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검정을 위해 스터디를 만든 취업준비생, 소방관이 되려고 체대 입시학원을 다니는 고시생, 승진을 위해 10년 만에 다시 운동을 시작한 경찰관…. 통과의례쯤으로 여겼던 체력검정이 이젠 취업을 결정하고, 승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자 체력은 취업과 승진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됐다. 바야흐로 체력 전성시대다.
“앗싸, 합격하겠구나.”
㈜이브자리 정회일(27) 교육총무팀 주임은 2008년 이브자리 입사 공고 내용 중 체력테스트를 한다는 설명을 보고 쾌재를 불렀다. 당시 육군 장교였던 그는 휴전선 감시초소에서 근무하며 등산과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기초체력을 키우고 있었다. 예상대로 그는 무사히 취업에 성공했다. 입사가 결정됐다고 체력관리에 손을 놓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입사 전보다 더 체력관리에 힘쓰고 있다. 정 주임은 입사 뒤 3차례 마라톤을 완주했다. 이브자리에는 정 주임을 비롯해 왼쪽 무릎 아래에 의족을 끼고 풀코스를 3차례 완주한 박영길 과장 등 마라톤 애호가가 많다. 3월 동아서울국제마라톤 대회에는 사원 254명 중 111명이 참가했다.
“고객에게 건강을 제공하는 회사니까 마라톤, 등산이 딱 맞는 운동이죠. 개인적으로도 매일 운동을 하니 활력이 생깁니다. 사장님, 임원과 같이 운동하며 대화를 많이 나누니 막혔던 업무도 술술 풀리죠.”
취업하고 싶다면 체력검정부터
이브자리는 기업의 모토가 ‘고객에게 건강을 제공하는 기업답게 임직원 스스로가 건강을 지켜야 한다’일 정도로 체력을 중시한다. 그러다 보니 채용과정에서부터 엄격한 체력검정이 이뤄진다. 학교 운동장을 빌려서 했던 체력테스트가 벌써 18년째다. 산행면접과 체력테스트가 면접 점수의 50%를 차지한다. 오전에는 불암산을 오르고 오후에는 헬스클럽에서 체력테스트를 한다. 종목도 다양하다. 체성분 측정, 달리기, 오래매달리기, 턱걸이 등을 하고 등급별로 점수를 매긴다. 최고 S등급을 받으려면 여성 지원자는 20초 이상 철봉에 매달려야 하고 남성 지원자는 턱걸이를 12개 이상 해야 한다.
“일곱 살 때 철봉에서 떨어져 팔꿈치에 철심을 박은 뒤로 철봉 공포증이 있었습니다. 철봉만 보면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죽기 살기로 매달렸어요.”
체력을 중시하는 기업이다 보니 지원자들의 의지도 남다르다. 신입사원 방선(23) 씨는 바늘구멍 같은 좁은 취업문을 뚫기 위해 철봉 공포증마저 이겨냈다. 강혁모(27) 씨는 매일 아침 조깅과 턱걸이로 체력면접을 준비했다. 이들은 5분 동안 하는 일반면접보다 모든 것을 쏟아내는 체력테스트가 잠재력을 더 많이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았다고 입을 모았다.
체력이 입사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자, 취업준비생끼리 체력검정을 대비한 스터디를 꾸리기도 한다. 코리안리재보험㈜은 오전에 청계산 산행을 하고 오후에는 축구와 오래달리기를 하는 야외면접으로 유명하다. 소문을 익히 들은 코리안리 신입사원 이강용(27), 이병주(27) 씨는 학교에서 함께 축구와 등산을 하며 체력면접을 준비했다. 야외면접을 위해 1년 전부터 마라톤을 준비한 지원자, 청계산 등산 스터디를 만들어 미리 산에 오른 지원자도 있었다. 함께 등산 스터디를 한 남녀가 눈이 맞아 사귀었다가 남자만 합격한 안타까운 경우도 있었다.
기업들은 체력검정을 거쳐 뽑힌 지원자들이 일도 잘한다고 말한다. 코리안리 정용희(26) 사원은 “외국 담당 부서는 외국 시간에 맞춰 밤새울 때가 많은데 체력이 받쳐주니 부담이 덜하다”며 웃었다. 코리안리 박헌정 홍보팀장은 “힘이 빠진 상태에서 진짜 자기 모습이 드러난다. 5분 쉬는 동안에 남과 대화를 나누고 챙겨주는 지원자가 있는 반면, 홀로 담배를 피우거나 문자를 보내는 사람도 있다. 이때 적극성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찰 승진 강한 체력에 달려
체력검정은 직장인의 사기를 올리고 조직경쟁력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국민은행 신입사원들은 100km 걷기 극기체험을 통해 체력과 함께 팀워크를 키운다. 기업은행은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입사 뒤 ‘새내기 첫걸음’ 훈련을 실시한다. 기업은행 연수원이 있는 경기도 기흥에서 을지로 본점까지 40km 철야행군을 하는 것. 기업은행 관계자는 “극기훈련, 철야행군을 통해 사기 진작과 조직경쟁력을 다진다”고 말했다. 생활체육이 발달한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운동선수 경험 여부가 주요 입사기준이 된 지 오래다. 경희대 체육학과 김형돈 교수는 “일본 기업들이 운동선수 출신 지원자를 선호하는 이유는 특유의 돌파력 때문이다. 처음에는 실력이 조금 부족할지라도 체력이 받쳐주면 장기적으로 반드시 앞서간다. 일본 학생들이 학창시절 운동선수 후보라도 되려고 애쓰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체력을 중시하는 것은 일반 사기업만의 일이 아니다. 범죄, 화재, 각종 사건·사고로부터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는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군인, 경찰관, 소방관에게 더욱 강인한 체력이 요구된다. 2008년 소방방재청은 현장에서 화재를 진압하고 인명을 구조하는 소방공무원을 뽑기 위한 체력검정을 강화했다. 도입 첫해 체력검정에서 절반 이상 탈락할 정도로 강도 높게 진행됐다. 공부만 해서는 소방공무원이 되기 어려워지자 체대 입시학원에 소방공무원 준비생을 위한 전문반까지 생겼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소방공무원의 체력이 국민 평균체력의 상위 40%에는 들도록 하고 있다. 올해 안으로 체력기준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체력검사를 변경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시험철 보건소에 몰려드는 사람들
환경미화원에게도 체력은 필수다. 서울 구로구청은 환경미화원 선발을 위해 지원자로 하여금 20kg(여자 10kg) 모래주머니를 들어 차에 실은 뒤, 다른 모래주머니를 들고 왕복달리기하는 시간을 측정한다. 구로구청 클린도시과 관계자는 “환경미화원은 일상적인 쓰레기 수거 업무 외에도 냉장고, 헌 가구, 건축폐자재 등 대형 폐기물을 차에 실어 옮겨야 하기에 체력이 필수다”고 말했다.
피의자에게 얻어맞는 경찰, 범인을 발견해도 체포하지 못하는 경찰. 경찰청에 따르면 2008년 공무수행 중 부상한 경찰관 3명 중 1명은 범법자가 휘두르는 폭력에 다친 것이다. 최소한 범인을 제압할 정도의 체력은 필요하다는 여론이 비등해지자 경찰은 올 7월 윗몸일으키기, 악력, 팔굽혀펴기, 1200m 달리기 4종목에 대한 체력검정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현행 직장훈련 평가에선 무도훈련 참석 횟수만으로 경찰의 체력단련 점수를 평가했다. 체력검정제가 도입되면 체력검정등급 결과가 경정 이하의 인사고과에 반영된다. 일선의 한 경찰관은 “새로운 평가가 도입되면 부담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경찰의 업무 특성을 고려한다면 체력검정은 필요하다. 자기 관리를 꾸준히 하는 계기도 될 것이다”고 말했다.
소방관, 경찰 등 공무원 임용과 승진에서 체력이 중요해지자 보건소는 시험을 앞두고 테스트를 해보려는 사람들로 넘친다. 서울 광진구 보건소 김주원 운동처방사는 “시험철이 되면 배근력, 악력테스트를 위해 하루 50명가량이 보건소에 찾아온다. 평소에도 15~20명은 꾸준히 온다”고 귀띔했다.
“최대 산소섭취량이 75를 넘어간다고?”
평범한 40대로 보였지만 그의 최대 산소섭취량은 운동선수 수준이었다. 국민체육진흥공단 국민체력센터 스태프들은 행여 기계에 이상이 있나 기기를 점검하느라 분주해졌다. “운동선수 출신이냐?”고 물어봤지만 그는 운동선수도 아니고, 특별히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국민체력센터 선상규 원장은 그를 따로 불러서 차를 권하며 도대체 무슨 일을 했기에 놀라운 체력결과가 나왔는지를 물었다.
“내래 북한에서 왔습니다.”
그는 인민군 중사 출신의 탈북자였던 것. 지금도 수영으로 거뜬히 한강을 건널 만큼 체력에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 군인들을 보면 걱정이 됩니다. 북한에서는 평소 강도 높은 체력훈련을 하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도 저처럼 체력이 강한 사람이 많습니다. 아무리 남한이 우수한 무기를 가지고 있더라도 결국 전쟁을 수행하는 것은 강한 체력을 가진 군인들 아니겠습니까?”
그의 말처럼 허약한 체력을 가진 장병들로 인해 전투력이 낮아지는 것은 군의 심각한 고민거리다. 대전대 군사학과 이필중 교수는 “강군을 만들겠다는 선언적 구호 대신, 군인들의 체력을 단련할 수 있는 기반과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육군과 달리 자원입대를 하는 공군과 해병대는 선발과정에서 강도 높은 체력검정이 이뤄지지만, 이들 역시 입대 사병의 체력저하와 비만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과거 공군에서는 입대 첫 주 1500m를 달려 7분 44초 안에 들어오지 못하면 곧장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공군은 지원자 감소, 지원자들의 오래달리기에 대한 부담을 이유로 오래달리기를 폐지했다. 대신 입대 직후부터 오래달리기 기록을 꾸준히 상승시켜 입대 4주차에 7분 30초 안에 달리도록 만든다. 그리고 체력양성 프로그램을 운영, 비만 병사들은 따로 반을 편성해 단계적으로 기록을 향상하도록 돕는다.
‘약군시대’ 강한 군인 만들기
귀신 잡는 해병대도 예외는 아니다. 해병대사령부 정훈공보실 관계자는 “요즘 신병들이 워낙 운동을 안 해 입대 전 체력검정에서도 많이 떨어진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해병대는 훈련소 내 강도 높은 체력훈련으로 병사들의 체력 수준을 끌어올리고 있다.
국방부는 올해부터 체력검정제를 개선해 체력검정 수준을 다른 선진국 군대에 맞추도록 했다. 국방부 정책홍보담당관실 관계자는 “미군이 체력검정 시 2마일(약 3.2km)을 달리는 것을 감안해 한국군도 기존의 1.5km에서 3km로 늘렸다”고 설명했다. 체력검정 점수는 진급점수 100점 중 5점에 해당한다. 승진 여부가 소수점 몇 점 차이로 결정되기에 군 간부들은 매일 뛰며 체력을 기르고 있다. 한양대 생활스포츠학부 김동환 교수는 “기초체력을 측정해 그 결과가 낮으면 불이익을 받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체력을 갖추지 않으면 취업도, 승진도 더 이상 보장되지 않는 시대, 이젠 체력이 성공을 위한 ‘스펙’이 됐다.
“앗싸, 합격하겠구나.”
㈜이브자리 정회일(27) 교육총무팀 주임은 2008년 이브자리 입사 공고 내용 중 체력테스트를 한다는 설명을 보고 쾌재를 불렀다. 당시 육군 장교였던 그는 휴전선 감시초소에서 근무하며 등산과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기초체력을 키우고 있었다. 예상대로 그는 무사히 취업에 성공했다. 입사가 결정됐다고 체력관리에 손을 놓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입사 전보다 더 체력관리에 힘쓰고 있다. 정 주임은 입사 뒤 3차례 마라톤을 완주했다. 이브자리에는 정 주임을 비롯해 왼쪽 무릎 아래에 의족을 끼고 풀코스를 3차례 완주한 박영길 과장 등 마라톤 애호가가 많다. 3월 동아서울국제마라톤 대회에는 사원 254명 중 111명이 참가했다.
“고객에게 건강을 제공하는 회사니까 마라톤, 등산이 딱 맞는 운동이죠. 개인적으로도 매일 운동을 하니 활력이 생깁니다. 사장님, 임원과 같이 운동하며 대화를 많이 나누니 막혔던 업무도 술술 풀리죠.”
취업하고 싶다면 체력검정부터
이브자리는 기업의 모토가 ‘고객에게 건강을 제공하는 기업답게 임직원 스스로가 건강을 지켜야 한다’일 정도로 체력을 중시한다. 그러다 보니 채용과정에서부터 엄격한 체력검정이 이뤄진다. 학교 운동장을 빌려서 했던 체력테스트가 벌써 18년째다. 산행면접과 체력테스트가 면접 점수의 50%를 차지한다. 오전에는 불암산을 오르고 오후에는 헬스클럽에서 체력테스트를 한다. 종목도 다양하다. 체성분 측정, 달리기, 오래매달리기, 턱걸이 등을 하고 등급별로 점수를 매긴다. 최고 S등급을 받으려면 여성 지원자는 20초 이상 철봉에 매달려야 하고 남성 지원자는 턱걸이를 12개 이상 해야 한다.
“일곱 살 때 철봉에서 떨어져 팔꿈치에 철심을 박은 뒤로 철봉 공포증이 있었습니다. 철봉만 보면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죽기 살기로 매달렸어요.”
체력을 중시하는 기업이다 보니 지원자들의 의지도 남다르다. 신입사원 방선(23) 씨는 바늘구멍 같은 좁은 취업문을 뚫기 위해 철봉 공포증마저 이겨냈다. 강혁모(27) 씨는 매일 아침 조깅과 턱걸이로 체력면접을 준비했다. 이들은 5분 동안 하는 일반면접보다 모든 것을 쏟아내는 체력테스트가 잠재력을 더 많이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았다고 입을 모았다.
체력이 입사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자, 취업준비생끼리 체력검정을 대비한 스터디를 꾸리기도 한다. 코리안리재보험㈜은 오전에 청계산 산행을 하고 오후에는 축구와 오래달리기를 하는 야외면접으로 유명하다. 소문을 익히 들은 코리안리 신입사원 이강용(27), 이병주(27) 씨는 학교에서 함께 축구와 등산을 하며 체력면접을 준비했다. 야외면접을 위해 1년 전부터 마라톤을 준비한 지원자, 청계산 등산 스터디를 만들어 미리 산에 오른 지원자도 있었다. 함께 등산 스터디를 한 남녀가 눈이 맞아 사귀었다가 남자만 합격한 안타까운 경우도 있었다.
기업들은 체력검정을 거쳐 뽑힌 지원자들이 일도 잘한다고 말한다. 코리안리 정용희(26) 사원은 “외국 담당 부서는 외국 시간에 맞춰 밤새울 때가 많은데 체력이 받쳐주니 부담이 덜하다”며 웃었다. 코리안리 박헌정 홍보팀장은 “힘이 빠진 상태에서 진짜 자기 모습이 드러난다. 5분 쉬는 동안에 남과 대화를 나누고 챙겨주는 지원자가 있는 반면, 홀로 담배를 피우거나 문자를 보내는 사람도 있다. 이때 적극성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찰 승진 강한 체력에 달려
체력검정은 직장인의 사기를 올리고 조직경쟁력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국민은행 신입사원들은 100km 걷기 극기체험을 통해 체력과 함께 팀워크를 키운다. 기업은행은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입사 뒤 ‘새내기 첫걸음’ 훈련을 실시한다. 기업은행 연수원이 있는 경기도 기흥에서 을지로 본점까지 40km 철야행군을 하는 것. 기업은행 관계자는 “극기훈련, 철야행군을 통해 사기 진작과 조직경쟁력을 다진다”고 말했다. 생활체육이 발달한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운동선수 경험 여부가 주요 입사기준이 된 지 오래다. 경희대 체육학과 김형돈 교수는 “일본 기업들이 운동선수 출신 지원자를 선호하는 이유는 특유의 돌파력 때문이다. 처음에는 실력이 조금 부족할지라도 체력이 받쳐주면 장기적으로 반드시 앞서간다. 일본 학생들이 학창시절 운동선수 후보라도 되려고 애쓰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체력을 중시하는 것은 일반 사기업만의 일이 아니다. 범죄, 화재, 각종 사건·사고로부터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는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군인, 경찰관, 소방관에게 더욱 강인한 체력이 요구된다. 2008년 소방방재청은 현장에서 화재를 진압하고 인명을 구조하는 소방공무원을 뽑기 위한 체력검정을 강화했다. 도입 첫해 체력검정에서 절반 이상 탈락할 정도로 강도 높게 진행됐다. 공부만 해서는 소방공무원이 되기 어려워지자 체대 입시학원에 소방공무원 준비생을 위한 전문반까지 생겼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소방공무원의 체력이 국민 평균체력의 상위 40%에는 들도록 하고 있다. 올해 안으로 체력기준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체력검사를 변경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
시험철 보건소에 몰려드는 사람들
2008년 11월 전남 무안 전남체육고에서 해안경찰 지원자들이 체력검사를 치르고 있다.
피의자에게 얻어맞는 경찰, 범인을 발견해도 체포하지 못하는 경찰. 경찰청에 따르면 2008년 공무수행 중 부상한 경찰관 3명 중 1명은 범법자가 휘두르는 폭력에 다친 것이다. 최소한 범인을 제압할 정도의 체력은 필요하다는 여론이 비등해지자 경찰은 올 7월 윗몸일으키기, 악력, 팔굽혀펴기, 1200m 달리기 4종목에 대한 체력검정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현행 직장훈련 평가에선 무도훈련 참석 횟수만으로 경찰의 체력단련 점수를 평가했다. 체력검정제가 도입되면 체력검정등급 결과가 경정 이하의 인사고과에 반영된다. 일선의 한 경찰관은 “새로운 평가가 도입되면 부담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경찰의 업무 특성을 고려한다면 체력검정은 필요하다. 자기 관리를 꾸준히 하는 계기도 될 것이다”고 말했다.
소방관, 경찰 등 공무원 임용과 승진에서 체력이 중요해지자 보건소는 시험을 앞두고 테스트를 해보려는 사람들로 넘친다. 서울 광진구 보건소 김주원 운동처방사는 “시험철이 되면 배근력, 악력테스트를 위해 하루 50명가량이 보건소에 찾아온다. 평소에도 15~20명은 꾸준히 온다”고 귀띔했다.
“최대 산소섭취량이 75를 넘어간다고?”
평범한 40대로 보였지만 그의 최대 산소섭취량은 운동선수 수준이었다. 국민체육진흥공단 국민체력센터 스태프들은 행여 기계에 이상이 있나 기기를 점검하느라 분주해졌다. “운동선수 출신이냐?”고 물어봤지만 그는 운동선수도 아니고, 특별히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국민체력센터 선상규 원장은 그를 따로 불러서 차를 권하며 도대체 무슨 일을 했기에 놀라운 체력결과가 나왔는지를 물었다.
“내래 북한에서 왔습니다.”
그는 인민군 중사 출신의 탈북자였던 것. 지금도 수영으로 거뜬히 한강을 건널 만큼 체력에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 군인들을 보면 걱정이 됩니다. 북한에서는 평소 강도 높은 체력훈련을 하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도 저처럼 체력이 강한 사람이 많습니다. 아무리 남한이 우수한 무기를 가지고 있더라도 결국 전쟁을 수행하는 것은 강한 체력을 가진 군인들 아니겠습니까?”
그의 말처럼 허약한 체력을 가진 장병들로 인해 전투력이 낮아지는 것은 군의 심각한 고민거리다. 대전대 군사학과 이필중 교수는 “강군을 만들겠다는 선언적 구호 대신, 군인들의 체력을 단련할 수 있는 기반과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육군과 달리 자원입대를 하는 공군과 해병대는 선발과정에서 강도 높은 체력검정이 이뤄지지만, 이들 역시 입대 사병의 체력저하와 비만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과거 공군에서는 입대 첫 주 1500m를 달려 7분 44초 안에 들어오지 못하면 곧장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공군은 지원자 감소, 지원자들의 오래달리기에 대한 부담을 이유로 오래달리기를 폐지했다. 대신 입대 직후부터 오래달리기 기록을 꾸준히 상승시켜 입대 4주차에 7분 30초 안에 달리도록 만든다. 그리고 체력양성 프로그램을 운영, 비만 병사들은 따로 반을 편성해 단계적으로 기록을 향상하도록 돕는다.
‘약군시대’ 강한 군인 만들기
귀신 잡는 해병대도 예외는 아니다. 해병대사령부 정훈공보실 관계자는 “요즘 신병들이 워낙 운동을 안 해 입대 전 체력검정에서도 많이 떨어진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해병대는 훈련소 내 강도 높은 체력훈련으로 병사들의 체력 수준을 끌어올리고 있다.
국방부는 올해부터 체력검정제를 개선해 체력검정 수준을 다른 선진국 군대에 맞추도록 했다. 국방부 정책홍보담당관실 관계자는 “미군이 체력검정 시 2마일(약 3.2km)을 달리는 것을 감안해 한국군도 기존의 1.5km에서 3km로 늘렸다”고 설명했다. 체력검정 점수는 진급점수 100점 중 5점에 해당한다. 승진 여부가 소수점 몇 점 차이로 결정되기에 군 간부들은 매일 뛰며 체력을 기르고 있다. 한양대 생활스포츠학부 김동환 교수는 “기초체력을 측정해 그 결과가 낮으면 불이익을 받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체력을 갖추지 않으면 취업도, 승진도 더 이상 보장되지 않는 시대, 이젠 체력이 성공을 위한 ‘스펙’이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