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쥐를 잡아 새끼에게 가져오는 어미고양이. 2 방충망을 타고 올라가는 새끼고양이.
나 역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고양이라면 아주 싫어했는데, 지금은 예찬론자가 됐다. 고양이만큼 생존능력이 뛰어난 짐승이 또 있을까. 호랑이는 용맹하고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지만 사람과 친화력이 없으니 지금은 거의 멸종 위기다. 개를 비롯한 대부분의 가축은 그 고유한 야성을 많이 잃어버렸다.
이런 동물들에 견주어 고양이는 야성은 야성대로 간직하면서 사람과도 적당히 관계 맺을 줄 안다. 종의 번식과 진화에 아주 유리한 고지가 아닐까. 야성에서 너무 멀리 와버린, 사람에게도 야성이란 게 있나 싶은 시대에 나는 고양이한테 많은 걸 배운다.
종의 번식과 진화 유리한 고지 점령
야성을 살리자면 몸 돌보기가 필수다. 그런 점에서 고양이는 뛰어난 동물이다. 고양이가 제 몸을 돌보는 과정은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먼저 네 다리를 모으고 허리를 공처럼 최대한 만다. 마치 활시위에 화살을 먹여 당기기 직전의 모습이랄까. 물리학적인 탄성이 최대치를 이루면서도 그 동작은 아주 자연스럽다.
그런 다음 앞다리 두 개를 앞으로 내면서 허리를 쭉 편다. 이 자세를 보노라면 참 아름답게 느껴지고 나도 따라 해보고 싶다. 여기에 견주어 세계적인 체조 선수들의 경기를 볼 때면 솔직히 나는 주눅 들거나 때로는 질려버리기도 한다. 일상에 녹아든 몸짓이 아니라 우승을 목표로 혹독하게 훈련을 한 몸짓이 아닌가. 훈련과정에서 겪었을 긴장과 부상이 떠오른다. 과도한 탄성은 뼈와 근육에 무리를 주어 상처를 입힌다. 사람도 환경 적응을 높이기 위해 ‘삶의 탄성계수’를 알맞게 유지해야 할 것이다.
그 다음 고양이는 둘레 적당한 나뭇등걸에 올라 발톱 다듬기를 한다. 발톱은 몸이 갖는 1차 무기다. 이제 슬슬 사냥에 나선다. 우리 집 둘레를 무대로 사는 고양이들은 사람이 주는 먹이를 가끔 먹기도 하지만 대부분 자급한다. 고양이가 즐겨 잡아먹는 건 쥐. 사람한테는 쥐가 여간 골치가 아니기에 고양이가 고맙다. 쥐 한 마리 잡아봐야 고양이에게는 한 끼 식사 정도다. 쥐가 무한정 있는 것도 아니니 고양이 처지에서는 사냥감을 다양화해야 한다. 다람쥐, 참새, 꿩, 심지어 뱀도 잡아먹고 나방, 메뚜기 같은 곤충도 즐겨 먹는다.
고양이가 새를 잡는 광경을 보노라면 야성이 얼마나 발달했는지 한눈에 알게 된다. 새가 먹이 활동을 위해 땅 가까이로 내려오면 고양이는 눈빛부터 달라진다. 고도로 집중을 하니 눈에서 빛이 나는 듯하다. 그러고는 몸을 최대한 땅에 밀착시키고 새 쪽으로 살금살금 다가간다. 몸을 날렸을 때 먹잇감을 덮칠 만한 거리에 이르면 가만히 웅크린 상태에서 기회를 엿본다. 그러다 새가 긴장을 놓고 한눈판다 싶으면 번개처럼 몸을 날린다. 이 순간 고양이는 새와 다름없다. 한번은 높이가 2m 남짓 되는 창틀에 앉은 새를 고양이가 잡은 적이 있다. 창턱에서 딱 한 번 도움닫기를 한 다음 곧바로 새를 낚아채 땅으로 내려왔다. 전광석화다.
고양이는 먹이를 맛나게 먹은 뒤엔 휴식을 취하며 다시 몸 가꾸기를 한다. 혀로 몸 구석구석을 핥는다. 온갖 요가 자세가 다 나온다. 고개를 돌려 등을 핥고, 몸을 구부려 자신의 사타구니도 핥는다. 사냥을 하다가 다쳤을 때도 상처 부위를 정성스럽게 핥으면서 스스로 치유한다.
3 어미가 잡아온 꿩을 맛나게 먹는 새끼고양이들. 사냥을 마친 어미는 휴식 중. 4 새끼고양이 두 마리가 서로 엉켜 사냥놀이를 한다. 레슬링인지 이종격투기인지. 5 몸 구석구석을 핥는 동작 하나하나가 다 우아한 요가 자세다. 6 자고 일어난 다음에는 몸을 최대한 말아 생명의 탄성을 확인한다. 7 온몸을 깨우는 고양이 기지개.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고양이의 민첩성은 타고난 게 아니라 부단히 노력한 결과다. 새끼들은 자랄 때부터 어미 도움조차 받지 않고 스스로 감각을 키운다. 같은 새끼들끼리 온갖 놀이를 한다. 서로 뒤엉켜 사냥 기술을 익힌다. 그 과정에서 점프도 하고, 목 조르기도 한다. 호기심도 많아 높은 나무에 올랐다가 내려올 때는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기도 한다. 유리창과 방충망 사이 좁은 틈새로도 날카로운 발톱을 이용해서 올라간다.
고양이가 사람과 가까워지는 모습 역시 배울 점이 많다. 어미를 잃은 새끼고양이가 아니라면 아무 사람한테나 가지 않는다. 낯선 사람이 보이면 먼저 눈을 마주친다. 눈으로 마음을 읽는다. 저 사람이 자신에게 호의적인지, 적대적인지를 알아낸다. 멸치 대가리를 주려고 손짓해도 섣불리 다가오지 않는다. 멸치를 놓고 사람이 사라지면 그제야 조심스레 다가가 먹는다. 이런 과정을 몇 번 거치면서 충분히 확신이 섰을 때만 사람에게 다가간다. 대신 한번 사람을 믿으면 다음부터는 경계를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확 가까워지는 건 아니다. 사람과 적당히 거리두기를 한다. 사람이 오란다고 오거나, 사람이 자신을 쓰다듬는다고 가만히 있지 않는다. 그 순간 자신이 귀찮다면 미련 없이 자리를 뜬다. 독립심이 강하고, 혼자 지내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사람과 관계에 따른 선택권을 고양이 자신이 행사한다. 자신이 필요해 사람에게 다가가면 ‘가르릉 가르릉’ 소리를 내면서 좋다는 신호를 보낸다. 이 소리는 갓난아기의 미소처럼 생명을 끌어당기는 어떤 힘이 있어 쉽게 뿌리치기 어렵다.
이따금 고양이는 사람에게 다가와 발목을 제 몸으로 슬그머니 비비면서 지나간다. 부드러우면서도 묘한 스킨십이다. 그 순간 마치 이런 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당신은 내 거야.’ 외로움도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걸 고양이는 본능으로 아는 걸까?
사람끼리는 한 마을에 살아도 이웃과 세계관이 다르면 여간해서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고양이는 그 고유한 사회성을 이용해 자기 영역에서는 모두를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한다. 고양이는 알면 알수록 배울 게 많은 짐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