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도쿄에서 열린 한 취업설명회에서 대졸자들이 면담을 기다리며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일본 경제는 긴 불황 끝에 2000년대 중반부터 회복세를 보였으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다시 침체의 늪에 빠졌다. 현재 한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는 것에 비해 일본은 경기 회복이 요원한 상태이고 주가 회복률도 주요 국가 중 가장 낮다. 게다가 2010년도 명목 국내총생산(GDP)에서 사상 처음으로 중국에 뒤져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자리를 내줄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1968년 서독을 제치고 2위에 올라선 뒤 42년 만의 3위 전락이다.
취직 못한 학생들 도심에서 데모
일본에선 대학 졸업생들의 취업률이 최악의 상황을 맞은 2000년 전후를 ‘취직 빙하기’라고 부른다. 그런데 최근 취업 사정이 더욱 얼어붙자 매스컴 등에선 ‘빙하기 재습’ ‘초빙하기 엄습’이라는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다. 11월 23일 ‘근로자의 날’을 맞아 도쿄(東京) 신주쿠(新宿) 번화가에서 대학생 50여 명이 ‘취업 어떻게 좀 해봐’ ‘내정을 달라’고 외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취직 빙하기에 더 주목받는 이들이 있다. 바로 대학 운동부 출신이다. 12월 5일 도쿄의 전자상가 아키하바라(秋葉原)에 있는 한 빌딩에서 ‘도쿄 6대학 취직리그’라는 취업 행사가 열렸다. 도쿄 6대학이란 도쿄대, 와세다(早稻田)대, 게이오(慶應)대, 메이지(明治)대, 호세이(法政)대, 릿쿄(立敎)대를 가리킨다. 이들 학교에는 인기 구기 종목을 비롯해 육상, 수영, 유도 등 많은 종목의 운동부가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명문이고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도쿄 6대학은 전통적으로 이들 대학만 참가하는 리그전이 있다. 각 종목의 결승전에는 수만 명의 재학생, 졸업생이 모여 열띤 응원전을 펼칠 뿐 아니라 일반인도 상당한 관심을 갖는다.
보통 대학 운동부 출신은 프로팀에 가거나 실업팀이 있는 일반 회사에 취업하며, 아예 운동을 그만두고 일반 회사 등에 취업하는 길을 택한다. 실업팀은 인기 구기 종목을 비롯해 유도, 육상, 아이스하키, 미식축구 등 종목별로 있으나 장기불황으로 최근 팀을 해체한 기업이 많다.
도쿄 6대학 취직리그는 6개 대학에 소속된 운동부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한 합동 기업설명회다. 참가 기업은 상사, 제약, 금융, 통신 등 유명 기업 25개 사. 도쿄 6대학 운동부 학생 중 일반 회사에 취업을 희망하는 3학년 학생은 2000명에 이른다. 이날 행사에는 그중 3분의 1 정도인 약 650명이 참가했다. 기업에서 운동부 출신 사원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행사에 참석한 기업들은 “지난해 채용 인원의 절반을 운동부 출신으로 뽑았다”(제약회사), “운동부 출신은 어떤 일에 집중하는 능력이 있으므로, 업무에 자신을 가지고 있다”(종합상사), “(우승 등의) 목표를 가지고 학생 생활을 보낸 것을 높이 평가한다”(제약회사), “동기생 중 리더십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금융회사) 등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일반 학생보다 조직에 잘 적응
최근 취직하고 싶은 기업 랭킹에서 늘 상위를 차지하는 종합상사들도 매년 신입사원 모집정원의 10% 안팎을 럭비, 미식축구 등의 운동을 한 학생을 뽑는다. 공무원 시험에서도 재학시절 운동을 한 학생이 면접점수 등에서 우대를 받는 경우가 많다. 이는 기업과 관청 등이 운동부 학생 특유의 체력과 협동, 희생, 적극성, 리더십을 높이 평가하고, 그러한 면을 업무에서 발휘해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기업은 특히 운동부 출신들의 인맥과 조직운영 경험을 기대한다. 운동부는 선배, 동기, 후배와의 연대의식이 일반인보다 훨씬 강해 이 같은 관계가 취직 후 업무에서 유용할 것으로 생각한다.
도쿄 6대학 운동부의 경우, 대부분 부의 역사가 길고 와세다대나 게이오대 야구부처럼 창설 100년을 넘긴 부도 있다. 그래서 운동부 출신은 수많은 기업과 단체에 선후배 등이 있어 그 인맥을 비즈니스에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어느 보험회사에 입사한 와세다대 럭비부 출신이 와세다대뿐 아니라 전국 각지의 고교, 대학 럭비부 출신에게 보험상품 가입을 권유해, 회사 내에서 가장 많은 약정고를 올린 것이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운동부 출신이 유명 기업의 사장으로 승진하는 경우도 가끔 매스컴에 보도된다.
한편 이 행사를 주관한 취업 관련 회사의 중역은 “규모가 큰 운동부의 경우 한 해 예산이 수억 엔에 이른다. 운동부 출신은 부 운영으로 기업조직을 간접 체험한 셈”이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운동부 출신은 일반 학생보다 기업에 들어가 조직인으로 잘 적응한다는 평이다.
이 행사를 연 회사는 12월 12일엔 간사이(關西) 지방의 리쓰메이칸(立命館)대 등 사립명문 4대학과 교토(京都)대 등 3개 국립대학 운동부 학생 취업을 위한 ‘간사이 7대학 취직리그’를 오사카(大阪)에서 개최했다. 한국에선 신입사원 선발 때 운동부 출신 우대는 아직 찾아보기 어려운 현상이나, 운동부 출신이 적합한 업종이라면 한번 관심을 가져볼 만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