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공원 뒤편에 있는 ‘할아버지들 노천카페’의 커피 자판기다. 자판기마다 다른 맛의 커피가 나오게 해놓았다.
중국, 일본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차나무가 잘 자라는 기후 조건을 갖추고 있다.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차를 일상 음료로 많이 마셨다고 한다. 조선시대 이후 차문화가 급격히 쇠잔했는데, 그 이유에 대해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으로 불교문화인 차문화가 쇠락했다’는 설과 ‘극심한 차 재배지 수탈로 민중이 차 재배를 기피해서 그렇게 됐다’는 설이 있다. 또 하나, 우리나라 골골에는 맛있는 물이 샘솟는 감천(甘泉)이 흔해 굳이 차를 끓여 마실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차문화, 곧 습관성 음료가 발달하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
한국의 음식문화가 5000년의 유구한 전통을, 적어도 조선 500년의 전통을 잇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당연히 녹차, 식혜, 수정과를 우리의 습관성 음료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잘 차려진 한식 상차림에 후식으로 이런 차가 나온다. 그러나 이 전통차를 마신 뒤 신발 신고 나오면서 커피를 찾는 사람이 많다. 우리의 전통은 커피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진다.
2010년 현재 대한민국 사람들의 습관성 음료는 커피다. 아침을 커피로 시작하고 식후에 커피 마시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사람을 만날 때도 그 앞에는 커피가 놓인다. 어느 장소를 가든 인스턴트커피를 뽑을 수 있는 자판기가 반경 50m 안에 있고, 목 좋은 건물의 1층은 커피숍이 차지한다.
이를 어찌 해석할 것인가는 각자 처지에 따라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개탄스러운 현실일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환영할 일일 것이다.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기왕에 마실 거라면 더 맛있는 커피를 먹자는 쪽이다.
우리 민족이 커피에 중독됐다지만, 대부분의 커피 맛은 어느 하나에 집중돼 있다. ‘별다방’이니 ‘콩다방’이니 하는 프랜차이즈 커피가 가장 심각하다. 커피를 쓴맛 음료로 알고 쓴맛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에겐 유제품과 당류를 첨가해준다. 이런 커피는 향조차 희미하다.
원두는 쓴맛 외에 단맛과 신맛이 함께 난다. 커피의 주요 맛이 쓴맛인 건 맞지만, 쓴맛에 단맛과 신맛이 조화롭게 날 때 커피의 향도 살고 맛있다. 그런데 우리가 마시는 커피는 원두 자체가 좋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강배전(원두를 높은 온도에서 긴 시간 볶는다는 뜻)을 해 신맛이 안 난다. 신맛이 살아 커피의 향까지 잡으려면 약배전을 해야 하는데, 그러면 질 낮은 원두의 본색이 그대로 드러난다. 커피도 여느 음식과 마찬가지로 좋은 재료여야 가공 과정에서 조심스레 다뤄지고 향과 맛도 좋아지는 것이다. 향조차 다 죽인 탕약 같은 커피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가격에 팔리는 현실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