(Boeing) 항공기 200대 등을 포함해 450억 달러 규모의 미국 수출품을 구매했다. 이는 미국 내 일자리를 23만5000개 창출하는 효과가 있다.
중국의 인권문제와 관련해 미국은 “세계는 더욱 정의로운 사회로 발전하고 있으며 인류의 보편적 권리인 인권이 신장되고 있다”고 말하면서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와 중국 정부 대표들이 만남을 통해 대화로 인권문제를 풀어나가길 바란다”는 뜻을 전달했다. 이에 중국은 “인권의 보편성을 존중하지만 국가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다. 중국은 여전히 많은 다른 도전과제에 직면해 있다. 인권문제에 대해선 미국과 중국 사이에 이견이 있지만, 상호 존중과 내정 불간섭이라는 토대 위에서 미국과 인권 대화를 해나갈 용의가 있다”는 말로 기존의 입장을 답습했다. 이는 미국의 일방적인 주문을 수용하지 않고 상호 존중과 협력을 기반으로 문제를 천천히 풀어나가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모호성 전략, 줄타기 시도
이번 미-중 정상회담 때 위안화 절상, 대만 무기 판매 등 민감한 문제에서는 이견이 존재했다. 하지만 중국은 이번 회담에서도 그들 특유의 전략, 즉 공통점을 추구하고 차이점을 남겨두는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자세를 보였다. 세계는 중국이 현재의 위상에 걸맞게 책임 있는 대국으로 분명히 행동하기를 원하지만 중국은 여전히 ‘모호성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즉 국제사회가 제기하는 ‘중국 위협론’과 ‘중국 책임론’ 사이에서 줄타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향후 양국 관계를 전망해보면, 미국 처지에서는 동북아에서 주도적 지위를 강화하기 위해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 불가피할 것이다. 동시에 경제적인 이해관계 측면에서 중국이라는 시장이 지닌 거대한 잠재력을 뿌리칠 수도 없다. 중국 또한 자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미국과 갈등하기보다는 더욱 긴밀한 관계를 추구하는 게 훨씬 바람직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결국 향후 미-중 관계는 완전한 대립도, 완전한 협력도 아닌 전체적인 상호 견제 속에 사안별 협력의 형태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구미 학계에서는 ‘중국 붕괴론’ ‘중국 분열론’이 유행했다. 그러나 중국은 붕괴하지도, 분열되지도 않았다. 오히려 21세기 이후 국제사회에서 영향력과 역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부터 ‘대국굴기’(大國堀起·대국으로 우뚝 솟아오른다)에 이르기까지 날카로운 발톱을 조금씩 드러내며 경제력과 군사력을 키워 세계 초강대국으로 우뚝 섰다.
책임대국인가 패권국가인가
영국 언론인 제임스 킹은 세계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을 강조하면서 “중국의 수요 증가로 고철 가격이 급등하자 전 세계 도로에서 맨홀 뚜껑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중국의 중력은 지구 반대편에까지 미쳤다”며 중국의 급상승을 설명한 바 있다. 국제문제 전문가인 마틴 자크는 저서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When China Rules the World)’을 통해 “어떠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중국은 경제성장을 지속하면서 미국과 함께 양대 강국으로 부상하고, 궁극적으로 유일한 세계 강대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뒤집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미국 단극체제에서 이미 미-중 양극체제로 바뀌었으며 머지않아 중국 단극체제, 즉 ‘중국 천하’로 옮겨갈 가능성이 있음을 언급했다.
중국에 대한 시각이 ‘중국 붕괴론’ ‘중국 분열론’에서 ‘중국 위협론’ ‘중국 책임론’으로 바뀌어가는 현시점에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을 방문해 전 세계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다. 후 주석의 방미를 앞두고 많은 외교 전문가가 이를 1979년 1월 덩샤오핑(鄧小平)의 미국 방문 이후 최대 사건으로 부각했다. 또 후 주석의 10년 집권을 결산한다는 점에서 이번 방문은 미중 관계에 중요한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고 봤다. 특히 강한 경제력으로 무장한 중국이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책임대국’으로 나아갈지, 아니면 또 다른 ‘패권국가’로 향할지 알 수 있는 잣대가 될 것이며, 중국 외교가 진정한 시험대에 올랐다고 분석했다.
초미의 관심 속에 1월 19일 오전(현지시각)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 중국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을 했다. 핵심 이슈는 ‘안보와 경제’였다. 안보 안건에서는 한반도 평화와 북한 핵문제를 중요하게 다뤘다. 후 주석은 정상회담 후 가진 공동회견에서 “중국과 미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한반도의 비핵화를 촉진하며, 동북아의 지속적인 평화·안보를 위해 관련 당사자들과 공조·협력하며 함께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말해, 중국의 대(對)동북아 인식은 기존의 입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후 주석이 ‘동북아의 지속적인 평화·안보’를 언급한 부분이다. 2010년엔 천안함 폭침과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 등으로 한반도 안보위기가 고조되면서 미중·한중·남북 관계가 삐걱거렸다. 이런 점에서 후 주석의 언급은 이제 갈등과 반목을 끝내고, 공조와 협력 강화로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포함한 불안정 요인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자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중국의 북한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에 대한 우려 입장 표명은 판단 유보 입장을 보인 과거에 비해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위안화 절상문제, 인권문제 등과 관련해서는 양국 정상 간 이견을 보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대중국 적자 폭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미-중 간 교역의 공정성을 강조하며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상을 요구했다. 특히 중국 정부의 환율시장에 대한 인위적인 개입으로 위안화는 여전히 평가절하된 상태라는 생각을 확실히 표명했다.
이에 중국은 위안화 절상문제에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다만 미국 내 여론을 무마하려는 듯 보잉(Boeing) 항공기 200대 등을 포함해 450억 달러 규모의 미국 수출품을 구매했다. 이는 미국 내 일자리를 23만5000개 창출하는 효과가 있다.
중국의 인권문제와 관련해 미국은 “세계는 더욱 정의로운 사회로 발전하고 있으며 인류의 보편적 권리인 인권이 신장되고 있다”고 말하면서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와 중국 정부 대표들이 만남을 통해 대화로 인권문제를 풀어나가길 바란다”는 뜻을 전달했다. 이에 중국은 “인권의 보편성을 존중하지만 국가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다. 중국은 여전히 많은 다른 도전과제에 직면해 있다. 인권문제에 대해선 미국과 중국 사이에 이견이 있지만, 상호 존중과 내정 불간섭이라는 토대 위에서 미국과 인권 대화를 해나갈 용의가 있다”는 말로 기존의 입장을 답습했다. 이는 미국의 일방적인 주문을 수용하지 않고 상호 존중과 협력을 기반으로 문제를 천천히 풀어나가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모호성 전략, 줄타기 시도
이번 미-중 정상회담 때 위안화 절상, 대만 무기 판매 등 민감한 문제에서는 이견이 존재했다. 하지만 중국은 이번 회담에서도 그들 특유의 전략, 즉 공통점을 추구하고 차이점을 남겨두는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자세를 보였다. 세계는 중국이 현재의 위상에 걸맞게 책임 있는 대국으로 분명히 행동하기를 원하지만 중국은 여전히 ‘모호성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즉 국제사회가 제기하는 ‘중국 위협론’과 ‘중국 책임론’ 사이에서 줄타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향후 양국 관계를 전망해보면, 미국 처지에서는 동북아에서 주도적 지위를 강화하기 위해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 불가피할 것이다. 동시에 경제적인 이해관계 측면에서 중국이라는 시장이 지닌 거대한 잠재력을 뿌리칠 수도 없다. 중국 또한 자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미국과 갈등하기보다는 더욱 긴밀한 관계를 추구하는 게 훨씬 바람직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결국 향후 미-중 관계는 완전한 대립도, 완전한 협력도 아닌 전체적인 상호 견제 속에 사안별 협력의 형태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