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스럽다’는 말이 있다. 촌스러워 죽겠네, 촌스럽게 왜 그래, 촌스레 굴지 마라…. 흔히 사용하는 말이지만 도시적 세련미에 목숨 건 사람에게 잘못 쓰면 주먹이 날아들 욕이 될 수 있다. 그만큼 촌스럽다는 말에는 상대방을 비하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하지만 ‘촌스럽다’나 ‘촌사람(촌놈)’이란 표현은 비속어가 아니라 국어사전에 당당하게 올라 있는 표준어다. 사전은 촌스럽다를 ‘어울린 맛과 세련됨이 없이 어수룩한 데가 있다’, 촌사람을 ‘견문이 좁고 어수룩한 사람’이라고 정의한다(물론 촌사람의 원뜻은 ‘시골에 사는 사람’이다).
‘촌(村)’은 단순히 ‘시골’ ‘마을’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촌에 대한 인식은 이처럼 부정적이다. 표준어가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므로 부정적인 촌의 개념과 가치를 만들어낸 이는 어쩌면 ‘교양 있는’ 도시인일지 모른다. 그런데 농어촌 사람들도 이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농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근원
국립국어원 관계자는 “~스럽다는 말이 적어도 조선시대, 구한말까진 사용되지 않았으므로 촌스럽다는 말은 산업화가 급속하게 진행돼 도시와 농촌의 경계가 명확해진 1960~70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한다. 사실 촌스럽다는 말엔 농촌에 대한 도시인의 경계의식과 경멸이 묻어 있다. 따라서 도시 외곽에서 몇백m만 걸어가면 논밭이며 과수원이 나오던 50년대까지는 이 말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실제로 그 무렵엔 ‘촌스럽다’거나 ‘촌놈’이라는 표현은 전혀 쓰지 않았다는 게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의 말이다.
농어촌에 대한 이런 부정적 가치관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조선시대 농민은 ‘천하의 가장 큰 근본’으로 일컬어졌지만, 실제로는 철저한 반상(班常)의 차별 아래 농사를 짓는 주체로 늘 가난하고 천시되던 계층이었다. 본격적으로 근대화가 시작된 일제강점기를 거쳐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본격화하던 1960년대 중반까지도 우리 농촌에는 춘궁기가 있었다. 세 끼를 다 먹는 사람이 드물었고 초근목피로 끼니를 대신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굶는 것은 도시 하층민이나 농민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일제의 수탈에서 벗어난 이후인 1949년부터 정부에 의해 농업증산 계획이 실시됐지만 전쟁과 정치적 혼란 중에 식량 증산은 마음먹은 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5·16군사정변 이후 6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급속한 산업화와 함께 농민과 도시민의 삶을 분리해놓는다. 이때부터 도시민과 시골사람은 ‘세 끼 쌀밥 먹는 사람’과 ‘보리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으로 뚜렷하게 나뉜다.
이런 상황은 ‘통일벼 혁명’(1970년)이 일어나 사상 처음으로 쌀 생산이 3000만석, 4000만석을 돌파하던 1970년대 중반 이후에도 계속됐다. 하지만 그 양상은 달랐다. 80년대까지 풍작이 거듭되자 이번엔 쌀값이 폭락한 것. 정부가 나랏돈으로 쌀을 사들여 매년 800만~1400만석씩 창고에 쌓아두는 일이 이때부터 벌어진다. 덕분에 도시민은 밥걱정을 하지 않게 됐지만 농민은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손해를 보게 된다.
그러자 농민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이대로는 못 살겠다”고 하소연하기에 이른다. 도시 학생들은 너무 쌀밥만 먹는다고 분식이 강요됐지만, 농촌 학생들에겐 분식이 사치였다. 도시민은 농민을 자신들과 다른 존재로 바라보며 ‘되지도 않을 일을 비효율적으로 해서 가난을 면치 못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촌스럽다’ ‘촌놈’ ‘촌닭’…. 촌은 가난하고 비능률적이며, 주변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뭔가 불결해 보이는 것이라는 이미지를 품게 된다.
도시민에게 농사는, 도시생활에 실패하면 언제든 시골로 돌아가 할 수 있는 일로 치부된다. ‘안 되면 농사나 짓지’라는 것이다. 농업이 ‘놀면서 하는 일’쯤으로 전락한 것이다. 도시가 경제성장과 민주화 바람을 타고 고도 발전을 이루는 동안 농촌에선 청년들이 도시로, 도시로 물밀듯 빠져나갔다. ‘촌스런’ 인생을 살지 않기 위해.
웰빙으로 부활하는 村의 가치
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엔 세계화(우루과이 라운드)와 농촌 공동화(空洞化)가 심화하면서 농업부문의 물리적 구조조정이 강요됐지만, 도시민에겐 농업과 농촌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기도 했다. 농민 스스로도 이래서는 안 된다는 반성과 새로운 희망을 품었다. 쌀에 집중된 농가소득 작목이 하우스 재배 바람을 타고 다양하게 확대됐으며, 각종 연구개발(R·D)을 통해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춘 농산물도 속속 탄생한다.
차츰 농촌에도 부농(富農)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도시 소비자도 깨끗하고 안전하며 친환경적인 고품질 우리 농산물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농촌의 인식을 바꿔간다. 이 무렵 촌은 규모화, 전문화, 조직화에 총력을 기울이며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우리 농산물이 해외로 수출되는 것도 흔한 일이 됐다. 농업이 농촌에만 머무는 낙후한 1차산업이 아니라 식품산업과 연계된 2차산업이자, 도시민에게 여가와 휴식을 제공하는 관광·서비스업으로서 3차산업의 면모도 갖춰갔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도시민이 농어촌의 가치를 알아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농촌이 원래부터 가진, 그러나 그간 잊고 지내온 가치, 즉 환경과 자연, 공동체적 삶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된 것이다. 전 지구적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와 반성은 농촌의 전통과 경관, 삶의 스타일을 경계하고 버려야 할 대상이 아니라 보호하고 발전시켜야 할 무엇으로 바꾸었다.
이런 변화는 농민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도시 소비자의 요구가 ‘웰빙(참살이)’에 맞춰지면서 농민도 유기농 농산물을 비롯한 환경친화적 농산물을 배우고 연구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게 됐다. 그러면서 농민 스스로 자신이 살고 있는 자연과 환경이 얼마나 소중한 미래 자산인지를 절감하게 됐다. 고도산업화의 그늘 속에서 도시민은 생활이 각박해질수록 농촌과 맞닿은 자연이 주는 여유와 정, 깨끗하고 맑은 공기가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는 국가 자원이자 미래 가치임을 깨닫는다. 1990년대 이후 몰아닥친 귀농 열풍은 무턱대고 귀향했다 실패하던 과도기를 거쳐 ‘공부하는 귀농’으로 변해가고 있다. 협성대 도시·지역학부 윤원근 교수는 ‘농촌계획의 여건 변화와 방향 정립’이라는 논문에서 촌의 개념과 가치 변화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종래 농촌계획의 지향가치가 경제제일주의 또는 성장우선주의에 입각했다면 현재의 가치는 지속가능성의 추구로 변화하고 있다. 농촌지역 자원의 이용도 환경용량의 범위 내에서 보전을 우선시하는 환경주의 가치에 따라야 한다. 농촌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과거처럼 식량을 생산하는 데 중요한 공간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가치 있는 자원을 보유하는 장소로서 역사성과 문화성, 농업과 농촌의 독특한 경관미를 가진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주는 긍정적인 공간이라는 인식이 요구된다.”
농업은 그린산업이자 녹색성장의 엔진
이런 변화상은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해 9월 도시민과 농민을 대상으로 농업과 농촌에 대한 국민의식을 조사했더니 도시민의 85.9%가 ‘농업이 지금까지도 중요했고 앞으로도 중요할 것’이라 답했고, 7.9%는 ‘지금까지는 중요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중요할 것’이라고 답했다. 도시민의 대다수가 미래 국가경제와 자신의 삶에서 농업과 농촌이 절대적으로 중요할 것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많은 도시민은 농어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농촌지역에 특별한 복지정책이 필요하다는 데 85.6%가 동의했고, 자신이 낼 세금이 늘어날 것임에도 농촌 복지예산 증액에 73.3%가 찬성했다(반대는 4%에 불과했다). 국산 농축산물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한 사람은 8.8%에 그쳤으며, 친환경 농산물을 구입해본 경험이 있는 도시민은 78.5%에 달했다. 농업인 스스로도 자신감을 되찾았다. 농민 10명 중 6명이 수출농업의 가능성을 인정했다(60.2%). 자신이 생산하는 농축산물에 그만큼 자신감이 생겼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우리 농림수산업의 현주소는 정확히 어디고, 미래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 지난 1월 대통령 산하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가 발표한 농업 경쟁력 강화방안에 따르면 현재 우리 농업과 농업인은 조직화, 전문화, 규모화의 여정에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저탄소 녹색성장’과 수출농업을 이뤄내고 있다. 어쩌면 탄소를 흡입해 산소를 배출하는 과정에서 열매를 맺는 농림수산업이야말로 그린산업의 핵심이자 21세기 녹색성장의 동력이 아닐까. 농림수산식품부 미래전략팀 이충원 팀장(전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과장)은 우리 농업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규모화, 전문화, 조직화 등 산업화 시대의 고전경제학적 패러다임에 근거한 경쟁력 강화 노력을 지속하는 한편, 후기 산업사회 지식기반 패러다임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글로벌화, 지식정보화, 고령화, 여성화, 다문화, 기후변화, 지속가능 등이 그것이다. 나아가 ‘담론’ ‘소통’ ‘가치’ ‘존재와 인식’ 등 포스트모던 패러다임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골다움의 이야기, 자신감 있는 소통형 브랜딩, 물질적 ‘부’를 축적한 이후 단계를 고민해야 한다.”
‘촌(村)’은 단순히 ‘시골’ ‘마을’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촌에 대한 인식은 이처럼 부정적이다. 표준어가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므로 부정적인 촌의 개념과 가치를 만들어낸 이는 어쩌면 ‘교양 있는’ 도시인일지 모른다. 그런데 농어촌 사람들도 이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농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근원
국립국어원 관계자는 “~스럽다는 말이 적어도 조선시대, 구한말까진 사용되지 않았으므로 촌스럽다는 말은 산업화가 급속하게 진행돼 도시와 농촌의 경계가 명확해진 1960~70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한다. 사실 촌스럽다는 말엔 농촌에 대한 도시인의 경계의식과 경멸이 묻어 있다. 따라서 도시 외곽에서 몇백m만 걸어가면 논밭이며 과수원이 나오던 50년대까지는 이 말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실제로 그 무렵엔 ‘촌스럽다’거나 ‘촌놈’이라는 표현은 전혀 쓰지 않았다는 게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의 말이다.
농어촌에 대한 이런 부정적 가치관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조선시대 농민은 ‘천하의 가장 큰 근본’으로 일컬어졌지만, 실제로는 철저한 반상(班常)의 차별 아래 농사를 짓는 주체로 늘 가난하고 천시되던 계층이었다. 본격적으로 근대화가 시작된 일제강점기를 거쳐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본격화하던 1960년대 중반까지도 우리 농촌에는 춘궁기가 있었다. 세 끼를 다 먹는 사람이 드물었고 초근목피로 끼니를 대신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굶는 것은 도시 하층민이나 농민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일제의 수탈에서 벗어난 이후인 1949년부터 정부에 의해 농업증산 계획이 실시됐지만 전쟁과 정치적 혼란 중에 식량 증산은 마음먹은 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5·16군사정변 이후 6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급속한 산업화와 함께 농민과 도시민의 삶을 분리해놓는다. 이때부터 도시민과 시골사람은 ‘세 끼 쌀밥 먹는 사람’과 ‘보리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으로 뚜렷하게 나뉜다.
이런 상황은 ‘통일벼 혁명’(1970년)이 일어나 사상 처음으로 쌀 생산이 3000만석, 4000만석을 돌파하던 1970년대 중반 이후에도 계속됐다. 하지만 그 양상은 달랐다. 80년대까지 풍작이 거듭되자 이번엔 쌀값이 폭락한 것. 정부가 나랏돈으로 쌀을 사들여 매년 800만~1400만석씩 창고에 쌓아두는 일이 이때부터 벌어진다. 덕분에 도시민은 밥걱정을 하지 않게 됐지만 농민은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손해를 보게 된다.
그러자 농민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이대로는 못 살겠다”고 하소연하기에 이른다. 도시 학생들은 너무 쌀밥만 먹는다고 분식이 강요됐지만, 농촌 학생들에겐 분식이 사치였다. 도시민은 농민을 자신들과 다른 존재로 바라보며 ‘되지도 않을 일을 비효율적으로 해서 가난을 면치 못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촌스럽다’ ‘촌놈’ ‘촌닭’…. 촌은 가난하고 비능률적이며, 주변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뭔가 불결해 보이는 것이라는 이미지를 품게 된다.
도시민에게 농사는, 도시생활에 실패하면 언제든 시골로 돌아가 할 수 있는 일로 치부된다. ‘안 되면 농사나 짓지’라는 것이다. 농업이 ‘놀면서 하는 일’쯤으로 전락한 것이다. 도시가 경제성장과 민주화 바람을 타고 고도 발전을 이루는 동안 농촌에선 청년들이 도시로, 도시로 물밀듯 빠져나갔다. ‘촌스런’ 인생을 살지 않기 위해.
웰빙으로 부활하는 村의 가치
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엔 세계화(우루과이 라운드)와 농촌 공동화(空洞化)가 심화하면서 농업부문의 물리적 구조조정이 강요됐지만, 도시민에겐 농업과 농촌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기도 했다. 농민 스스로도 이래서는 안 된다는 반성과 새로운 희망을 품었다. 쌀에 집중된 농가소득 작목이 하우스 재배 바람을 타고 다양하게 확대됐으며, 각종 연구개발(R·D)을 통해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춘 농산물도 속속 탄생한다.
차츰 농촌에도 부농(富農)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도시 소비자도 깨끗하고 안전하며 친환경적인 고품질 우리 농산물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농촌의 인식을 바꿔간다. 이 무렵 촌은 규모화, 전문화, 조직화에 총력을 기울이며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우리 농산물이 해외로 수출되는 것도 흔한 일이 됐다. 농업이 농촌에만 머무는 낙후한 1차산업이 아니라 식품산업과 연계된 2차산업이자, 도시민에게 여가와 휴식을 제공하는 관광·서비스업으로서 3차산업의 면모도 갖춰갔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도시민이 농어촌의 가치를 알아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농촌이 원래부터 가진, 그러나 그간 잊고 지내온 가치, 즉 환경과 자연, 공동체적 삶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된 것이다. 전 지구적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와 반성은 농촌의 전통과 경관, 삶의 스타일을 경계하고 버려야 할 대상이 아니라 보호하고 발전시켜야 할 무엇으로 바꾸었다.
깨끗한 물과 땅으로 유명한 전남 장흥군 용산면 쇠똥구리 마을. 친환경으로 재배한 `적토미`가 가을 들녘을 붉은 빛깔로 물들이고 있다.
“종래 농촌계획의 지향가치가 경제제일주의 또는 성장우선주의에 입각했다면 현재의 가치는 지속가능성의 추구로 변화하고 있다. 농촌지역 자원의 이용도 환경용량의 범위 내에서 보전을 우선시하는 환경주의 가치에 따라야 한다. 농촌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과거처럼 식량을 생산하는 데 중요한 공간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가치 있는 자원을 보유하는 장소로서 역사성과 문화성, 농업과 농촌의 독특한 경관미를 가진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주는 긍정적인 공간이라는 인식이 요구된다.”
농업은 그린산업이자 녹색성장의 엔진
이런 변화상은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해 9월 도시민과 농민을 대상으로 농업과 농촌에 대한 국민의식을 조사했더니 도시민의 85.9%가 ‘농업이 지금까지도 중요했고 앞으로도 중요할 것’이라 답했고, 7.9%는 ‘지금까지는 중요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중요할 것’이라고 답했다. 도시민의 대다수가 미래 국가경제와 자신의 삶에서 농업과 농촌이 절대적으로 중요할 것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많은 도시민은 농어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농촌지역에 특별한 복지정책이 필요하다는 데 85.6%가 동의했고, 자신이 낼 세금이 늘어날 것임에도 농촌 복지예산 증액에 73.3%가 찬성했다(반대는 4%에 불과했다). 국산 농축산물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한 사람은 8.8%에 그쳤으며, 친환경 농산물을 구입해본 경험이 있는 도시민은 78.5%에 달했다. 농업인 스스로도 자신감을 되찾았다. 농민 10명 중 6명이 수출농업의 가능성을 인정했다(60.2%). 자신이 생산하는 농축산물에 그만큼 자신감이 생겼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우리 농림수산업의 현주소는 정확히 어디고, 미래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 지난 1월 대통령 산하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가 발표한 농업 경쟁력 강화방안에 따르면 현재 우리 농업과 농업인은 조직화, 전문화, 규모화의 여정에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저탄소 녹색성장’과 수출농업을 이뤄내고 있다. 어쩌면 탄소를 흡입해 산소를 배출하는 과정에서 열매를 맺는 농림수산업이야말로 그린산업의 핵심이자 21세기 녹색성장의 동력이 아닐까. 농림수산식품부 미래전략팀 이충원 팀장(전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과장)은 우리 농업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규모화, 전문화, 조직화 등 산업화 시대의 고전경제학적 패러다임에 근거한 경쟁력 강화 노력을 지속하는 한편, 후기 산업사회 지식기반 패러다임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글로벌화, 지식정보화, 고령화, 여성화, 다문화, 기후변화, 지속가능 등이 그것이다. 나아가 ‘담론’ ‘소통’ ‘가치’ ‘존재와 인식’ 등 포스트모던 패러다임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골다움의 이야기, 자신감 있는 소통형 브랜딩, 물질적 ‘부’를 축적한 이후 단계를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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