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주일도 다사다난했습니다. 서해에서는 7년 만에 세 번째 교전이 발생했고, 세종시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도 치열했습니다. 특히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것은 한 여대생의 발언이었습니다. 11월9일 KBS TV ‘미녀들의 수다’가 끝나자 각종 포털에서는 이 여대생이 실시간 검색순위 1위에 올랐습니다.
방송에 출연한 이모 씨가 키 작은 남자에 대해 “키는 경쟁력이다. 키 작은 남자는 루저(loser)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이 불씨가 됐습니다. 이씨의 발언은 곧 일파만파로 퍼져나갔습니다. 그의 발언과 각종 이미지를 패러디한 글·사진이 디씨인사이드 등 유명 사이트 게시판을 도배했습니다.
“김정일이 3차 서해교전을 일으킨 이유는?”
“160cm도 안 되는 자신을 비난한 이도경이 미워서.”
그의 발언에 빗대 ‘톰 크루저’ ‘웨인 루저’ ‘인민 루저’ 등 각종 신조어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언론에서는 ‘루저의 난’이 일어날 지경이라며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무심코 뱉은 한마디에 전 국민이 분노하는 형세입니다. 분노는 공격으로 이어져 이씨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글이 연이어 올라왔습니다. 심지어 가정형편, 가족관계, 신체 사이즈 등 개인신상 정보까지 깡그리 공개되는 상황입니다.
결국 방송 하루 만에 그는 싸이월드를 탈퇴했고, 현재 연락이 두절된 상태입니다. 그래도 그를 완전히 매장해야 분이 풀리겠는지, 입에 담기도 힘든 인신공격은 여전합니다. 만약 그가 인터넷을 본다면 죽고 싶은 심정일 겁니다. 물론 그가 100%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친구들끼리 할 수 있는 얘기를 방송에 출연해서 한 것, 그리고 솔직히 사과하기보다는 변명에 급급했던 것은 분명 잘못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될 것을 예상했으면서도 시청률을 의식해서,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려고 방송을 강행한 제작진의 잘못도 작지 않습니다. 어린 학생을 탓하기 전에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마녀사냥 하듯 그를 몰아쳐 상처를 준 것은 아닌지 반성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연예인들이 악플을 참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나서야 “그동안 너무 심했다”며 고개를 숙이곤 했습니다. 과연 이 학생도 극단적 선택을 해야 화가 풀리겠습니까? 이런 일쯤은 그저 철없는 어린 학생의 해프닝으로 넘기며, 사과를 대범하게 받아들이는 따뜻한 관용이 아쉽습니다.
방송에 출연한 이모 씨가 키 작은 남자에 대해 “키는 경쟁력이다. 키 작은 남자는 루저(loser)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이 불씨가 됐습니다. 이씨의 발언은 곧 일파만파로 퍼져나갔습니다. 그의 발언과 각종 이미지를 패러디한 글·사진이 디씨인사이드 등 유명 사이트 게시판을 도배했습니다.
“김정일이 3차 서해교전을 일으킨 이유는?”
“160cm도 안 되는 자신을 비난한 이도경이 미워서.”
그의 발언에 빗대 ‘톰 크루저’ ‘웨인 루저’ ‘인민 루저’ 등 각종 신조어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언론에서는 ‘루저의 난’이 일어날 지경이라며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무심코 뱉은 한마디에 전 국민이 분노하는 형세입니다. 분노는 공격으로 이어져 이씨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글이 연이어 올라왔습니다. 심지어 가정형편, 가족관계, 신체 사이즈 등 개인신상 정보까지 깡그리 공개되는 상황입니다.
결국 방송 하루 만에 그는 싸이월드를 탈퇴했고, 현재 연락이 두절된 상태입니다. 그래도 그를 완전히 매장해야 분이 풀리겠는지, 입에 담기도 힘든 인신공격은 여전합니다. 만약 그가 인터넷을 본다면 죽고 싶은 심정일 겁니다. 물론 그가 100%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친구들끼리 할 수 있는 얘기를 방송에 출연해서 한 것, 그리고 솔직히 사과하기보다는 변명에 급급했던 것은 분명 잘못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될 것을 예상했으면서도 시청률을 의식해서,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려고 방송을 강행한 제작진의 잘못도 작지 않습니다. 어린 학생을 탓하기 전에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마녀사냥 하듯 그를 몰아쳐 상처를 준 것은 아닌지 반성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연예인들이 악플을 참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나서야 “그동안 너무 심했다”며 고개를 숙이곤 했습니다. 과연 이 학생도 극단적 선택을 해야 화가 풀리겠습니까? 이런 일쯤은 그저 철없는 어린 학생의 해프닝으로 넘기며, 사과를 대범하게 받아들이는 따뜻한 관용이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