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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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선거 떴다방’ 등장

정치 컨설팅 업체 “책임질게” 달콤한 유혹 … 15% 득표해야 선거자금 돌려 받는 출마자들 솔깃

  • 박훈상 tigermask@donga.com

    입력2010-05-17 09: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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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17대 대통령 선거 당시 이회창 후보는 총 유효표 중 15.07%를 득표했다. 만일 0.07%가 모자랐다면 그의 정치생명은 끝날 수도 있었다. 현행 선거법은 득표율이 15% 미만이면 기탁금 및 선거비용을 절반밖에 돌려받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후보는 0.07% 덕에 선거비용 약 130억 원을 보전받을 수 있었다. 당시 이 후보 캠프 인사는 “아슬아슬했다. 출구조사에서 지지율이 12~13% 나왔을 땐 굉장히 불안했다. 모두 이 후보 개인의 빚이 될 뻔했다”고 회상했다. 반면 5.82%를 얻은 문국현 후보는 돌려받지 못한 선거비용을 당이 차입한 돈으로 회계 처리해 뒷말을 남겼다.

    2006년 5·31지방선거 당시 한 정치컨설턴트 사무실에선 한바탕 부부싸움이 있었다. “15%는 충분히 넘는다”고 호언장담하는 경기지역 시의원 선거 후보자와 “욕심부리지 말자”며 말리는 후보자 아내의 싸움이었다. 컨설턴트가 냉정하게 아내 편을 들자, 출마 여부를 두고 후보자 부부의 언쟁은 더욱 격렬해졌다. 결국 후보자는 컨설턴트의 조언을 따르지 않고 출마했다가 15% 미만 득표에 그쳤다. 10%를 간신히 넘겨 선거비용의 절반을 돌려받았지만 그의 정치인생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군소 후보들 자나깨나 15% 득표 고민

    선거에 나온 사람들은 15%에 울고 웃는다. 현행 선거법상 전체 유효득표수 15% 이상을 얻은 후보는 기탁금 및 선거비용 전액을, 10% 이상을 얻은 후보는 선거비용 절반을 돌려받는다. 당선자는 득표수에 상관없이 전액을 보전받는다. 반면 10% 미만 득표자는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한다. 그래서 ‘유효득표율 15%’ 이상으로 당선이 유력한 제1, 2당 후보에겐 ‘강 건너 불구경’이 될 수 있으나 지지율이 낮은 제3, 4당 후보에겐 정치적 향방을 갈라놓는 현실의 벽이 되기도 한다.

    자유선진당 서울시당 관계자는 “15%에 목숨 거는 사람이 많다. 15% 미만으로 낙선하면 후보 본인 재산의 손실이 불가피하다. 자질이 충분한 후보라도 지역 기반, 조직이 약하면 꿈을 접어야 한다”며 “선거비용 보전 기준이 타당하지만 문턱이 조금 높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유효득표율 15%의 기준은 어떤 근거에서 마련된 것일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윤석근 법제과장은 “유효득표 15% 기준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과거에는 기탁금만 반환하기도 했다. 15%는 힘들다는 의견도 있어 군소정당을 배려하기 위해 10% 기준을 만들고 절반 액수를 돌려주게 했다. 현행 기준은 후보자 난립 방지, 유권자의 책임, 선거 공영성 등을 고려할 때 합리적이다”고 밝혔다. 1958년 민의원 선거 당시 기탁금 50만 환 반환 기준을 유효투표 총수의 6분의 1(약 17%)로 정한 기록이 있다.

    기탁금 및 선거비용 보전제도는 현실정치의 역사가 반영된 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보자가 너무 많다는 지적이 있으면 후보자를 줄이고자, 후보자의 부담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 나오면 부담을 덜어주고자 관련 규정을 개정해왔다. 한때는 군소정당, 무소속 후보, 신인 정치인을 배려해 5% 득표 시 선거비용의 3분의 1을 돌려주자는 안이 나오기도 했다.

    15%는 선거를 끝까지 치를 수 있는 기초체력을 가늠하는 기준도 된다. 12년차 정치컨설턴트 A씨는 “선거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후보의 지지율이 15% 이상은 돼야 앞선 후보를 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컨설턴트들도 사전 여론조사에서 15% 미만을 얻은 예비후보와는 계약을 망설인다. 실제 10% 미만 득표로 선거비용을 돌려받지 못한 후보가 컨설턴트 비용 부담을 거부해 고소·고발로 가는 경우도 있다. A씨는 “낙선한 후보가 선거비용을 돌려받지 못했으니 컨설턴트 비용도 못 내겠다며 버텨 민사재판까지 갔다. 계약서대로 선거운동을 진행했음을 조목조목 따져 승소했다. 못 주겠다며 욕두문자를 날린 후보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틈새를 노린 ‘떴다방’식 선거기획사도 여의도를 중심으로 생겨나고 있다. 전문 정치컨설턴트들은 “6·2지방선거 바람을 타고 과거 대선·총선 실직자들이 경쟁적으로 선거기획사를 차린다. 이들이 덤핑 가격으로 선거비용에 부담을 느끼는 후보들을 유혹해 전문 컨설턴트 회사의 피해가 크다. 이들은 15%는 충분히 넘을 수 있다며 출마를 부추긴다”고 호소했다. 전문 선거기획사가 홍보물, 유세 차량 등을 포함해 선거비용 제한액의 80~90%를 받는다면 ‘떴다방’식 기획사는 50~60%만 받는다.

    정당공천제가 아닌 인물 중심으로 벌어지는 교육감 선거는 더욱 15%를 넘어야 한다는 절박감이 크다. 교육감 후보는 후보등록을 마친 뒤에야 후원회를 둘 수 있고 선거비용 제한액의 50%까지 정치자금을 모금할 수 있다. 이번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10여 명의 후보가 출마할 것으로 예상돼 당선자가 아니면 절반도 보전받기 어려울 전망이다. 포스커뮤니케이션 이경헌 대표이사는 “10% 미만 득표자가 속출할 것이다. 전문 정치인이 아니어서인지 예비후보 자신이 굉장히 우위에 있다고 생각해 판세 분석을 정확히 하지 못한다”고 예상했다.

    불안을 느낀 후보들은 정치컨설턴트에게 부담을 떠넘기기도 한다. 서울시교육감에 출마한 B후보는 교육계에서 ‘점잖은 교육계 원로’였지만 선거비용 앞에서는 얌체로 둔갑했다. B후보 측은 한 달가량 모 선거기획사와 선거 준비를 했지만 막상 계약서를 쓸 때 “외상으로 하자”며 황당한 요구를 했다. B후보 참모는 “내가 선생님인데 믿지 못하겠느냐”며 선거를 치른 뒤 비용을 내겠다고 버티다 결국 “유효득표 15%를 넘길 수 있다고 확답해달라”고 떼를 썼다.

    교육감 후보들 ‘선거펀드’ 모집

    2008년 낙선한 뒤 빚을 지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전례를 익히 지켜본 후보들에게는 ‘학습효과’도 나타난다. C후보는 선거비용 마련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교육계에 오래 몸담아 재산도, 조직도 없다는 것. C후보는 “돈이 많이 들어가는 인쇄홍보물 페이지 수를 줄일 예정이다. 선거운동원도 선거결과 15% 이상이면 활동비 전액을 주지만, 10% 미만이면 자원봉사로 활동하는 방향으로 뽑을 생각이다”고 밝혔다. 그러나 선거운동원들이 이런 안을 받아들일지는 C후보도 확신하지 못했다.

    다른 교육감 선거 후보들이 고민 끝에 내놓은 전략은 선거펀드다. 선거펀드를 만든 후보가 15% 이상 득표해 선거비용을 전액 돌려받으면, 펀드 구매자들에게 이자를 붙여 돈을 갚는 형태. 선관위도 선거펀드를 적법한 것으로 인정한다. 국민참여당 유시민 후보가 ‘유시민펀드’로 경기도지사 법정 선거비용인 40억여 원 모금에 성공하자 교육감 선거 후보들도 선거펀드 모집에 나서고 있다. 한국선거학회장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선거펀드를 통해 후보자는 능력에 따라 투명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정당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는 자율성도 얻는다. 선거펀드 모금액은 후보자 역량의 척도다”고 밝혔다.

    하지만 교육감 후보 중 아직 펀드 모금액으로 역량을 보여준 후보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펀드를 운영 중인 한 교육감 후보의 언론특보는 “15% 이상 득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펀드 시작에 반영됐다”고 했지만 모금 현황을 묻는 질문에는 “진행하고 있으나 예상보다 시간이 걸려 두고 봐야 성공 여부를 알 수 있다”며 한발 물러섰다.

    15%를 두고 마음 졸이는 사람은 선거 출마자만이 아니다. 국민의 혈세를 운영하는 공무원들의 걱정도 크다. 한 지방자치단체 선거담당 공무원은 “무투표로 당선되면 보전액이 적어 돈을 아낄 수 있다. 우리 지역 시의원이 단독 출마할 가능성이 있어 기대가 크다. 선거비용 보전만 따지면 후보가 난립해 골고루 표가 돌아가는 게 좋지만, 후보자가 늘면 선거벽보 등 선거비용 자체가 늘어나기에 이도 저도 큰돈이 들어 걱정이다”고 털어놓았다. 5·31지방선거 당시 선관위가 지급한 선거비용 보전액은 2000억 원에 달했다. 6·2지방선거에는 4800억 원이 예산으로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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