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성장은 정부가 수립한 미래 국가발전 전략 중에서 가장 심도 있게 논의되는 분야다. 2월 출범한 녹색성장위원회 1차 회의.
녹색성장은 환경오염을 처리하는 사회적 비용 증가와 그에 따른 후생 분야의 성장을 국민소득에 반영하는 녹색국민총생산(Green GNP)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정부는 녹색성장을 ‘환경오염과 온실가스를 최소화하면서 신(新)성장 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경제성장’으로 규정한다. 녹색성장의 작동 원리는 성장 패턴과 경제구조의 일대 전환을 통해 환경과 경제성장 간 악순환 구조를 선순환 구조로 전환하는 것. 따라서 녹색성장은 생산 과정에서 녹색자본(녹색기술, 녹색지식)을 투입해 환경오염을 줄이고 자연자본(에너지, 환경자원)을 확충해 생산력을 지속적으로 높여가는 국가발전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농업은 땅을 이용해 작물을 재배하고 가축을 사육해 인간의 식량원을 공급하는 산업이다. 토양, 물, 공기 등 환경요소에 의존하는 산업으로, 자연환경을 이용하기도 하고 역으로 자연환경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따라서 농업부문의 녹색성장은 환경 용량을 고려한 재배기술과 농법 전환, 환경친화적 저탄소 농업을 통한 성장을 의미한다.
농업부문에서 시행되고 있는 녹색성장의 대표적 사례로 친환경농업 육성을 꼽을 수 있다. 친환경농업은 2000년 이후 매년 연평균 70% 정도의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적극적인 친환경농업 육성정책에 힘입어 농업부문에서 친환경농업의 비중(2008년 기준)은 약 10.5%까지 상승했다. 친환경 농축산물의 생산 및 유통 활성화가 그 중심이다. 아직 유통 인프라 구축은 미흡하지만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생산 비중을 크게 늘려야 하는 상황에 와 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유기 재배 및 무농약 재배 비중을 확대해 2012년까지 친환경농수산물 생산 비중을 현재의 4%에서 9%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환경농업지구, 친환경농업단지 조성, 친환경농산물 물류센터 건립 확대, 친환경인증제 도입 등이 힘을 보탤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향후 친환경농업은 안전성과 환경성을 중시하면서 농업부문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녹색기술 개발도 녹색성장 추진의 중요한 키워드다. 특히 에너지 절감형 친환경 기술 개발 사례가 주목되는데, 그중에서도 시설농업의 보온시설 및 장비(온풍기) 활용과 관련된 지열(지열 히트펌프), 공기열(공기식 히트펌프), 태양열 활용 기술이 꾸준히 개발되고 있다. 미래 청정 에너지원으로서 지표면의 토양, 지표수, 지하수, 용암 등에 저장된 열을 이용하는 지열의 경우 12∼25℃의 지하수 열을 히트펌프에서 변환해 여름철에는 10∼15℃, 겨울철에는 45∼50℃의 온도를 유지함으로써 냉난방에 모두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다.
지열 활용의 대표적 사례로 경남 진주시 사봉면 소재 육묘농장을 꼽을 수 있다. 농장의 지열 히트펌프 시범운영 결과에 따르면, 시설원예 난방비 절감 효과는 78%에 육박해 난방 면적 10%(1300ha) 보급 시 연 1458억원을 절감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이오매스 활용 기술 개발도 빼놓을 수 없다. 바이오매스는 동식물, 균체 등의 생물 유기체와 가축 분뇨, 음식쓰레기 같은 생물에서 나오는 폐기물 자원을 총칭한다. 말 그대로 재생 가능한 생물자원이다. 축산부문의 바이오매스인 가축 분뇨를 이용한 바이오가스 플랜트 활용 사례가 특히 눈에 띄는데, ㈜이지바이오시스템의 바이오가스 플랜트는 하루 100t(돼지 분뇨 70t, 기타 유기물 30t)의 축산부문 바이오매스를 처리한다.
친환경농업 연 70% 성장세
㈜이지바이오시스템은 2007년 5월 순수 민간자본 약 48억원을 투입해 경남 창녕군 대지면에 설치 공사를 착수, 2008년 4월 발전소 허가를 취득했다. 2008년 10월부터는 한국전력공사에 전력을 판매(140원/kW)해 월 2500만∼3000만원의 전기료 수익을 올리고 있다.
바이오가스 플랜트 사업은 축산부문의 유기성 폐기물을 자원화해 에너지와 유기질 비료로 사용함으로써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다. 자연스럽게 청정개발체제(CDM) 사업으로도 발전할 수 있다.
산림의 목재 부산물을 활용하는 대체에너지 개발 사업도 첫 단추를 꿰었다. 지난 1월 산림조합중앙회가 연 1만2500t의 펠릿을 생산할 수 있는 제조시설을 경기 여주에 세운 것. 펠릿은 목재 부산물을 톱밥과 함께 작은 입자로 분쇄하고 건조한 뒤 성형한 난방연료다. 연간 생산된 펠릿은 경유 600만ℓ를 대체하고 이산화탄소 발생량도 절반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
이처럼 친환경농업과 기술개발 활성화를 중심으로 한 녹색성장 패러다임은 미래 농업발전의 모멘텀으로 활용할 수 있는 동력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적절한 실행 프로그램을 통해 성장정책이 일관성 있게 추진된다면 농업은 환경친화적 국토와 온실가스 관리의 녹색산업, 그리고 안전한 농림수산식품 공급의 생명산업을 주도하는 미래 효자산업으로 거듭날 것이다.
김창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축산·환경팀장
친환경 영농, 녹색성장 이끈다
음악 들으며 사계절 자라는 유기농 미나리 생산
“농약이며 화학비료는 절대 안 쓰지, 영양분 골고루 주지, 한창 신나게 자랄 때 좋은 소리까지 들려주지…. 말이 식물이고 열매지 어린아이 키우는 것과 다를 바 없어요. 이제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돼요. 하찮게 보이는 농작물도 화학비료를 주면 말 안 듣고 성질내거든요. 열 받으니 해로운 것을 쏟아낼 테고요. 친환경적 농산물을 얻으려면 이들이 원하는 자연 그대로의 것들을 세심하게 살펴서 제공해야 해요. 그게 친환경이고 녹색성장이에요. 그러면 내 마음까지 정화돼요.”
경기 수원에서 유기농 미나리를 생산하는 우성영농조합법인 고기성(63·왼쪽 사진) 대표. 영농 31년 경력의 이 베테랑은 미나리를 재배하면서 느낀 점으로 친환경 녹색성장의 정의를 내렸다.
농림수산식품 분야의 녹색성장은 이명박 정부가 수립한 미래 국가발전 전략 가운데 가장 심도 있게 논의되는 이슈. 이 대통령은 지난해 8·15 경축사에서 녹색성장을 “60년간의 새로운 국가발전 패러다임”이라고 못 박았다. 정부가 제시하는 녹색성장 비전은 자연을 자연으로 돌리는 순환구조에서 환경, 경제, 사회로 연결짓는 국가 지속가능 발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고 대표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친환경 유기 재배 방식으로 미나리를 생산해 호응을 얻고 있는 고 대표는 농림수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의 녹색성장 계획에 제시된 녹색성장 3단계 중 첫 번째인 기반구축 단계(2009~2012년)의 핵심 과제를 실천에 옮긴 사례다. 친환경 농업 확대를 위한 녹색기술 개발이 그것.
고 대표는 독특한 재배기술을 발전시켜 미나리 연중 재배에 성공했다. 그간 경기 지역은 남부지방보다 평균기온이 낮아 미나리 연중재배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고 대표는 먼저 환경부터 바꿨다. 비닐하우스를 연동 2중식으로 만들어 외부 기온이 비닐하우스 내부 기온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한 것.
또한 미나리의 습성을 파악해 그 생태도 세심하게 바꿨다. 미나리는 늦여름에 스스로 ‘월동준비’에 들어가려는 습성이 있는데, 고 대표는 이를 역이용해 미나리 종자를 한여름에 저온창고에 넣어 겨울잠을 미리 재우는 종자처리 기술을 개발했다. 이른바 냉온재배법. 수년간 실패를 거듭한 끝에 여름철에 겨울잠을 미리 잔 종자는 겨울이 와도 봄이라 인식하고 성장을 계속했다. 이런 미나리는 다음 해 초여름까지 성장했다. 그리고 다시 여름에 새 종자를 저온창고에서 겨울잠을 재우면 늦가을이나 겨울에도 미나리 재배와 수확이 가능하다.
그는 미나리의 성장 발육을 향상시키기 위해 미나리에게 ‘자연의 것’들을 되도록 많이 제공한다. 화학비료 대신 천연 유기 비료를 직접 개발해 사용한 것도 한 예. 쌀겨와 뽕나무를 먹고 사는 누에의 배설물을 주기도 했고, 이를 다시 황태 뼈와 껍질을 혼합해 끓인 뒤 그 액을 분말로 만들어 비료로 쓰기도 했다. 나중엔 미나리의 녹색을 더 진하게 하기 위해 아미노산이 많이 함유된 어분도 첨가했다. 심지어 생장을 촉진하기 위해 미나리에게 음악을 들려주기도 한다.
“미나리는 아침에 슬슬 운동을 시작하는데 기지개를 펴는 오전 6시에서 9시 사이에 바람 소리, 물 흐르는 소리 등 자연의 음향을 들려줬어요. 뿌리 부위의 영양분 흡수 속도가 빨라지고, 줄기(대공) 발육 상태도 눈에 띄게 좋아지더라고요.”
고 대표는 미나리 병충해인 진딧물과 청벌레를 없애기 위해 농약 대신 천연 한방 기피제를 직접 만들어 쓴다. 때죽나무, 가래나무, 코스모스 등에 여뀌 같은 한약재가 들어간다. 이렇게 친환경 방식으로 재배된 미나리는 일반 미나리보다 칼슘, 인, 섬유소, 칼륨, 비타민A 등의 함유량이 4~5배 더 많다.
조개껍데기 칼슘 흡수한 친환경 사과 수확
자연에게 자연을 돌려주는 유기농 미나리와 칼슘사과 재배 현장에서 작은 녹색성장이 진행 중이다.
원래 칼슘은 작물에 잘 흡수되지 않는다. 직접 열매에 뿌려도, 땅에 비료 형태로 공급해도 흡수율이 높지 않다. 그간 칼슘사과를 재배하려는 시도는 많았지만 외부에서 사과로 자연 칼슘이 원활하게 흡수되는 기술이 개발되지 않아 상품화에 이르지 못했다.
김 회장은 일본인 사과 재배 전문가를 불러들여 작물이 칼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실험에 돌입했다. 수차례 시행착오를 거듭한 뒤 마침내 칼슘 흡수율이 높은 칼슘사과 개발에 성공했다. 칼슘 공급처는 다름 아닌 천연 조개껍데기.
“조개껍데기를 빻아서 써봤는데 처음에는 잎이 떨어지고 과일도 굵지 않은 등 난리도 아니었어요. 고민 고민하다 조개껍데기를 1200℃에서 구운 다음 분말로 만들어 열매에 살포했는데 흡수가 잘되더라고요. 사실 보통 사과에도 미량의 칼슘이 들어 있긴 해요. 하지만 이 사과는 달라요. 여느 사과보다 칼슘 함유량이 2~3배 많죠.”
김 회장이 생산한 칼슘사과의 칼슘 함유량은 kg당 40~50mg이나 된다. 최근에는 아미노산 천연 비료를 섞어 칼슘 함유량뿐 아니라 비타민C와 E 성분도 증강시킨 ‘비타칼’이라는 기능성 사과도 생산하고 있다. 2006년 고칼슘 사과 재배 방법으로 특허를 따낸 김씨는 지난해 ‘비타칼’ 사과 재배 방법으로도 특허를 취득했다. 생산량도 해마다 증가해 요즘은 연간 20kg 상자 1500개 정도의 고칼슘 사과를 수확한다.
“아토피 환자와 의사들도 많이 찾아요. 그냥 화학비료를 주고 키우면 열매도 크고 색도 잘 나고 돈도 많이 벌 수 있으니 저야 좋죠. 친환경농업을 해봤자 친환경 직불제 지원을 받는 것 말고는 별 혜택도 없어요. 그래도 그건 아니다 싶었죠. 소신껏 밀어붙인 결과 칼슘사과도 잘되고 과수원 주변 환경도 좋아졌어요. 어느새 과수원 주변에 무당벌레가 생겨났다니까요. 지렁이도 늘어나고 개구리도 자주 보이고…. 그만큼 토양이 좋아졌다는 얘기 아닐까요. 이게 저에게는 작은 녹색성장이에요.”
국화로 만든 천연 소독제 · 국내 최초의 축분 발전
충남 청양의 여양농장에 만들어진 전력 생산시설. 축산 분뇨를 이용한다.
피레트린을 이용한 천연 소독제 개발은 축사 자동 무인소독 시스템 개발로 이어졌다. 식물에서 얻는 바이오매스로 친환경 보호 시스템까지 구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미 이 시스템은 경상북도의 20여 개 농장에서 시범 운영되고 있는데, 소의 만성 소모성 질병 예방은 물론 축사 악취와 질병 매개체인 파리, 모기 등 해충을 제거하는 데 큰 효과를 보이고 있다.
축산 분뇨를 이용해 전력을 생산하는 충남 청양의 여양농장은 미래 저탄소 배출 및 신(新)재생 에너지 생산 기반 체제의 본보기가 되고 있는 대표적 인프라. 국내 최초의 바이오가스 전력 생산시설이다. 지난해 3월부터 바이오가스 플랜트 시설을 활용해 돼지 축분을 친환경 처리, 시간당 40kW의 전력을 생산한다. 여양농장 최명복 사장은 “분뇨에서 얻을 수 있는 나머지 찌꺼기를 액비로 활용하는 기술 개발이 남은 숙제”라고 전했다. 그동안 농식품부, 농촌진흥청 관계자가 수차례 방문했고 지난해 말에는 환경부 장관까지 현장을 찾아왔을 정도로 관심이 쏠려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