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 총학생회장 선거에 등장한 중국어 대자보. 대학 내 중국인 유학생이 증가하면서 이들의 표심을 잡는 것도 중요해졌다.
성균관대 무역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인 중국인 유학생 장젠웨이(張建偉·28) 씨는 한국인 같았다. 산둥성 출신으로 현지 대학 졸업 후 한국에 온 그는 “고향에 한국 기업이 많이 진출하면서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한국 기업은 임금이나 복지가 좋아 많은 중국인이 들어가고 싶어 한다. 나 역시 한국에서든, 중국에서든 한국 기업에 취직하는 게 목표”라며 “한국 기업이나 한국과 교류하는 기업에서 일하려면 ‘동문’도 중요하기 때문에 이왕이면 일류대를 나오는 게 좋다”고 했다. 같은 과인 자오톈이(趙天一·24) 씨 역시 산둥성 출신. 한류(韓流)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그는 “졸업 후 삼성이나 LG 등 한국 대기업에 입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경영대가 중심 신방과도 상당수
두 사람이 속한 성균관대 무역학과 대학원에는 중국인 유학생이 20명이나 있다. 재학생 수가 100명이 넘지 않는 것을 고려하면 이들의 비중은 무척 높은 편. 실제로 성균관대에 재학 중인 외국인은 대학, 대학원 및 어학원을 모두 포함해 1300여 명에 이르는데, 이 중 75% 이상이 중국인이다. 이들은 경영학과나 경제학과, 무역학과 등 경영대와 인문사회대에 집중돼 있다.
요즘 대학 캠퍼스에서 중국인 유학생을 만나는 건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니다. 총학생회장 선거에서 중국인 유학생을 위한 중국어 대자보가 등장했고, 대학 안팎에선 중국어 공용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학 홈페이지에서는 중국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중국인 유학생들이 자주 찾는 식당이나 매점, 노래방 등에선 한국어와 중국어를 병기한다. 중국인이 좋아하는 양꼬치 전문점도 최근 대학가에 부쩍 늘었다. 또 술집이나 편의점, 분식집 등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중국인도 쉽게 만날 수 있다(상자기사 참조). 이는 한국에서 공부하는 중국인 유학생이 많아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국내 체류 중인 중국인 유학생은 2009년 4월 현재 총 6만여 명. 전체 외국인 유학생(약 7만8000명)의 77%에 이른다. 중국인 유학생 수는 2005년부터 매해 급증해 5년 만에 4배 이상 증가했다(그래프 참조). 이들은 왜 한국행을 택한 것일까. 또 한국 생활에서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일까.
‘한중 산업 협력’이 전공인 산업연구원 이문형 국제산업협력실장은 “지금 중국은 우리나라의 1970년대 후반과 같다. 경제적 수준이 높아지면서 대학 수요는 급증하는데,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래서 가깝고 상대적으로 학비가 싼 한국에 많이 오는 것”이라며 “중국의 20대는 ‘소황제’, 즉 외둥이다. 부모가 이들에게 쏟아붓는 교육열은 상상 이상”이라고 했다.
여기에 중국 내 취업난까지 겹쳐 산둥성 등 한국 기업이 많이 진출한 지역의 학생들이 한국 기업에 들어가는 데 유리하다는 이유로 한국 대학행을 택한다는 것. 유학생 상당수가 경영대에 몰려 있는 사실도 이를 방증한다. 실제로 중국 내 한국 기업들은 신규 직원을 채용할 때 중국 동포나 중국 유학 경험이 있는 한국인 유학생이 아닌, 한국 유학 경험이 있는 중국인 유학생을 선호한다. 이문형 실장은 “체재비 부담이나 민족적·문화적 갈등 요인이 적고, 조직 내 화합을 추진하면서 현지 사정에 밝아 내수시장 진출에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위안화의 가치가 높아져 유학 비용이 줄어든 점도 중국인 유학생이 급증한 이유 중 하나다. 충북대 국제경영학과 대학원에 다니는 왕파(25) 씨는 2005년 8월 한국에 왔는데, 당시 환율은 1위안에 100원 정도였다. 이후 위안화 가치가 가파르게 올라 현재는 1위안에 약 180원이다. 그는 “환율의 영향으로 학비랑 생활비가 반으로 줄면서, 중산층 샐러리맨 자녀들도 한국 유학을 온다”고 했다.
중국인 유학생 장젠웨이 씨(왼쪽)와 자오톈이 씨. 두 사람 모두 산둥성 출신으로 한국 기업에 취직하고 싶다고 했다.
중국 유학생의 수준은 학교별·개인별로 다르지만, 중국 상위 10~30%이다. 경희대 유학생교육지원팀장 유원준 교수는 “상위 10% 안에 드는 인재는 중국 명문대로 진학하거나 미국, 유럽 등지로 간다. 한국에 오는 학생은 바로 밑 선인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또 이들 대다수는 한족(漢族)이고, 중국 동포 비중은 극히 미미하다.
그리고 이들은 중상류층 출신이어서 중국 내 영향력이 큰 편이다. 상명대에서 교내 중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상류층이라 답한 21.1%를 포함해 응답자의 93.7%가 중상층 이상이다. 왕파 씨는 “중국인 유학생은 사업가 부모를 둔 경우가 많다. 물론 어렵게 유학생활을 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경제적으로 부유하다”고 말했다. 유원준 교수 역시 “경희대 호텔관광학과의 경우 중국인 유학생 절반 이상이 아버지가 호텔을 소유하고 있다. 최소 중상층 이상이라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국 상위 10~30% 사이
여러 이유로 한국에 왔지만, 이들에게 유학생활은 결코 녹록지 않다. 무엇보다 한국어로 이뤄지는 수업을 정확히 이해하기 힘들다. 사실 이는 외국인 학생의 모집 과정에서부터 잠재됐던 문제다. 국내 대학의 외국인 모집은 ‘정원 외’로 이뤄지고, 교육과학기술부의 권고사항이 있지만 대학이 자율적으로 기준을 정할 수 있다. 보통 한국어능력시험(TOPIK) 4급(중급) 이상 취득하거나 한국어학원에서 일정 등급 이상을 수료하면 한국어 능력이 있다고 판단해 지원 자격을 준다. 즉, 한국에서 어학연수를 하기만 하면 대학 지원이 가능한 것. 따라서 대학 수업을 따라가기엔 한국어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중국인 유학생은 물론, 이들과 함께 수업을 듣는 한국인 학생과 교수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건국대 컴퓨터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인 허함(25) 씨는 “수업을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학원에서는 강사들의 발음이 정확하고 속도도 느려 쉽게 수업을 알아들었지만, 대학 수업은 전혀 달랐다. 특히 교수가 나이가 많거나 사투리가 심한 경우 절반도 못 알아들었다. 전공에 대한 열정이 있으나 수업에 애정을 가지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자오톈이 씨도 “한국어 능력이 떨어져 수업을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는 중국인 유학생이 적지 않다. 대학 측에서 한국어 능력에 대한 기준을 더욱 철저히 정해야 한다. 또 수업할 때 한자를 병기하거나 천천히 설명하는 등 중국인 유학생에 대한 배려가 늘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장젠웨이 씨는 “컴퓨터로 자료를 만들어 발표하는 게 무척 낯설고 힘들다”고 토로했다. 중국 대학에서는 강의 듣고 시험 보는 형태였는데, 한국 대학에서는 팀을 짜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컴퓨터로 자료를 만들어 발표하는 수업이 무척 많다는 것. 그는 “한국 와서 처음으로 파워포인트 자료를 만들어봤을 정도로 컴퓨터 다루는 게 한국 학생들보다 서툴다. 팀별로 토론하고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은 한국어에 익숙해진 지금도 어렵다”고 했다. 최근 대학들은 외국인 학생만을 대상으로 학습법이나 한국학, 컴퓨터 등을 가르치는 과목을 개설하는 등 혜택을 늘리고 있지만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래서 중국인 유학생을 뽑아만 놓고, 제대로 학습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지 않는다는 불평이 나온다.
또 중국인 유학생들은 한국 학생들과의 교류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취재 중 만난 한 중국인 유학생은 “한국인은 밤늦게까지 술 마시면서 어울리고 사생활까지 속속들이 알아야 친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외둥이로 태어난 우리는 혼자 있는 게 무척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 친구를 사귀는 게 쉽지 않고, 서로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며 “캠퍼스에 중국 학생이 워낙 많다 보니 굳이 한국 학생과 어울릴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한국 학생들이 중국인 유학생 사회에 쉽게 다가가지 않는 것도 한 원인이다. 연세대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솔직히 중국 학생끼리 중국어로 이야기하며 몰려다니는 모습이 좋아 보이진 않는다. 특히 조모임을 할 때 의사소통이 안 되면 ‘중국인끼리만 있으니 한국어가 늘지 않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유학생이지만 결석도 자주 하고 프로젝트에도 잘 참여하지 않는 등 학업에 충실한 것 같지는 않다”고 지적했다.
연간 한국에서 쓰는 돈 7500억 원
2008년 서울에서 열린 베이징올림픽 성화 봉송 과정에서 일부 중국인 유학생이 폭력을 행사해 파문을 일으켰다. 치기 어린 중국 젊은이들이 보여준 일탈 행동은 우리 국민에게 중국인 유학생의 존재를 처음 알린 사건이었다.
또 어학연수나 교환학생으로 중국에 다녀온 학생들이 중국인 유학생들과 친해진 뒤 인맥을 만들면서 한중 학생 간 교류도 부쩍 늘고 있다. 실제로 대학가에선 한국어와 중국어로 번갈아 이야기하는 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유원준 교수는 “최근 중국인 유학생에 대한 거부감은 많이 줄어들었다. 오히려 중국인 학생들과 사귀며 언어도 익히고 중국에 대해 알고자 하는 학생이 더 많다”고 귀띔했다.
성균관대 입학관리팀 홍성완 주임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전 세계 대학이 중국인 유학생 유치에 뛰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럽이나 미국, 일본의 유수 대학도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이는 중국인 유학생을 대학과 사회의 성장동력으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했다. 재한 중국인 유학생 자체를 국가적 ‘자산’으로 여기고 이들이 지한파, 친한파가 되도록 대학과 사회가 각별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
이문형 실장은 “지금까지는 한국 대학이나 기업이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중국인 유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와줬다. 하지만 이젠 대학과 기업이 함께 목표를 세우고, 거기에 맞는 중국인 학생을 전략적으로 발굴, 활용해야 할 단계”라며 “예를 들어 중국 현지에 진출한 기업들이 중국 대학생을 국내 대학에 학사 편입을 하도록 지원하고, 졸업 후 중국 내수시장을 개척하는 요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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