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첫 방송을 탄 ‘6시 내고향’은 4000회에 접어든 장수 프로그램이다.
“아, 시골에서 올라왔구나.”
현대인은 시골이라는 단어에서 다소 ‘뒤처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당시 촌스러운 차림 때문에 행정구역상 ‘시’에 속하는 고향이 ‘시골’로 폄훼된 것 같아 기자는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은 시골이 아니에요! ‘시’인데요.”
상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지방 출신들은 자신의 고향이 ‘시골’로 지칭되는 것에 당황한다. 대다수 서울시민은 그게 면·리 단위의 작은 농촌마을이건, 인구 300만이 넘는 부산광역시건 모두 ‘시골’이라고 통칭한다.
“사투리는 안 쓰네?”부터 “혹시 너희 집도 과수원 하니?(해안가 도시의 경우, 아버지가 배 타시니?)”류까지. 그런데 이런 몰이해가 몇몇 개인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KBS 1TV에서 매일 저녁 6시에 방송되는 ‘6시 내고향’. 지방에서 제작되거나 지방을 배경으로 한 로컬 프로그램이 드문 상황에서, 전국 몇 개 지역을 각 지역방송국의 네트워크로 연결해 소식을 들려주는 ‘6시 내고향’은 서울 외 지역이 등장하는 흔치 않은 프로그램이다. 1991년 5월 첫 방송된 이래 17년을 넘기고 있는 ‘6시 내고향’은 3월 말(3월21일)이면 4000회를 기록한다. 제작진이 홈페이지에서 밝힌 프로그램 기획의도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은 “(방송의) 공영성을 제고하는 데 기여하고 있으며 고향을 떠난 도시인들의 각박한 삶에 위안을 주는 동시에 자기 고향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하고 다양한 문화를 접하게 하는 구실에 충실”하고 있다.
문제는 ‘6시 내고향’ 속 ‘고향’이 늘 농어촌, 산촌으로서만 존재한다는 점이다. 건설교통부가 발표한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도시화율은 90.2%(2005년 기준)에 이른다. 대다수의 고향이 도시화됐다고 짐작할 수 있건만 이 프로그램 어디에도 ‘도시’ 고향은 등장하지 않는다.
17년 방송 4000회 기록 늘 농어촌 ·산촌 모습
기자의 고향인 ○○시의 경우 드문드문 ‘6시 내고향’에 소개된다. 최근 방송된 내용은 ○○시의 외곽에 있는 섬마을 이야기였다. 10분 남짓한 방송 내용으로 보면 ○○시는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과 정겨운 인심이 가득한” 곳이다. ○○시에서 여객선을 타고 바다의 “비경을 감상”하며 조금만 움직이다 보면 “캐고 또 캐도 계속 나오는 홍합”이 가득한 △△도에 갈 수 있다. △△도의 홍합은 “자연 그대로의 맛”을 지니고 있는데, 이 홍합으로 섬마을 어민들은 “맛도 나누고 정도 나누며” 지내는 사이 “웃음꽃이 핀다”. “홍합이 있는 곳에 어민들의 행복도 가득”하다고 리포터는 전한다.
방송으로 봐서는 ○○시에 가면 홍합을 캐며 즐거워하는 어민을 쉽게 만날 것 같다. 하지만 20년간 ○○시에 살았던 기자가 고향에서 만난 어민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그리고 그 어민의 대다수는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그렇게 즐거울 날이 많지 않다. 이는 비단 ○○시의 경우에 그치지 않는다. 이 프로그램만 보면 부산은 자갈치시장만의 활기가 넘치고 전남 영광은 굴비의 감칠맛, 강원도 태백은 야생동물이 살아 있는 날자연의 모습을 아직 간직한 곳이다. 그리고 그곳에 사는 고향 사람들은 늘 “넉넉하진 않아도 정겨운 우리네 인심을 간직한 이들”이다. 이들은 방송이 만들어진 17년 전부터 지금까지 한결같다.
‘6시 내고향’과 유사한 형식의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으로는 MBC ‘해피실버 고향은 지금’, SBS ‘얼쑤 일요일 고향 애’가 있다. ‘6시 내고향’과 달리 일요일 아침 7시경에 방송되는 이 프로그램들은 주시청자를 노년층으로 명확히 정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하지만 ‘고향 → 서울 외 지방 → 넉넉한 인심의 시골마을’이라는 도식은 ‘6시 내고향’과 마찬가지다. 방송 속의 고향 어디에도 지방 소도시 자영업자들의 경제상황이나 생태파괴 상황, 취업이 안 돼 공무원시험에만 매달려야 하는 지방대생의 어려움 같은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농어촌 홍보에 일조, 그러나 살아 있는 삶 담아야
이쯤 되면 타이틀에 붙은 ‘내 고향’이 누구의 고향인지, 그 고향이 실제 존재하는지 갸웃거리게 된다. 방송에 비친 고향은 진짜 고향 또는 지방의 모습이라기보다 서울에 사는 도시 장년층의 판타지에 가깝다.
물론 농어촌 대상 프로그램이 부족한 가운데 농어촌을 홍보하는 이 같은 프로그램이 농어촌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을 농어촌 대상으로 한정시키더라도 진짜 농어촌의 현실이 배제됐다는 비판은 면할 수 없을 듯하다. 부채가 쌓여가고 젊은 사람들이 모두 떠난 가난하고 스산한 농어촌의 현실이 방송에서는 “소박하지만 마음만은 넉넉한” 상태로 미화된다. ‘6시 내고향’은 지역차별과 농촌현실을 이중으로 왜곡하고 있는 셈이다.
KBS의 한 편성 관계자는 ‘6시 내고향’이 일부 장년층에게 특히 호응을 얻고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 ‘6시 내고향’의 전국 평균 시청률은 10%대로 저녁 6시 시간대를 감안한다면 꽤 높은 편이다(20%대 점유율). 이들 시청자 중에는 인심 좋은 시골마을이던 자신의 고향을 추억하는 서울시민뿐 아니라, 여전히 고향에서 살고 있는 지역민도 많다. 서울중심주의가 만연한 가운데 방송에서 전체 국민의 3분의 2를 이루는 서울 외 지역 사람들의 삶을 소개하려는 시도는 필요하다. 하지만 그 시각이 마냥 낭만적인 것은 위험하다. 방송에서 비춰진 고향이 당신의 고향 현실을 제대로 담고 있는가. ‘6시 내고향’에 진짜 고향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