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유 화백. 이제 완전히 화가 티가 나는걸!”
유근원(63) 화백은 이제 친구들이 자신을 ‘화가’라고 부르는 데 익숙하다. 그는 미술대학을 나와 정규 과정을 거친 화가가 아니다. 서울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의 제1 인생은 기업에서 시작됐다. 대한항공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임원까지 승승장구한 그에게 시련이 닥친 것은 1998년. 신증후군이 악화돼 만성신부전증을 앓게 되면서부터다.
“투병 과정에서 지나온 생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내 삶이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는지 생각해보니, 나보다는 남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처음부터 시작해보고 싶었습니다.”
유 화백은 1998년 아내의 신장을 이식받은 후,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을 것만 같았던 미술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이런 그의 선택에 큰 힘이 된 사람은 바로 신장을 함께 나눈 아내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안사람은 여러 면에서 저의 스승입니다. 미술을 바라보는 시각, 집안 생활 등 모든 면에서 조언을 아끼지 않습니다.”
스케치부터 배우기 시작한 그의 그림 솜씨는 두 번째 전시를 열 만큼 놀라운 속도로 성장했다. 한불 수교 120주년을 맞아 프랑스 남서부 제르스 오슈시(市)가 ‘한국 미술과 문화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개최한 ‘2006 비엔날레’에 참가하는 성과도 거뒀다.
유 화백은 12월12일부터 열흘간 서울 종로구 관훈동 인사갤러리에서 개인 전시회를 연다. 앞으로도 화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통해 주어진 새 삶을 당차게 살아나갈 계획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는 없지만 우리에겐 한 가지 인생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인생을 준비한다면 우리의 삶은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유근원(63) 화백은 이제 친구들이 자신을 ‘화가’라고 부르는 데 익숙하다. 그는 미술대학을 나와 정규 과정을 거친 화가가 아니다. 서울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의 제1 인생은 기업에서 시작됐다. 대한항공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임원까지 승승장구한 그에게 시련이 닥친 것은 1998년. 신증후군이 악화돼 만성신부전증을 앓게 되면서부터다.
“투병 과정에서 지나온 생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내 삶이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는지 생각해보니, 나보다는 남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처음부터 시작해보고 싶었습니다.”
유 화백은 1998년 아내의 신장을 이식받은 후,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을 것만 같았던 미술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이런 그의 선택에 큰 힘이 된 사람은 바로 신장을 함께 나눈 아내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안사람은 여러 면에서 저의 스승입니다. 미술을 바라보는 시각, 집안 생활 등 모든 면에서 조언을 아끼지 않습니다.”
스케치부터 배우기 시작한 그의 그림 솜씨는 두 번째 전시를 열 만큼 놀라운 속도로 성장했다. 한불 수교 120주년을 맞아 프랑스 남서부 제르스 오슈시(市)가 ‘한국 미술과 문화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개최한 ‘2006 비엔날레’에 참가하는 성과도 거뒀다.
유 화백은 12월12일부터 열흘간 서울 종로구 관훈동 인사갤러리에서 개인 전시회를 연다. 앞으로도 화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통해 주어진 새 삶을 당차게 살아나갈 계획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는 없지만 우리에겐 한 가지 인생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인생을 준비한다면 우리의 삶은 지금부터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