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은 대세가 분명하지 않을 때 불안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자신이 추종해야 할 것이 확실하지 않고 이론이 팽팽하게 맞서 있을 때 행동 방향을 정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서구처럼 개인주의적 문화를 형성했고 독자적 판단을 권장하는 문화에서는 이런 불안이 생기지 않는다
놀라지 마시라!
1위는 부실 공사, 2위는 교통사고였다. 부패는 3위를 차지했으며 실업은 그 다음, 금융 위험은 13위다(한국학중앙연구원, 1999·그림1 참조).
지금은 어떨까.
1999년과 2007년은 달랐다. 1999년엔 ‘경제불안’을 느끼는 사람이 ‘사고불안’ ‘도덕불안’을 걱정하는 사람보다 적었다(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2007·그림2 참조). 2007년 응답자는 ‘경기변동’ ‘실직’ ‘신용불량’ 등 경제불안을 심각하게 여겼다.
“2007년 응답자는 10년 전에도 경제불안이 압도적으로 심각했으리라고 기억했다. 2008년에도 비슷한 조사가 실시되고 있는데 경제불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더 커졌다.”(한상진 서울대 교수·사회학)
더 좋은 집에서 살고, 더 멋진 옷을 입고, 더 비싼 음식을 먹는데도 경제적으로 불안한 까닭은 무엇일까. 문화평론가 정윤수 씨의 분석이다.
다른 가치 찾기 어려운 획일화된 삶
“추억이 다르고, 삶의 결이 다르고, 기억이 다르고, 그래서 인간 내면의 지향과 가치가 서로 다르다면 사회가 강제하는 ‘불안’을 내면화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삶이 획일화해 한 개인이 이 사회의 집단적 욕망과는 ‘질적으로 다른’ 가치를 갖기 어렵다. 그래서 다들 ‘돈! 돈! 돈!’이 됐고 큰 차, 큰 아파트가 욕망의 모든 것이 돼버렸다. 이래서는 고유하고 독특한 과거 혹은 저마다 다양한 미래에 대한 상상이 있을 수 없다. 무조건, 지금 당장, 지금 이 순간 어떤 크기의 차와 아파트인가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다채롭던 과거도 남지 않았고 자신만 누릴 수 있는 독특한 미래도 찾기 어렵다. 오직 현재의 ‘크기’뿐. 그런데 만일 그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게 느껴진다면 우리는 늘 ‘불안’에 휩싸여 있을 수밖에 없다.”
사람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불안을 표출하는 것은 낯가림이다. 정신과 전문의인 하지현 건국대 교수는 낯가림을 “사람이 느끼는 원초적 불안”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사랑받는다는 느낌, 존중받는다는 느낌, 관심 받는다는 느낌에 민감하다.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면 어떡하나’가 낯가림의 근원이다. 어린이가 낯선 이를 보면서 그 사람이 나를 미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떠는 것처럼.
“불안과 공포는 그 메커니즘이 같다. 즉, 긴장하면서 심박 수가 빨라지고 자율신경계가 항진한다. 둘 다 주관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다. 어른이 불안할 때 아이들처럼 오줌을 지리지 않는 이유는 불안을 견디는 방식을 익혔기 때문이다. 사회적 지위에 대한 불안은 권위주의적인 아버지 혹은 사회에 대한 기억에서 비롯했을 수도 있다.”
독일의 석학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론’은 불안한 현대문명을 꼬집는다. 첨단 과학기술이 풍요의 산파인 동시에 엄청난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는 것. 광우병이나 멜라민 파동은 벡이 지적한 위험사회의 대표적인 예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문화콘텐츠학)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은 독일 같은 유럽식 ‘위험사회’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서구는 합리적인 사회·정치·문화 시스템을 구축한 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과 자본주의 시스템을 향유하면서도 그 위험에 대응할 만한 사회 시스템이 부재하거나 부실하다. 지금 사람들은, 불안을 줄이는 쪽으로 사회 시스템을 정비해야 할 정치인들이 어떤 일을 해주리라는 기대를 버리고 있다. 동물처럼 생존경쟁만 벌이는 곳은 난민사회다. 그런 곳에서 어떻게 불안하지 않겠는가. 고도로 합리화한 과학기술이 비합리적인 사회체계와 어우러진 곳이 한국이고, 이러한 사회가 구성원의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우울이 단일한 양태를 보이는 감정이라면 불안은 신경증적 불안장애, 공포증, 공황장애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나타내는 감정이다. 특정 캐릭터로 비유하자면 영화 속에서 건강염려증이나 강박증에 사로잡힌 우디 앨런의 모습 정도가 적당하겠다. 영화평론가이자 임상심리학자인 심영섭 씨의 설명이다.
“불안장애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한국인은 특히 스트레스와 관련 있다. 특히 한국은 사회적 압박이 강한 나라다. 얼마 전 여대생을 대상으로 스트레스에 대해 조사했는데, 스트레스 지수가 150을 넘는 사람이 많아 깜짝 놀랐다. 일반적으로 스트레스 지수가 150~300이면 2년 내 심각한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 홈스(holmes)의 스트레스 기준표로 설명하면 배우자의 사망(100), 이혼(73), 결혼(50), 실직(47), 임신(40), 성생활 불만(39), 새로운 가족(39), 이직(36), 가정불화(35), 졸업과 입학(26), 이사(20) 등에서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느낀다. 최진실 씨 같은 스타의 사망은 전 국민에게 최소한 10 이상의 스트레스를 주지 않았을까 싶다.”
한국인은 대세가 분명하지 않을 때 불안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자신이 추종해야 할 것이 확실하지 않고 이론이 팽팽하게 맞서 있을 때 행동 방향을 결정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서구처럼 개인주의적 문화를 형성했고, 독자적 판단을 권장하는 문화에서는 이런 불안이 생기지 않는다(그렇다고 동양 문화권의 특징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일본인은 집단에 소속되지 않았을 때 불안감을 느끼지만 그 집단이 사회 전체의 대세에 반하더라도 문제 되지 않는다). 황상민 연세대 교수(심리학)는 이렇게 말한다.
초불안사회 국가의 구실 무엇보다 중요
“한국은 대세로 움직이는 사회다. 실제로 북한이 핵 보유를 선언했을 때도 한국 사회에는 큰 파장이 일지 않았다. 왜냐하면 분명해졌으니까. 서구로선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인에게 대세는 그만큼 중요하다. 사회적 지도자에 대한 믿음이 확실하고 사회의 지향이 분명해지면 불안을 덜 느낀다.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는데 저런 상황이 벌어진다든지, 앞뒤가 안 맞을 때 이중추론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불안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 임기 말에 ‘불안’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한 사실만 봐도 그렇다. 종합주가지수가 2000포인트까지 올랐음에도 불안하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당시 그 원인으로 꼽힌 게 ‘대통령의 말실수’였고,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라는 말도 유행했다. 물론 지금 상황은 더 복잡하다. 새로운 사람을 대세라고 생각해 대통령으로 뽑았는데 그 리더가 과연 믿을 만한 사람인지 불안한 것이다. 대통령은 경제위기가 없다고 말하지만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경제는 나쁘다. 주가와 환율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상황에서 대세를 쥐고 있다고 믿은 리더를 의심하는 형국이다.
불안이 사회를 발전시키는 동력이 된다는 점에는 일정 부분 동의한다. 불안은 사회를 다이내믹하게 혹은 피곤하게 만든다. 즉, 행동준칙을 모를 때는 각자 발작적으로 다양한 행동을 한다. 그러다 우연히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는데, 이게 마치 해결책으로 떠오르고 모든 이들이 이러한 미신적 행위에 ‘몰빵’한다. 그런 점에서 불안은 우리 사회의 ‘삽질’이 일어나는 원동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회 발전의 틀로 봤을 때도 낭비가 많은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사회 분위기가 조울증과 닮았다는 점에서 심각하다고 느낀다. 월드컵 같은 때는 막 일어났다가 악재가 생기면 모두 죽을 것처럼 우울해한다.”
한의학에서 불안은 심허증으로 볼 수 있다. 심장에 피가 부족하거나 기운이 없는 것이다. 심허증은 심리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압구정경희한의원 김균태 원장의 말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 관심이 있고 그에 믿음을 가지면 ‘사랑’이라고 할 수 있지만, 관심은 많은데 의심을 품으면 불안해진다. 예를 들어 시험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자신의 능력을 믿을 수 없을 때 불안하고, 주식투자에 관심은 많지만 앞으로의 상황에 믿음이 없으면 불안한 것이다. 사람들이 불안을 많이 느끼는 이유는 세상은 빨리 변하는데 자신만 늦고 있다고 생각하고, 뛰어난 사람이 많은데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주변은 늘 풍요롭고 화려해 보인다. 갖고 싶은 욕구는 끝이 없다. 관심은 넘치는데 현실은 모자라고 자신의 능력은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사람은 늘 불안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베이비부머를 불안하게 하는 건 노후 문제다. 아파트, 증시에 민감하고 실직과 사회적 지위의 상실을 걱정하는 것도 노후와 관련 있다. 경제학자 우석훈 씨(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의 설명이다.
“주위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노후에 대한 불안이 가장 크다. 현재의 연금구조와 미비한 사회안전망이 결국 노후에 문제를 일으키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지금을 불안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싶다. 한국 경제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격변기에 접어든 셈이고, 이 과정에서 안정성이 상당히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 속에서 예전의 상식은 잘 통하지 않고 경제 또한 전체적으로 저성장 기조로 접어들다 보니, 나쁜 방향으로의 불안을 많이 느끼는 것 같다. 여기에 한국 사회의 안정성을 만들어내던 중산층이 줄어들면서 불안이 가중된 것으로 보인다. 아주 가난한 사람들은 예전보다 불안이 더 늘어난 것 같지는 않다. 중산층의 삶은 실제 상대적으로 어려워졌을 것이고, 그 속에서 불안이 커진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볼 수 있다.”
한상진 서울대 교수는 초불안사회, 초위험사회에 들어선 만큼 국가의 구실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전 지구적 금융위기가 불안을 더욱 키우고 있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정부는 신뢰를 주지 못한다. 신뢰를 형성하지 못하면 위험과 불안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사회적 합의’ ‘사회적 대타협’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정부가 불확실성을 부추기면서 불안을 가중해선 안 된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솔직히 인정하고 신뢰와 협력의 틀을 꾸릴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