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0일 가칭 ‘자유신당’ 창당발기인대회에 참석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현재 한나라당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 내부에선 “의회 150석, 최대 200석을 목표로 한다”는 자신감 넘치는 구호들이 쏟아지고 있다. 여기에는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원내 과반의석 확보는 필수불가결하다는 주장이 덧붙는다. 압도적인 대선 승리를 발판 삼아 완벽한 집권세력으로 변모하겠다는 구상인 셈이다.
이 같은 그림을 위해선 두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하나는 친박(親朴) 진영과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하지 않고 화합하는 모양새로 공천을 마무리짓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다.
그러나 자유신당이 보수진영에 일정한 세를 형성하며 연착륙할 경우 둘 다 쉽지 않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고민이다.
1월14일 서울 남대문로 단암빌딩 9층에서는 자유신당의 현판식이 열렸다. 창당준비위원회(이하 창준위)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날이다. 당직자들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 감격스러운 표정과 함께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자유신당 총선준비위원장을 맡은 강삼재 전 의원은 4·9총선의 목표 의석수를 묻는 질문에 “깜짝 놀랄 의석을 확보해 제1야당이 되겠다”고 답해 눈길을 끌었다. “2월 중순까지는 공천 작업을 마무리하겠다”는 것이 강 전 의원이 밝힌 자유신당 측 총선 일정이다. 한나라당의 일정에 비해 반 박자 느리다.
자유신당 측이 이처럼 자신감을 나타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자유신당의 가장 큰 자산은 이 전 총재가 확보한 15%의 대선 지지도다. 그 덕에 대선 비용까지 고스란히 돌려받아 자금 면에서도 여느 군소 정당보다 여유 있다.
1월14일 현판식 … 총선 돌풍 기대감
인재풀이 부족하리라는 우려에 대해서도 크게 걱정할 것이 없다는 태도다. 지금 당장 한나라당으로 쏠리는 인재들이 모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할 수 없는 현실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공천 잡음이 심해질수록 이득을 볼 곳은 자유신당이라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다. 자유신당의 총선 일정이 한나라당보다 반 박자 느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최병렬 서청원 전 의원 등 2002년 한나라당을 이끌었던 ‘올드보이’의 귀환 소식과 한나라당 세대교체 대상이 될 법한 박희태 의원 등 중진들의 정계은퇴 거부 움직임도 자유신당 처지에서는 반갑다.
반대로 적어도 30%, 많게는 40% 이상 새 얼굴로 공천 명단을 채우고 싶어하는 이 당선인 처지에서는 고통스러운 상황이다. 공천작업에 가장 근접한 이재오 정두언 의원 측은 단 한 명의 올드보이라도 공천할 경우 후폭풍을 일으켜 당 쇄신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자유신당만 따로 떼놓고 보면 수도권에서 과연 당선자를 낼 수 있을까 싶을 만큼 허술하지만, 정치역학적으로 보면 미처 뇌관을 제거하지 못한 핵폭탄인 셈이다.
자유신당의 암초는 다시 시작된 2002년 대선잔금 수사다. 계기는 조금 허무하게 찾아왔다. 다 죽었던 불씨를 되살린 것은 다름 아닌 이 전 총재 자신이다. 한 시사주간지가 대선을 앞둔 지난해 11월, 이 전 총재가 연루됐던 불법 대선잔금의 향방과 이후 두 아들의 재산이 불어난 배경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자 검찰에 고발한 것이다.
고소 고발이 난무하는 시점이었음에도 검찰은 이 사건에 대해서만큼은 민첩하게 대응했다. 검찰은 불법 대선자금의 핵심 인물로 구속됐던 서정우 변호사의 최측근 이두아(37) 변호사를 곧바로 소환했다. 이 변호사는 최근까지 스스로를 “이 전 총재의 대선자금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소개한 인물이다.
또 민주노동당은 지난해 11월22일 이 전 총재를 횡령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민노당은 그동안 제기된 각종 의혹을 토대로 “이회창 후보가 지난 대선 직후 대선잔금 150여 억원을 보관했다 검찰 수사가 시작된 2004년 삼성에 뒤늦게 돌려줬다”며 “이 과정에서 일부를 사적 용도로 쓴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이 자금 추적 분야에서는 국내 최고인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최재경)에 배당된 것만으로도 검찰의 수사의지를 엿볼 수 있다.
대선잔금 수사의 핵심은 바로 자금의 행방이다. 의혹의 초점은 이 전 총재가 2002년 대선 직후 정계를 은퇴하면서 138억원의 대선잔금을 은닉했다가 수사가 재개되자 1년3개월 만에 몰래 되돌려줬다는 것. 이 같은 내용은 검찰에 소환된 이 변호사는 물론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과도 상당 부분 일치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문제는 이 전 총재가 2004년 수사 직후 이 돈을 서정우 변호사가 갖고 있었다고 해명했다는 점이다. 때문에 새로운 증언과 수사결과만으로도 이 전 총재는 특별경제 가중처벌법상 횡령죄를 면할 수 없게 된다. 만일 횡령죄가 성립돼 공개된다면 자유신당의 창당 작업은 곧장 암초에 부딪힌다.
뿐만 아니라 보도된 내용대로 이 전 총재가 대선잔금을 17대 대선 비용은 물론, 부동산 취득 비용으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 정치생명에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으리라 예상된다.
검찰은 계좌추적 등 수사과정에서 일부 단서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발표를 미룬 채 철저한 보안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인물은 사건의 열쇠를 쥔 이 변호사다. 이 변호사는 2003년 대선자금 수사 당시 서 변호사가 대표변호사로 있던 법무법인 ‘광장’ 소속이었다. 이념적으로 이 전 총재와 가깝다. 그는 2005년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시변)의 창립 멤버이자 총괄간사로 뉴라이트운동의 한 축을 담당하기도 했다.
한나라당은 지난해 11월8일 이 전 총재의 대선 출마를 저지하기 위해 이 변호사를 이명박 후보의 ‘인권특보’로 영입했다. 그것 자체만으로도 이 전 총재를 압박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던 것. 실제 한나라당은 이 변호사를 통해 불법 대선잔금 의혹에 대해 폭로를 시도했지만, 이 변호사는 “내용은 잘 알고 있지만 공적 업무로 접한 정보이기 때문에 발설할 수 없다”며 거부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한나라당의 창당 방해 음모 … 문제 될 것 없다”
이 변호사는 ‘주간동아’와의 전화통화에서 “대선잔금 처리 문제로 자유신당과 한나라당 사이에 끼면서 옴짝달싹할 수 없는 처지에 몰렸다”고 토로했다. 이 변호사의 하소연이다.
“왜 일이 이렇게 됐는지…. 검찰이 어째서 나를 찍어 (참고인으로) 불렀는지 모르겠다. 미안하지만 나는 지금 어떤 것도 확인해줄 수 없다.”
사건이 눈덩이처럼 커지자 이 전 총재 측은 최근 해당 시사주간지에 제기했던 고소를 취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특수1부로까지 확대된 수사를 고소 취하만으로 막을 수는 없으리라는 것이 한나라당 측의 기대다.
그렇다고 검찰이 대선잔금 수사를 본격화할 것으로 예측하기도 쉽진 않다. 이는 곧 2004년 검찰 수사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선자금 수사 당시 검찰은 “대선잔금은 154억원이며, 이중 138억원은 기업에 다시 돌려주고 16억원은 당에 남겨놨다”고 발표했다. 대선잔금 용처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5년 만에 재수사가 착수될 경우 자칫 검찰도 상처를 입을 수 있다.
한나라당 측은 이 전 총재가 불법 대선자금 사용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돼 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삼성에 되돌려주지 않은 대선잔금이 검찰 발표보다 더 많거나 용처 역시 국민감정에 반하는 대목이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한나라당 이방호 사무총장은 지난해 11월1일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수첩에 적혀 있던 ‘우리 모두 다 죽는다’는 내용을 언급하며 “이회창 후보가 대선에 출마하려면 대선에서 쓰고 남은 자금의 용처를 밝히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전 총재 측은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자유신당 창당작업을 본격화한 것도 이 같은 자신감의 발로다. 자유신당 이혜연 대변인은 대선잔금 관련 의혹에 대해 “한마디로 한나라당의 창당 방해 음모”라고 주장했고, 이헌 변호사는 “이두아 변호사는 대선잔금의 실체를 알 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주목되는 대목은 대선 직후 한나라당이 이명박 당선인 측과 이 전 총재 간에 화해를 여러 차례 시도했다는 점이다. 한나라당은 이 전 총재에게 몇 가지 매력적인 직위를 제안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이 전 총재는 물론 이 당선인조차 큰 거부감을 나타냈다고 한다.
이 당선인은 한나라당을 온전히 지켜내면서 자유신당을 고립시킬 수 있을까. 반대로 자유신당은 검찰 수사를 피해 4월 총선에서 원내교섭단체를 꾸리며 번듯한 보수야당으로 설 수 있을까. 대선 후 정국을 바라보는 첫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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