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성화 교육은 학생을 여러 로스쿨로 분산시키는 순간부터 물 건너간 것이다.
- 어차피 특성화 교육비용 부담도 등록금으로 지원돼야 한다. 많지도 않은 인원이
- 여러 특성화 수업에 나뉘어 수강한다면 유지 자체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로스쿨 교수들은 학생들이 기본 이론과 판례를 습득하는 효율성과 집중력을 높여주기 위해 수업 방식과 개인별 진도관리 면에서 많은 변화를 시도했다. 사진은 고려대 로스쿨 수업.
한국법학교수회 회장을 맡고 있는 서울대 성낙인 교수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수업 때마다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말이라고 한다. 기존 법대 수업에선 보기 드문 광경이다.
로스쿨에선 이처럼 강의 방식부터 새롭다. 일방향식 이론 위주의 수업 비중이 크게 줄어든 대신 학생들과 문답하거나 토론 등을 통한 쌍방향식 수업 비중이 커졌다. 학생 스스로 기본 이론과 판례를 습득하는 데 시간 대비 효율성과 집중력을 높여주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자연히 교수들의 수업 부담은 커졌다. 성 교수는 “이제 교수들도 수업하기 전에 판례를 분석해보고, 학생들의 다양한 의견과 질문에 일목요연하게 답변할 수 있도록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학생 관리에도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 한다. 수업의 질을 끌어올리고 학기 초에 세운 진도 계획을 충실히 이행하려면 학생 개개인의 학습능력, 심지어 예·복습 상태까지 수시로 체크해줘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한 지방 사립대 로스쿨 교수는 “수업에서 낙오자가 생기면 담당 교수나 로스쿨 전체에 그만큼 큰 부담이 전가된다”며 “학생들도 힘들지만 그래도 자신감을 갖고 큰 수준 차이 없이 수업에 따라올 수 있도록 여러모로 배려할 수밖에 없다”라고 밝혔다.
“非법대 출신들의 열정에서 희망을 봤다”
교수들의 이런 태도 변화가 교수와 학생들 간 교류 확대에 따른 신뢰 형성, 또한 법대 출신과 비(非)법대 출신 간의 격차 해소에 긍정적인 효과를 내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법조계 안팎에선 아직도 법대 출신과 비법대 출신 간의 수준 논란이 제기되지만, 실제로는 로스쿨에 재학 중인 비법대 출신 학생들을 중심으로 자발적이고 강도 높은 면학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일선 교수들은 “일단 (로스쿨의) 희망을 보고 있다”고 말한다.
성낙인 교수는 “이론과 판례를 ‘뒤범벅’해 교육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비법대 출신들도 (수업을) 잘 따라오는 건 분명한 사실”이라며 “이 대목에 커다란 기대를 건다”고 했다. 한국외대 법학과 정한중 교수도 “비법대 출신 학생 가운데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단 이론과 판례 위주 수업 비중이 높은 1년차에 대체로 잘 적응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 교수는 또 “시험 때는 A4용지 2쪽 이상 답을 써야 하는 사법시험 수준 이상의 고난이도 문제를 출제하는데도 비법대 출신 학생들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일정한 수준에서 따라온다”며 “기본적인 법 지식이 약하면 일단 주입식 위주의 수업을 듣고 이론에 대한 약점을 보완하면서 선택과목에서 판례를 익히는 식으로 적응력을 높인다”고 했다. 고려대 법학과 윤남근 교수도 “올해 1년은 기초를 닦는 데 치중하는 단계라 학생들의 수준을 속단할 수는 없지만, 나름 비장한 심정으로 로스쿨에 들어온 비법대 출신 학생들이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로스쿨에서 실무능력을 제대로 배양할 수 있을지에 관해선 시각이 다소 엇갈린다. 로스쿨마다 실무 교수진 확보 및 로펌, 공공기관 및 일반 기업과의 인턴십 협약 등을 통해 실무 기회를 늘리려 하고 있다.
실무교육, 형식적으로 흐를 수도
러나 과연 로스쿨 학생들이 1년간 속성으로 법학 기본 교과를 이수한 뒤 전문 교과수업을 받을 시점에서 심층 실무교과 교육까지 병행해나갈 수 있을지, 또 변호사시험을 1~2년 앞두고 제대로 실무 수업에 집중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러한 관점에서 실무교육의 수준도 형식적인 선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낙인 교수는 “어차피 현 로스쿨 제도 아래선 변호사시험에 통과한 뒤에 법원, 검찰, 로펌 등에서 강도 높은 실무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현재 사법연수원에서 받는 실무수습교육 수준에 근접하는 교육이 이뤄질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정한중 교수도 “변호사시험 대비에 따른 학점 관리가 시급한 2~3학년 때 실무 교과교육이 활성화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반면 부장판사 출신인 윤남근 교수는 기본적으로 사법시험 제도와 로스쿨 제도의 도입 취지가 다르다는 전제 아래 다른 시각으로 이 문제에 접근했다.
“서면, 의견서 작성 등과 같은 기본 송무 능력은 로스쿨 출신이 사법연수원생 출신보다 처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단순히 이를 잣대로 전체적인 능력의 우위를 평가할 수는 없다. 로스쿨을 도입한 주목적은 다방면에서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이다. 사법시험 출신자들과는 차별되는, 또 다른 장점을 가진 인력을 발굴하자는 것이다. 잃는 것이 있으면 새로 얻는 게 있다. 이런 측면에서 실무교육의 효용성과 방향을 논의해야 한다.”
윤 교수는 로스쿨 실무교육의 혁신적인 사례로 현재 고려대 로스쿨 내에 설립된 공익법률상담소(Global Legal Clinic)를 꼽았다. 여기에 가입한 로스쿨 학생들은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등 소외계층의 인권보호 등 공익적 개념 영역의 사건들을 직접 맡아 처리해보는 기회를 갖는다.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관련법과 외국 판례를 분석해 법률 개정과 정책의 변화를 유도하는 등 실질적인 법률 봉사자로의 트레이닝을 받는 것.
윤 교수는 “사법연수원에서는 이미 종결된 사건이 실무교육 대상이지만, 로스쿨 클리닉에선 현재 진행 중인 사안을 다뤄보는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며 “소송뿐 아니라 환경, 인권 등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법률적인 해결 방안을 찾는 훈련을 하기 때문에 변호사의 기능 증대라는 측면에서 매우 유익하다”고 설명했다.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최대 변수
전국 25개 로스쿨은 학교마다 환경, 부동산, 문화, 정보기술(IT), 금융, 국제법무, 조세, 동북아법 등 개별 특성화 교과를 선택, 이에 대한 공통·심화 과정을 2~3학년 단계에서 개설할 예정이다. 세계화라는 시대적 추세를 따르고 또 국가적이고도 지역적인 법률 수요를 최대한 충족하자는 게 특성화 교육의 도입 취지.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런 취지에 부합하는 ‘맞춤교육’이 제대로 이뤄질지에 대해선 부정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성낙인 교수는 “변호사시험 합격률 등 시험제도 전반에 대한 합의가 안 된 상황에서 무작정 특성화 교육을 강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며 “지금으로선 각 로스쿨이 전혀 특성화될 것 같지 않다”고 우려했다. 정한중 교수도 “정원이 50~60명밖에 안 되는 로스쿨에서, 게다가 변호사시험까지 앞둔 상황에서 특성화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이 몇 명이나 될지 의문”이라고 했다. 윤남근 교수 역시 “특성화 교육은 학생을 여러 로스쿨로 분산시키는 순간부터 물 건너간 것”이라며 “어차피 특성화 교육비용 부담도 등록금으로 지원돼야 하는 것인데, 많지도 않은 인원이 여러 특성화 수업에 나뉘어 수강한다면 유지 자체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교수들은 로스쿨 교육의 전체적인 질을 판가름하는 데 중요한 변수는 변호사시험 제도의 운영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합격률을 어느 선에서 정하느냐가 민감한 부분이다. 윤 교수는 “일단 합격률과 특성화교육 문제는 별개의 사안”이라고 전제한 뒤 “합격률은 로스쿨의 사정과 법조인의 순리 사이에서 매우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토로했다. 로스쿨 처지에선 합격률이 높으면 좋을 테고, 법조계로선 매년 1000명가량 무더기로 배출되는 사법연수원생 출신도 로펌 등에서 소화를 못하는 형편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만약 로스쿨 학생들이 대부분 변호사시험에 합격해 사법시장으로 쏟아져 나올 경우, 단적으로 송무에 관해선 국민에게 돌아갈 서비스의 질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어느 쪽이건 사회적 충격이 엄청날 것”이라며 “국가가 무책임하게 방치하는 이상 언젠가 양 측면을 고려한 적절한 타협안이 나오지 않을까 한다”고 예상했다.
로스쿨 교육은 장밋빛 미래를 제시할 수 있을까. 일단 학생들이 대단한 열의를 보이는 상황인데도 로스쿨 교육제도 전반을 둘러싼 분위기엔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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