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판을 들어 응찰 의사를 표시하는 경매 참가자들.
“땅!”
3월12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전국은행연합회관 2층 국제회의실. 경매사 강은 씨(지지옥션 팀장)의 낙찰 경매봉 소리에 객석은 술렁거렸다. “더 칠(응찰할) 걸 그랬나?” “아냐. 아직 물권 분석이 안 돼 찜찜했어”….
감정가 6억4000만원인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라이프콤비 아파트 한 채(전용면적 131.6㎡)가 5억5000만원에 낙찰된 것이다. 강씨는 “첫 낙찰입니다. 박수로 축하해주세요”라며 대한민국 부동산 민간경매 ‘낙찰 1호’를 기념했다.
이날은 민간 경매업체 지지옥션이 국내 첫 부동산 민간경매를 한 날. 행사 시작 시간은 오후 3시였지만, 참가자들은 한 시간여 전부터 삼삼오오 입장해 토지·건물 시가명세표와 등기부등본 등 물건자료집을 꼼꼼히 살피고 있었다.
객장 170여 석 빽빽 … 민간경매에 대한 관심 반영
오후 3시. 지지옥션 강명주 대표, 김병준 변호사, ‘39세 100억 부자’의 저자 이진우 씨의 동영상 축하 메시지와 성악 중창단 공연이 이어지자 참가자들은 “법원경매보다 (진행이) 부드럽다”는 반응이었다.
어느새 객장 안의 170여 석은 모두 찼고, 100여 명은 선 채로 경매를 기다렸다. 참가자들의 연령대는 주로 50, 60대. 30대도 간혹 눈에 띄었다.
이날 경매에 붙여진 부동산은 상가 13건, 아파트 4건을 비롯해 오피스텔, 다가구, 근린주택, 펜션, 토지 등 총 32건. 감정가 110억원이 넘는 경기 수원시의 상가건물에서부터 전원주택지로 적합한 5800만원 상당의 경기 남양주시 임야까지 가격대도 고루 포진했다.
“자, 본격 경매에 들어가기 전 ‘손드는 연습’부터 할까요. 시중가 13만원인 금 한 돈(3.75g) 황금열쇠를 1만원부터 경매합니다. 1만원 있나요?” 여기저기에서 손을 들었다. “2만원! 4만원! … 13만원!” 14만원에 응찰한 60대 남성에게 낙찰되자 객장에 웃음이 터졌다.
웃음도 잠시. 3시30분 본 경매가 시작되자 객장은 일순간 고요해졌다.
“총 32건 물건 가운데 첫 번째입니다. 대구 달성군 가창면 근린상가(244.76㎡)를 감정가(4억2747만원)부터 시작합니다. 편의상 100만원 단위까지만 호가하겠습니다. 4억2700만원!”
민간경매 방식은 이랬다. 매도자가 인터넷이나 전화로 물건을 접수하면 분쟁 소지가 있는지를 가린 뒤 중개계약 예납금(공부발급 등에 드는 비용)을 낸다. 5억원 미만 물건은 30만원, 이상은 50만원. 매각되지 않으면 100% 환불해준다. 이후 감정평가사들이 감정평가를 한 후 지지옥션 홈페이지 등에 매물을 공고한다. 이때 매도자가 감정가보다 높은 가격을 원하고 매수자가 나오면 수의계약. 나머지는 경매에 나온다. 1차 경매가는 감정가와 같지만 낮게 내놓는 경우도 있다. 물건접수 → 심사 → 중개계약 예납금 납부 → 감정평가 → 매물공고·검색 → 희망가 수의계약 → 공개입찰 순이다.
경매 진행은 미술품 경매처럼 경매사의 호가에 번호판을 들어 응찰의사를 표시하면 된다. 1차 유찰 시 5% 낮춰 2차 경매를 시작한다. 2차 유찰 시에는 가격 조정 후 다음 경매에 나온다. 번호판을 들려면 입찰보증금 100만원을 내야 하는데 낙찰 받지 못하면 현장에서 보증금을 돌려받는다.
다시 돌아 경매장. 첫 물건에 대한 반응은 싸늘했다. “1차 응찰자는 없습니다. 2차 경매 시작합니다. 5% 내린 4억600만원! 없습니까? 유찰!” “땅!” 곳곳에서 “와, 빠르네”라는 반응이 터져나왔다.
세 번째 물건까지는 연속 유찰. 지방 물건이라 관심이 적기도 했지만 응찰자들의 ‘숨고르기’도 작용한 듯했다.
경매 참가자들이 물건자료집을 꼼꼼히 살피고 있다. 겅매 진행 모습(오른쪽).
네 번째는 서울 여의도동 라이프콤비 아파트. 이날 절대경매 방식(1000만원부터 시작하는 최고가 낙찰 방식)에 부쳐지는 2건 가운데 하나로 관심이 큰 물건이었다. “1000만원!” 곳곳에서 번호판이 올랐다. “4억6000 있습니다. 5억, 5억5000. 5억6000 없나요? 5억5000에 낙찰!” “땅!”
지지옥션 장근석 매니저는 “집주인이 급히 해외로 가야 해 급매물을 내놓은 것”이라며 “절대경매는 긴급처분 건이나 더 좋은 가격을 받으려는 매도자가 내놓는다”고 귀띔했다. 매도자가 절대경매 낙찰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입찰보증금의 2배(200만원)를 돌려주면 된다.
한동안 잠잠하던 번호판은 일곱 번째 충남 천안시 신당동 임야(대지 3307㎡)에서 다시 불이 붙었다. 1차 경매가 8267만원은 유찰. 2차 7854만원 호가가 나오자 5명이 번호판을 들었다. “7900만, 8000만, 8100만! 낙찰!” 감정가보다 100만원 낮게 낙찰됐다.
이후 스물다섯 번째 절대경매 물건까지 18건 연속 유찰. “경기 시흥시 정왕동 상가 3층 2개실(225.45㎡·감정가 5억7000만원)을 터 피부비뇨기과가 입주한 상가입니다. 월 임대료 280만원을 받고 있습니다. 1000만원부터 시작합니다.” ‘두더지게임’의 두더지처럼 번호판이 올라왔다. 낙찰가는 5억5000만원.
이어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의 토지(331.0㎡)가 1차 경매가 1억7973만원에서 ‘응찰 불꽃’이 튀기 시작하더니 1억8300만원에 낙찰되면서 유일하게 감정가 이상의 낙찰가율(101.8%)을 기록했다.
이후 경매는 유찰 행진을 이어갔고, 결국 국내 첫 부동산 민간경매에서는 4건만 새 주인을 찾았다. 사실상의 ‘흥행실패’. 하지만 ‘기다림의 지혜’를 아는 관망파들은 ‘정중동(靜中動)’ 행보를 예고했다.
서울 성북구 석관동에서 온 한 참가자는 “경매장 분위기를 보러왔다. 물건에 문제는 없는지, 소유권 이전은 제대로 되는지 등을 지켜본 뒤 투자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집에서 논다”고 밝힌 50대 한 남성은 “법원경매보다 신속하고 보증금 등 경비도 적어 해볼 만한 것 같다”면서 “오늘 유찰된 물건이 다음 달 가격 조정 후 다시 나오면 ‘베팅’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강 팀장은 “4월 경매는 저감폭이 더욱 커 응찰자가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공인중개사들의 참여가 늘면 경매는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지옥션은 4월9일경 2차 민간경매를 실시할 예정이다.
돌지 않는 자본을 ‘재처리’해 자본주의의 숨통을 틔운다는 경매. 부동산 민간경매가 대한민국의 숨통을 틔울지, ‘꾼’들의 숨통을 틔울지는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