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 홈페이지에 소개된 한국농업대학 졸업생들의 사진과 프로필.
“한 명은 전화번호도 바꿨다. 관심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취지는 좋았다. 국제결혼과 노총각으로 대표되는 농촌 총각을 대학과 국내 한 결혼정보회사가 나서서 도시 여성과 결혼시키겠다는 발상.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농촌 총각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9월10일 국립 한국농업대학(이하 한농대)은 (주)선우와 가치창조농업 1촌 결연식을 하고 졸업생들의 중매에 나섰다. 이 학교 졸업생들의 호당 평균소득은 6880만원으로 도시근로자 소득의 1.4배에 이르는 등 경제 기반을 갖추고 있지만, 농촌 총각이라는 사회적 편견 때문에 노총각 신세를 면치 못한다는 생각에서다. 당시 학교 측 홍보자료에는 전국 농림어업 종사자 10명 가운데 4명(41.0%)이 국제결혼을 하는 현실은 농업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적혀 있었다.
선우 홈피 메인화면에 사진과 프로필 장식
“김양식 (한농대) 학장이 알아보라고 해서 7월경부터 선우 측과 준비를 했다. 8개 학과 교수들에게 구혼자 한 명씩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4명이 추천됐고, 그중 1명은 (공개구혼을) 사양했다.”
한농대 관계자의 설명이다. ‘말이 통하는’ 한국 여성에게 엘리트 영농인을 소개하겠다는 발상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후 이들 3명은 스튜디오에서 사진 촬영과 프로필 작성을 했고, 11월3일 선우 홈페이지에는 ‘11월 스페셜 프러포즈, 엘리트 영농인은 누구?’라는 제목으로 그들의 사진과 프로필이 메인 화면을 장식했다. 선우 측은 11월 한 달간 영농인이 메인 화면에 게재된다며 보도자료를 냈고, 신문과 방송은 “변호사, 의사, 금융업 종사자 등 전문직 회원을 제치고 영농인이 메인 화면에 등장했다”고 보도했다. 정회원 가입비는 학교 측에서 1인당 90만원씩을 지원했으며, 선우 측은 촬영 비용과 교통비를 댔다.
홈페이지에 오른 소개 멘트는 ‘억대 연봉의 과수농장 경영인’ 황모(31) 씨, ‘5만평 대지의 농업 경영인’ 김모(27) 씨, ‘유기농 특수작물 농장 경영인’ 이모(32) 씨. 황씨는 경북 영주시에서 3만9600여 ㎡(1만2000여 평)의 과수원을, 김씨는 같은 지역에서 16만5300㎡(약 5만 평) 규모의 야콘을 재배한다는 프로필이 실렸다. 이씨는 강원 양구군에서 2만3000여 ㎡ 규모의 시설(비닐하우스)에서 오이와 파프리카 등을 재배하고 있다고 소개됐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주간동아’ 취재가 시작되자 학교와 선우 측은 말을 아꼈다. 참가자들이 홈페이지에 소개되고 언론의 관심을 받으면서 이들 가운데 일부가 심한 거부감을 보였기 때문.
“(한농대) 교수가 전화해 여자친구 있냐고 묻기에 없다고 했다. 이렇게 홈페이지를 장식하고 공개구혼까지 할 줄은 몰랐다. 개인적으로 조용히 소개해주는 줄 알았다. 공개구혼을 했다고 소문나면서 동네에서 얼굴을 못 들게 됐다. (농산물 구매) 바이어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는가. 결혼에 안달난 것도 아닌데…. (지금은) 구혼할 마음이 전혀 없다. 부담스럽다.”
참가자 가운데 한 명은 농촌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으면 하는 마음에 승낙했는데 이젠 ‘동네 창피’가 됐다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스튜디오에서 사진 촬영을 한 데 대해서는 “교수님이 추천했다고 하셔서 안 갈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일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억대 연봉’ 등 소개 멘트도 과포장
경기 화성시 한국농업대학 전경.
참가자 가운데 한 명은 지나친 관심이 부담스럽다며 휴대전화 번호까지 바꾼 상태다. 선우의 커플 매니저와 학교 측에서 연락해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선우와 학교 측은 사전에 이들의 동의를 얻어 일을 진행했다고 하지만 당사자들은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오르고 언론에 보도자료를 내는 등의 구체적인 진행 과정은 몰랐다는 반응이다. 대외적으로 알려지는 데 대한 거부감도 개인차가 있을 수 있다. 어쨌든 9월과 11월에 서둘러 보도자료를 내고 홍보를 하기보다, 농촌사회의 보수적인 분위기를 감안해 ‘조용히’ 결혼을 성사시킨 뒤 홍보했다면 어땠을까. 한 참가자는 “학교와 선우 측 모두 언론에 노출되고 싶은 마음이 앞섰던 것 같다”고 꼬집었다.
선우 노경선 팀장은 이에 대해 “이렇게까지 거부감을 나타낼 줄은 몰랐다. 좋은 인재를 소개하려고 했지만 의도와 다르게 진행됐다. 그래도 진심은 전달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한농대 교학과 임동문 씨는 “처음 진행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지금 취재하면) 어려움이 따르니, 결혼 성사 후에 홍보해달라”고 말했다. 당사자들은 ‘억대 연봉자’ ‘수만 평 규모’라는 소개 멘트도 다소 ‘포장’됐다는 반응이다.
“지난해 순수익을 따져보면 8000만원 정도다. 나의 소득이라기보다 부모님 등 가족이 함께 번 농가소득이다.”
“순수익은 5000만원 정도다. 도시의 과장급보다는 나은 수준이다.”
이들은 또 대규모 영농을 하지만 상당 부분 땅을 임대해 농사짓고 있다고 말했다. 영주시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황씨와 김씨 외에도 사과재배 농가 대부분이 연 수익 5000만~1억원이 된다. 과수원 규모가 1만6500㎡(약 5000평) 정도면 연 수익 1억원은 거뜬하다”고 전했다.
11월11일까지 참가자 2명에게 만남을 신청한 여성은 각각 3, 4명. 참가자 1명에게는 현재까지 신청자가 없다. 선우 이웅진 대표는 “‘농촌 총각’을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띄우는 데 대해 내부 논란이 많았다. 그래도 농촌 문제의 대안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첫 단추라고 판단했다. 사회 정의 차원에서 시작했는데 역효과가 우려되는 상황이 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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