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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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유흥가의 빈 순찰차

  •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입력2009-07-29 11: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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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따, 참말 미쳐불겄다. 저기 앉아 있는 것들 봐라, 또 왔네.” 지난해 이맘때였습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바’를 운영하는 선배의 업소에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밥 한번 먹자”는 선배에게 바쁘다는 핑계로 번번이 거절한 것이 미안해 소주 한잔 대접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선배는 반겨주기는커녕 제 소매를 잡고 주방으로 끌고 가더니 인상을 찡그렸습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부러야. 장사는 안 되지, 종업원 아그들 월급만 2500만원이 넘는데 저런 놈들까지….(한숨) 한 달도 안 됐는데 또 오는구마잉. 오메, 환장하겄네.” 소문은 들었어도 경찰이 유흥업소 업주들에게 돈을 받는 건 그때 처음 봤습니다. 맥주를 한 잔씩 마시던 3명의 경찰관은 선배가 건넨 봉투 하나를 받고 유유히 업소를 빠져나가더군요.

    “얼마나 줬어요?” “저것들 셋이 갈라묵어도 한 달 생활비씩은 넉넉히 될 것이다.” 얘기를 듣고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선배가 경찰 제복을 입은 사기꾼들에게 속아넘어간 게 아닐까 의심스럽기도 했죠.

    하지만 그 장면은 ‘실제 상황’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7월22일 서울지방경찰청은 강남경찰서 경찰관 21명이 유흥업소 업주들에게서 단속을 무마해주는 대가 등으로 금품을 받은 사실이 발각돼 중징계를 내렸다고 밝혔습니다.

    그것도 강남경찰서의 각 지구대 경찰관들이 골고루 적발됐다고 합니다. 강남경찰서 경찰관들의 비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물론 이곳 경찰관 모두에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지만, 요 몇 년 사이 유난히 강남경찰서 경찰관들의 비리가 도드라진 건 사실입니다.



    지난해에는 강남경찰서 고위간부가 공금을 유용해 직위 해제됐고, 기자가 잘 아는 중간간부급 경찰관도 피의자에게 뇌물을 받아 구속됐습니다. 친한 경찰관의 말에 따르면 가끔씩 이렇게 뒤로 챙긴 돈이 다음 인사 때 경찰서를 옮기지 않게 해달라는 로비용으로도 쓰인다더군요.

    강남 유흥가의 빈 순찰차
    학원뿐 아니라 경찰서도 강남이 단연 으뜸인가 봅니다. 비리가 드러나자 서울지방경찰청은 유흥가가 밀집한 강남, 서초, 송파 경찰서에 대해 집중적인 감사를 벌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 효과가 얼마나 갈까요. 당장이야 경찰관들이 바짝 엎드려 있겠지만, 그간의 전례로 본다면 또 얼마 안 돼 ‘도로아미타불’이 되진 않을까요. 강남 유흥가 한구석에 몇 시간씩 주차된 빈 순찰차가 전과는 영 다르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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