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그 지역의 차와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닌 그들의 삶의 문화다.
★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독특한 마테 문화
“마테를 나눠 마시는 것은 친구가 된다는 거야.”
녹차처럼 생긴 차 마테를 보면 아르헨티나 남쪽 끝 우슈아이아에 붙어 있는 작은 호스텔이 떠오른다. 어느 날 호스텔 식당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아르헨티나 친구들이 마테를 마시면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들은 ‘봄비야’라고 부르는 빨대로 마테를 마시는데, 문제는 하나의 빨대를 이용해 한 명씩 돌아가면서 마신다는 것이다. 내 앞에 마테 잔이 돌아왔을 때 나도 모르게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한 친구가 했던 말이 ‘마테를 마셔야 친구가 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마테는 단순히 음료가 아니라, 삶의 문화였다.
우루과이에서는 길거리를 걸으면서 마테를 마시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마테를 빼놓고 그들의 생활을 상상하기 힘들다. 공원에 데이트 나온 커플에게도, 버스 운전기사 옆에도, 노점상 아저씨의 좌판에도 마테가 있다. 이 사람들은 맛있는 마테를 마시기 위해 보온병이 담긴 큼지막한 가죽가방을 들고 다니는 수고조차 마다하지 않는다. 멋진 가죽으로 만들어진 마테 케이스가 그들의 품위를 보여준다나.
★ 오색찬란한 색으로 눈을 시원하게 해주는 꽃차
차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중국의 윈난성이다. 윈난성에서 엄지손가락으로 꼽히는 차가 바로 보이차. 오래될수록 맛과 향기가 진해진다는 보이차는 대엽종 차엽을 발효시켜 만든 것으로, 가짜들이 등장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나에게 보이차는 아픈 마음을 보듬어주던 약손이었다. 그 시절의 언저리에 묻어 있던 이별의 상처를 털어버리고 떠난 여행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집에 오는 길에 리장에서 마셨던 그 보이차를 사고 나니 만병통치약을 얻은 듯 뿌듯해졌다.
윈난에서 좋아하는 또 다른 차는 꽃차다. 특히 여러 가지 꽃차가 봉지 하나에 섞여 있는 것을 즐겨 사는데, 처음에 이 봉지를 봤을 때 커피믹스가 떠올랐다. 대추와 잣, 꽃잎과 설탕이 한 봉지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투명한 다관 속에 춤을 추듯 펼쳐지는 꽃들의 향연이며, 오묘한 색의 조화는 마시지 않고 그냥 보기만 해도 황홀하다.
★ 커피로 점을 치는 터키 사람들
몇 달 전 터키에 갔을 때도 커피를 한 아름 안고 왔다. 커피 하면 이탈리아가 먼저 떠오르지만, 터키도 만만치 않은 명성을 자랑한다. 이미 16세기 후반 이스탄불에만 카페 600여 개가 성행했을 정도.
그러나 유명세와 달리 막상 터키식 커피에 빠져들기는 쉽지 않았다. 터키 커피를 사온 것은 맛이나 향보다는 커피 만드는 과정에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터키식 커피는 아라비아산 원두를 고운 가루로 만들어 쓰는데, 1~2명분의 물을 담을 수 있는 입구가 넓은 기구에 물과 커피가루를 넣고 끓여서 만든다. 끓이다 거품이 나서 넘치려고 하면, 잠시 불을 꺼뒀다가 다시 끓이고 끄고를 3번 정도 반복한다. 달콤한 커피를 원하면 미리 말해야 한다. 터키식 커피는 커피가 나온 뒤 설탕을 넣는 것이 아니라 커피를 끓일 때 설탕을 넣어서 만들기 때문이다.
이스탄불 탁심 거리의 길거리 찻집.
★ 남자들만 가는 모로코 카페
이슬람 문화권 사람들은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도 커피를 즐긴다. 길거리에서 오며 가며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곳도 중동. 이슬람 사람들은 아침, 점심, 저녁, 아니 시시때때로 커피를 마신다. 소주잔처럼 작고 앙증맞은 잔에 달콤하기 그지없는 이슬람식 커피를 즐긴다. 처음에는 달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그 커피에 중독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시리아 하마를 여행할 때 매일 아침저녁으로 찾아가던 길거리 카페가 있었다. 이 빠진 커피잔이었지만, 그 잔의 무늬와 색은 무척이나 고풍스러웠고 할아버지의 호기심 반짝이는 눈빛은 길거리 커피에 빠져들게 했다.
커피와 관련해 재미있는 풍경 하나는 모로코에서 커피를 마실 때였다. 전 세계 에스닉한 것에 열광하는 여행자들을 끌어모으는 말라케시의 주택가에 있던 카페였는데,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흘끔흘끔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길 때문이었을까. 아랑곳하지 않고 일기를 쓰다가 주변을 둘러보니, 나를 제외하고 여자 손님이라곤 아무도 없었다. 그곳은 남자들만 가는 카페였던 것이다. 모두들 할 일 없이 퍼즐을 풀거나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 꽤 평화로운 분위기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묘한 기분이 떠나질 않았다.
세계의 수많은 차와 커피. 그리고 그것들을 즐기는 서로 다른 문화. 커피와 차에 대해서는 컬렉션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보이차를 빼고는 사온 뒤 얼른 마시는 것이 남는 것이기 때문이다. 차와 커피는 신선함이 생명이니까. 그래서 장식장을 꾸밀 새도 없이 차들은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상관없다. 내 마음속에 그들의 컬렉션이 담겨 있으니. 오늘도 여행에서 가져온 차 중 하나를 뽑아 칙칙폭폭 끓는 주전자의 물과 함께 어딘가로 떠나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