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B> 현지 어른들을 따라가면 배울 게 참 많다.
“얘들아, 어디로 가면 좋을까?”
“너무 멀지 않은 바다로요.”
“바다에서 이것저것 잡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바다 가까이 사는 지인들에게 두루 연락을 했다. 이제는 바다도 마을마다 양식권이나 채취권이 있어 외지인이 함부로 들어가기 어렵다. 현지에 사는 분들에게 도움말을 얻든가 아니면 연고가 있어서 앞뒤 사정을 알고 행동해야 한다. 그렇게 찾다 보니 두 집 모두를 만족시키는 곳이 전북 부안이었다.
물놀이는 잠깐 … 생명 만나는 재미에 흠뻑
두어 시간 차로 달려, 먼저 고사포 해수욕장에 도착. 사람이 많지 않았다. 아이들은 도착하자마자 바람에 날듯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어른들은 차에서 짐을 내리고 바닷가 소나무 숲에 텐트를 쳤다. 바람이 많이 불어 바람막이를 하는 사이 한 녀석이 뛰어왔다.
<B>2</B> 바닷가 바위에 붙어 있는 온갖 생명. <B>3</B> 드디어 게를 잡고 환호. 먹는 맛보다 잡는 맛! <B>4</B> 새 생명과의 만남이라면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몰입한다.
보니 제법 컸다. 만져보니 묵직했다. 낯설고 드넓은 바다에서 조개를 주웠다. 산골에서 다슬기, 가재, 우렁이 등 뭐든 잡는 걸 좋아하는 버릇이 바다에서도 그대로 나온 것이다. 아이들 힘에 이끌려 어른들도 바다로 나갔다. 울룩불룩 산과 좁은 하늘만 보다가 너른 바다, 탁 트인 하늘을 보니 얼마나 좋던지. 바다 전체가 우리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듯했다.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수영을 하는데 금방 배가 고파왔다. 두 집이 손발을 맞춰 밥하고 찌개에 밑반찬 해서 점심을 먹었다.
서서히 물이 빠져나갔다. 현지인이 알려준 바로 그 물때.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아무리 재미있는 물놀이도 한두 시간. 서해는 밀물과 썰물 차이가 커, 물때만 맞추면 바다가 저 알아서 무대를 새롭게 바꿔준다. 해변을 따라 뭐 잡을 거 없나 하고 걸었다. 마침 이곳 마을에 사시는 할아버지 두 분이서 갯것을 채취하러 오셨다. 우리는 망설임 없이 이것저것 물어봤다.
“이게 뭐예요?”
“파래.”
“먹을 수 있나요?”
“그럼, 깨끗이 씻어서 무쳐 먹어도 되고 데쳐서 양념해도 맛있지.”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내가 바로 그 꼴이었다. 신기한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파래를 한 움큼 챙겼다. 할아버지를 뒤따라 바위 쪽으로 갔다. 주민들을 따라가면 배울 것도 먹을 것도, 심지어 안전도 다 보장받는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금세 시야에서 멀어졌다. 할아버지는 필요한 것만 채취하고 훌쩍 자리를 떠났지만 우리에겐 모든 게 관심거리요 체험거리라 한곳에 머무는 시간이 길다.
바닷가 바위에는 온갖 생물이 산다. 갯벌도 그렇지만 바위 생물은 더 쉽게 눈에 띈다. 바위를 덮다시피 붙어 있는 굴. 하지만 도구 없이는 까서 맛보기가 쉽지 않다. 그 다음 고둥. 이건 몇 번 줍다가 만다. 바위 틈새에는 게가 납작 엎드려 있다. 호기심에 그냥 지날 수가 없다. 애고 어른이고 구분이 없다. 모두 새로운 생명과의 만남에 몰입한다.
게가 숨은 곳은 손바닥이 간신히 들어갈 틈. 무리하게 손을 집어넣어 게를 쫓다가 손등에 피가 난다. 바위 곳곳에 붙은 날카로운 굴 껍데기에 손등을 베인 것이다. 그래도 게를 잡아보겠다는 마음에 피나는 줄도 모른다. 어렵사리 손으로 움켜든 게, 저절로 환호성이 터진다. 그러니 피를 보고도 또 틈새에 손을 밀어넣는다. 이는 마치 게임 중독에 가까우니 ‘생명 중독’이라고 할까나. 아니면 원시 조상들이 가졌던 사냥 본성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새로운 생명과의 만남에 잔뜩 흥분이 되어 정작 자기 몸은 돌보지 못한다.
피가 나도 또 잡고 싶은 ‘생명 중독’
<B>5</B> 내소사 들머리에 있는 전나무 숲길. <B>6</B> 곰소에서 맛본 젓갈정식.
그런데 우리는 사람이 여럿이다 보니 바다만으로 다 만족이 안 되었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여행의 또 다른 묘미. 저녁에는 변산반도에 사는 지인 집으로 갔다. 그이는 나보다 한결 자연스럽게 사는 사람이라 언론 노출을 원하지 않는다. 농사도 자연 재배에 가까워 이 집 농산물은 생약 수준으로 팔린다. 우리는 늦게까지 사는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농장을 둘러봤다. 한마디로 자기 빛깔이 뚜렷했다. 농사일도 많을 텐데 꽃밭도 제법 크게 가꾸고, 명상 터도 한창 꾸미고 있었다. 심지어 큼직한 나무마다 새장도 만들어두어 자연과 교감을 만끽하고 있었다. 세상은 넓어, 어딜 가나 이렇게 삶의 고수는 적지 않다. 지역 구석구석에서 자기 삶을 펼쳐가는 이웃들이 자랑스럽다.
지인이 차려주는 아침을 잘 먹고, 여행 온 김에 변산반도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로 잘 알려진 곳이다. 채석강에 잠시 차를 세워 구경하고, 계속 바다를 끼고 달리다가 내소사를 들렀다. 들머리에 전나무 숲이 좋았다. 아이들은 달려가 나무를 안아보고 등에 져보기도 하며, 얼마나 키가 차이 나는지도 재어보았다. 아이들은 그 순간 자연 그 자체였다.
점심은 곰소로 와서 염전도 보고, 젓갈정식을 사먹었다. 이렇게 글을 쓰면서 돌아보니 돈 주고 경험한 것들보다 손수 한 것들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다는 게 다시금 확인된다. 1박2일 여행이었지만 집에 돌아오니 한 열흘 다녀온 것처럼 푸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