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해본다. 사랑스럽게 당신의 가슴을 빨던 아기가 피고름이 뒤범벅된 좀비가 돼 달려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늘 헌신적이고 다정했던 어머니가 생고기에 눈이 먼 ‘식신’ 좀비가 된다면 당신은 그 존재를 몽둥이로 내려칠 수 있을 것인가. 가족, 친구, 연인이 피부가 벗겨지고 몸통이 뒤틀리며 눈이 튀어나오는 모습을 볼 때, 당신은 죽음을 불사하고 그들과 함께할 것인가, 아니면 줄행랑칠 것인가.
‘되살아난 시체’를 뜻하는 ‘좀비(zombie)’. 원래 주술로 죽은 이를 살린다는 미신에서 유래했지만, 현대에 들어 치명적인 전염병에 걸려 죽었다가 살아나 다시 그 병을 옮기는 괴바이러스 감염자로 널리 쓰인다. 그동안 서양에서는 좀비를 소재로 한 소설과 영화가 끊임없이 생산됐고, ‘나는 전설이다’(오른쪽 사진) ‘레지던트 이블’ 등은 우리나라에서도 히트를 했다. 그런데 ‘대학로 좀비 습격사건’(구현 작·2009), ‘좀비들’(김중혁 작·2010) 등 지극히 서구적 소재인 좀비를 다룬 국내 작품이 속속 등장해 마니아층을 넘어선 인기를 누리고 있다. 장르 문학을 소개해온 황금가지 출판사에서는 2009년 11월부터 2010년 2월까지 ZA(Zombie Apocalypse) 문학 공모전을 진행했고, 6월엔 수상 작품집인 ‘섬, 그리고 좀비’를 내기도 했다. 장르 문학 중에서도 비주류로 취급받는 좀비 문학이 최근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마니아 독자 늘어 창작 환경 조성
“놈이 어느 정도 식욕을 채웠는지 리포터에게서 떨어져나갔다. 그녀의 목에서 핏줄기가 곧게 치솟았다. 더 경악스러운 상황은 그 직후에 일어났다. 그녀가 좀비처럼 몸을 꿈틀대더니 갑자기 피부가 일그러지고, 온몸에 기포 같은 것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핫팬츠와 블라우스가 찢어지고 맨몸이 드러났지만, 성적인 징후는 어디에도 없었다. 눈알이 툭 불거지고 머리카락이 뭉텅뭉텅 빠져나가면서 좀비로 변신하는 과정이 카메라에 생생하게 담겼다. 그리고 쇳소리를 내며 카메라맨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대학로 좀비 습격사건’)
얼굴과 몸이 문드러지고 뇌는 사라져 본능, 그중에서도 식욕만 남아 생고기와 피를 갈망하는 좀비는, 지능이 있고 이성이 살아 있으며 여전히 매력적인 외모를 지닌 흡혈귀보다 열등하지만, 그만큼 더 무서운 존재다. 또 전염성이 강해 좀비에게 물리거나 살짝 긁히기만 해도, 그 사람도 좀비가 된다. ZA 문학 공모전 심사를 담당했던 이종호 작가는 “지구상의 인류 종말을 그리는 데 좀비만큼 강력한 도구는 없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20세기 말과 21세기 초 세기말적 세계관을 담은 좀비 영화와 게임, 소설 등이 많이 탄생했고 큰 인기를 누렸다”면서 “우리나라에 게임과 영화의 형태로 소개되면서 국내 독자들이 좀비 소재 작품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심지어 창작을 하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설명했다.
좀비 문학에서는 항상 좀비로 인해 인류가 멸망한 뒤 고독하게 살아남은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도망치고, 은둔처에 숨어 몇 달씩 혼자 살아간다. ‘섬, 그리고 좀비’에 수록된 단편인 ‘섬’의 주인공은 자신만 살아남은 아파트를 ‘섬’으로 묘사했다. 좀비가 된 부모를 다시 한 번 죽인 뒤 그들의 썩은 피부껍질을 뒤집어쓴 채 좀비인 척 살아가는 주인공은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것조차 지루해지자 결국 아파트 옥상에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한다.
좀비 문학 마니아이기도 한 황금가지 출판사 편집부 김준혁 부장은 “좀비 문학이 인기를 끄는 가장 큰 이유는 인류가 멸망한 지구에 혼자 살아남은 극도의 고립감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독감을 잘 묘사해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 많던 걸그룹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애들도 좀비가 됐을까? 상상만 해도 언짢아진다.”(‘섬’)
“좀비 바이러스는 남일당 사건이 있었던 서울 용산에서 시작되고, 좀비 수용소는 세종시에 세워진다. 외국인 노동자 대신 좀비들이 공장에서 일을 하고 농촌에서 농사도 짓는다. 그러다 보니 ‘친인간농산물’ 등급을 받은 농산물은 몇 배 비싼 가격으로 팔린다.”(‘어둠의 맛’)
우리나라 젊은 작가들이 창작한 좀비 문학은 서양의 작품과는 차이가 있다. 서양의 작품은 ‘롤플레잉’ 게임을 하는 것처럼 인간과 좀비의 대결구도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지만 우리나라 작품은 한국적인 상황을 듬뿍 담아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섬, 그리고 좀비’ 수록작인 ‘어둠의 맛’에서 보듯 좀비는 현실 정치와 사회를 풍자하는 소재로 사용된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파동과 2009년 신종플루 공포 등을 빗댄 설정도 여러 작품에서 나타난다. 즉 좀비를 통해 개인의 외로움이나 가족 간 갈등, 정치·사회적 문제 등 기존에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색다른 방식으로, 즉 유머를 곁들여 표현한다는 것.
또 좀비들은 단순히 악의 무리가 아닌 저마다 사연을 지닌 존재로 나타난다. ‘대학로 좀비 습격사건’에서는 ‘목걸이 좀비’ ‘반지 좀비’ ‘사무라이 좀비’ ‘아기 좀비’ ‘폭력배 좀비’ ‘꽃을 든 좀비’ 등 좀비들의 사연을 하나하나 설명해준다. 저자인 구현 작가는 “좀비가 되기 전 그들도 우리 주변에서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인간이었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가족이 좀비가 된다면?
특히 우리나라 작품은 좀비가 원래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연인이었다는 사실을 결코 버리지 못한다. 김준혁 부장은 “외국의 좀비 문학은 좀비 바이러스가 퍼져 세상이 멸망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가족이나 친구, 연인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 고작 주인공이 ‘부모님도 돌아가셨겠지’라고 독백하는 정도다. 심지어 좀비가 된 부모도 ‘쿨하게’ 죽여버린다. 하지만 우리나라 작품은 주인공이 가족이나 사랑하는 이들이 좀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좀비가 됐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고 설명했다.
김중혁 작가의 ‘좀비들’은 아예 좀비를 처단해야 할 괴물이나 공포의 대상으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 세상으로 불려나온 이들은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무자비하게 ‘사체실험’을 당하는 불쌍한 존재일 뿐. 심지어 이들을 팔아넘겨 좀비로 만든 것도, 그래서 괴로워하고 힘들어하는 것도 이들의 가족이자 이웃이다. 김 작가는 “좀비를 세상을 종말시키는 ‘바이러스 덩어리’가 아닌 산 자와 죽은 자를 연결하는 매개로 봤다. 존재는 죽었지만 육체는 멀쩡하고, 살아 있다고 하기엔 아무런 기억과 이성이 없는 중간자인 좀비를 통해,살아 있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은 죽은 이들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좀비는 과학적으로 볼 때 현실에서 결코 나타날 수 없는 존재다. 그렇기에 현실 속 우리 모습을 투영하기가 쉽다. 좀비는 무서운 괴물이 될 수도 있지만 사회적 약자가 될 수도 있고, 어쩔 수 없이 버려진 가족이 될 수도 있다. 이종호 작가는 “작가는 좀비라는 꼭두각시를 통해 다양한 이슈를 우회적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좀비라는 소재가 가진 극단적인 단순함이 좀비 문학 작품들의 흐름을 비슷하게 만드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되살아난 시체’를 뜻하는 ‘좀비(zombie)’. 원래 주술로 죽은 이를 살린다는 미신에서 유래했지만, 현대에 들어 치명적인 전염병에 걸려 죽었다가 살아나 다시 그 병을 옮기는 괴바이러스 감염자로 널리 쓰인다. 그동안 서양에서는 좀비를 소재로 한 소설과 영화가 끊임없이 생산됐고, ‘나는 전설이다’(오른쪽 사진) ‘레지던트 이블’ 등은 우리나라에서도 히트를 했다. 그런데 ‘대학로 좀비 습격사건’(구현 작·2009), ‘좀비들’(김중혁 작·2010) 등 지극히 서구적 소재인 좀비를 다룬 국내 작품이 속속 등장해 마니아층을 넘어선 인기를 누리고 있다. 장르 문학을 소개해온 황금가지 출판사에서는 2009년 11월부터 2010년 2월까지 ZA(Zombie Apocalypse) 문학 공모전을 진행했고, 6월엔 수상 작품집인 ‘섬, 그리고 좀비’를 내기도 했다. 장르 문학 중에서도 비주류로 취급받는 좀비 문학이 최근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마니아 독자 늘어 창작 환경 조성
“놈이 어느 정도 식욕을 채웠는지 리포터에게서 떨어져나갔다. 그녀의 목에서 핏줄기가 곧게 치솟았다. 더 경악스러운 상황은 그 직후에 일어났다. 그녀가 좀비처럼 몸을 꿈틀대더니 갑자기 피부가 일그러지고, 온몸에 기포 같은 것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핫팬츠와 블라우스가 찢어지고 맨몸이 드러났지만, 성적인 징후는 어디에도 없었다. 눈알이 툭 불거지고 머리카락이 뭉텅뭉텅 빠져나가면서 좀비로 변신하는 과정이 카메라에 생생하게 담겼다. 그리고 쇳소리를 내며 카메라맨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대학로 좀비 습격사건’)
얼굴과 몸이 문드러지고 뇌는 사라져 본능, 그중에서도 식욕만 남아 생고기와 피를 갈망하는 좀비는, 지능이 있고 이성이 살아 있으며 여전히 매력적인 외모를 지닌 흡혈귀보다 열등하지만, 그만큼 더 무서운 존재다. 또 전염성이 강해 좀비에게 물리거나 살짝 긁히기만 해도, 그 사람도 좀비가 된다. ZA 문학 공모전 심사를 담당했던 이종호 작가는 “지구상의 인류 종말을 그리는 데 좀비만큼 강력한 도구는 없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20세기 말과 21세기 초 세기말적 세계관을 담은 좀비 영화와 게임, 소설 등이 많이 탄생했고 큰 인기를 누렸다”면서 “우리나라에 게임과 영화의 형태로 소개되면서 국내 독자들이 좀비 소재 작품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심지어 창작을 하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설명했다.
좀비 문학에서는 항상 좀비로 인해 인류가 멸망한 뒤 고독하게 살아남은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도망치고, 은둔처에 숨어 몇 달씩 혼자 살아간다. ‘섬, 그리고 좀비’에 수록된 단편인 ‘섬’의 주인공은 자신만 살아남은 아파트를 ‘섬’으로 묘사했다. 좀비가 된 부모를 다시 한 번 죽인 뒤 그들의 썩은 피부껍질을 뒤집어쓴 채 좀비인 척 살아가는 주인공은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것조차 지루해지자 결국 아파트 옥상에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한다.
좀비 문학 마니아이기도 한 황금가지 출판사 편집부 김준혁 부장은 “좀비 문학이 인기를 끄는 가장 큰 이유는 인류가 멸망한 지구에 혼자 살아남은 극도의 고립감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독감을 잘 묘사해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 많던 걸그룹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애들도 좀비가 됐을까? 상상만 해도 언짢아진다.”(‘섬’)
“좀비 바이러스는 남일당 사건이 있었던 서울 용산에서 시작되고, 좀비 수용소는 세종시에 세워진다. 외국인 노동자 대신 좀비들이 공장에서 일을 하고 농촌에서 농사도 짓는다. 그러다 보니 ‘친인간농산물’ 등급을 받은 농산물은 몇 배 비싼 가격으로 팔린다.”(‘어둠의 맛’)
우리나라 젊은 작가들이 창작한 좀비 문학은 서양의 작품과는 차이가 있다. 서양의 작품은 ‘롤플레잉’ 게임을 하는 것처럼 인간과 좀비의 대결구도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지만 우리나라 작품은 한국적인 상황을 듬뿍 담아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섬, 그리고 좀비’ 수록작인 ‘어둠의 맛’에서 보듯 좀비는 현실 정치와 사회를 풍자하는 소재로 사용된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파동과 2009년 신종플루 공포 등을 빗댄 설정도 여러 작품에서 나타난다. 즉 좀비를 통해 개인의 외로움이나 가족 간 갈등, 정치·사회적 문제 등 기존에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색다른 방식으로, 즉 유머를 곁들여 표현한다는 것.
또 좀비들은 단순히 악의 무리가 아닌 저마다 사연을 지닌 존재로 나타난다. ‘대학로 좀비 습격사건’에서는 ‘목걸이 좀비’ ‘반지 좀비’ ‘사무라이 좀비’ ‘아기 좀비’ ‘폭력배 좀비’ ‘꽃을 든 좀비’ 등 좀비들의 사연을 하나하나 설명해준다. 저자인 구현 작가는 “좀비가 되기 전 그들도 우리 주변에서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인간이었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가족이 좀비가 된다면?
특히 우리나라 작품은 좀비가 원래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연인이었다는 사실을 결코 버리지 못한다. 김준혁 부장은 “외국의 좀비 문학은 좀비 바이러스가 퍼져 세상이 멸망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가족이나 친구, 연인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 고작 주인공이 ‘부모님도 돌아가셨겠지’라고 독백하는 정도다. 심지어 좀비가 된 부모도 ‘쿨하게’ 죽여버린다. 하지만 우리나라 작품은 주인공이 가족이나 사랑하는 이들이 좀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좀비가 됐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고 설명했다.
김중혁 작가의 ‘좀비들’은 아예 좀비를 처단해야 할 괴물이나 공포의 대상으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 세상으로 불려나온 이들은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무자비하게 ‘사체실험’을 당하는 불쌍한 존재일 뿐. 심지어 이들을 팔아넘겨 좀비로 만든 것도, 그래서 괴로워하고 힘들어하는 것도 이들의 가족이자 이웃이다. 김 작가는 “좀비를 세상을 종말시키는 ‘바이러스 덩어리’가 아닌 산 자와 죽은 자를 연결하는 매개로 봤다. 존재는 죽었지만 육체는 멀쩡하고, 살아 있다고 하기엔 아무런 기억과 이성이 없는 중간자인 좀비를 통해,살아 있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은 죽은 이들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좀비는 과학적으로 볼 때 현실에서 결코 나타날 수 없는 존재다. 그렇기에 현실 속 우리 모습을 투영하기가 쉽다. 좀비는 무서운 괴물이 될 수도 있지만 사회적 약자가 될 수도 있고, 어쩔 수 없이 버려진 가족이 될 수도 있다. 이종호 작가는 “작가는 좀비라는 꼭두각시를 통해 다양한 이슈를 우회적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좀비라는 소재가 가진 극단적인 단순함이 좀비 문학 작품들의 흐름을 비슷하게 만드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