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민족의 성지(聖地) 백두산을 중국이 무단으로 점거하고 있다”는 한국 언론과 정치인들의 인식은 과연 옳은가. 옌볜의 많은 조선족들은 ‘민족 감정’을 앞세운 이러한 주장을 극도로 경계한다. 그리고 “중국과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것이냐”고 반문한다. 중국과 남북한 모두를 섬겨야 하는 ‘경계인’의 삶을 살아가는 그들에게 백두산은 이상도 이념도 아닌, 그저 팍팍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 창바이산(長白山)에 밀려 사라져간 이름 ‘백두산’을 지키는 것 하나도 이들에겐 쉽지 않다.
- 한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며, 또 중국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한 지식인이 말하는 ‘백두산 관광에 대한 단상’을 담아봤다. -편집자 주-
백두산 천지를 찾은 중국인 관광객들. 매년 300만명 가까운 중국인이 백두산 관광에 나서고 있다.
백두산 관광길은 한국 사람들이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중 수교 이후 한국 사람들은 백두산으로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오랫동안 백두산 천지의 용신이 우리 민족을 지키고 있다고 믿어왔기 때문에 흰떡에 색이 들지 않은 흰색 반찬을 상에 차려놓고 백주를 부어 올린 뒤 용신께 무궁한 안정을 기원했다. 육당 최남선은 우리 고대문명을 발칸반도에서 한반도에 거대한 띠처럼 연결돼 있던 ‘불함문화’라 불렀고, 20세기 초 도인들은 백두산 장군봉 밑 천지 기슭에 ‘대태백 대택수 룡신비각’을 세워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기원했다.
옌볜은 중국의 변경이고 산업이 발달하지 못한 소수민족 지역이다. 그러나 관광산업이 옌볜의 주요 산업으로 전망되면서 백두산 관광권에 대한 욕망이 커져갔다. 2005년 1월 옌볜조선족자치주 제12기 인민대표대회 기간에 안투현 대표들은 연명으로 ‘창바이산 관광발전을 가속화할 데 대한 의안’을 제출했다. 옌볜조선족자치주 정부는 이 의안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옌볜주 관광국에 면밀한 조사와 협조를 위임했다.
옌지에서 가장 큰 조선족 시장인 서시장 풍경. 이곳에선 북한산 수산물과 중국산 농수산물이 주로 팔린다.
그런데 2005년 7월 지린성 정부는 ‘창바이산개발관리위원회’(이하 위원회)를 설립하고 성 정부의 부청(副廳)급 직속기관으로 하는 결정을 내렸다. 한국인을 상대로 한 백두산 관광수입이 해마다 급증하자 중앙정부가 백두산을 직접 관할하겠다고 나선 것. 이 결정에 따라 성 정부는 6718km2에 이르는 창바이산 자연보호구에 대한 관리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원래 옌볜조선족자치주 정부 관할이던 ‘안투 창바이산 관광경제개발구’, 얼다오진(二道鎭) 구역 13km2와 얼다오진에서 산문도로 한쪽 30km2 구역의 건설과 관리권이 모두 성 정부로 넘어간 것이다. 옌볜조선족자치주의 관광수입은 관광객들이 오가면서 소비하는 숙식비와 쇼핑비에 매달리는 형국으로 변질됐다. 달걀로 치면 노른자위는 중앙정부가 차지하고 껍질만 지방에서 챙긴 모양새가 된 셈이다.
이를 두고 한국 언론들은 “중국 정부가 옌볜의 백두산을 빼앗았다”고 분개하면서 ‘백두산 공정’이라는 새로운 명제를 내놓기에 이르렀다. 중국 정부는 이러한 한국 언론의 보도 태도에 우려를 금치 못하면서 불쾌감을 드러낸다. 자칫 한중 외교문제로 비화될 조짐도 보이고 있어 걱정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한국 언론의 보도 태도를 “현지 실정을 잘 모르는 생트집”이라고 감히 말하고자 한다. 중국 정부가 추진 중인 백두산 개발 방향을 면밀히 살펴보면 그 이유는 명백해진다.
중앙정부가 세운 ‘위원회’의 관할 구역에는 옌볜조선족자치주뿐 아니라 바이산시의 창바이현과 푸쑹현의 일부 지역도 포함돼 있다. 오히려 옌볜 안투현에 속하는 지역은 기타 현에 비해 훨씬 적은 면적이다. 따라서 창바이현과 푸쑹현에 대해서는 빼앗겼다는 말을 하지 않고, 유독 옌볜에 한해서만 그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는 빼앗고 빼앗기는 문제가 전혀 성립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번 조치는 지린성 정부가 창바이산 관광산업을 순리에 맞게 조정하고 통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선택한 효과적인 방안으로 보는 것이 옳다.
푸쑹이나 창바이는 옌볜에 비해 경제적으로 뒤떨어져 있다. 똑같이 백두산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 지역들은 관광산업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이번 성 정부의 조치는 백두산 서쪽 바이산시 지역의 경제발전에 비교적 유리한 조건을 만들고 있는데, 이는 지역발전의 불평형을 바로잡기 위한 성 정부의 적시(適時)적인 조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중국 정부가 추진 중인 바이산시 창바이산 공항과 창춘에서 백두산까지 연결되는 고속도로로 인해 자칫 옌볜조선족자치주의 경제가 위축되지 않을까, 나아가 조선족이 중국 정부의 보호로부터 소외되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하는 것은 물론 고마운 일이다. 한국 사람들과 한국 언론이 옌볜지역의 조선족을 민족적 관점에서 포용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라는 점이 충분히 짐작되기 때문이다. 일부 한국 언론들이 “중국 정부가 소수민족을 탄압한다”는 식으로 노골적인 적대감정을 드러내는 것도 모두 이 때문이라고 필자는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생각으로 해결될 일은 하나도 없다.
관광산업의 환경은 변했지만 그로 인해 옌볜 경제가 위축되는 일은 없으리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옌볜조선족자치주 정부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이러한 변화에 대비해 새로운 조치들을 적극 강구해왔다.
2005년 옌볜조선족자치주 정부는 중국과학원지리연구소의 전문가를 초빙해 옌볜 관광산업 발전전략에 대해 논증하고 ‘옌볜주 관광산업 발전에 대한 총체적 규획’을 내놓은 바 있다. 이에 기초해 세운 ‘옌볜주 관광산업 발전전략연구’와 ‘옌볜주 관광업 5개년 발전 강요(綱要)’에는 옌볜 관광산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담보하는 방안과 의의가 담겨 있다.
이를 통해 옌볜은 이미 2006년까지 창바이산 평화관광구, 창바이산 문화박람성, 류딩산, 만티엔성, 방티엔, 선경대 등 주급(州級) 이상의 관광지 85곳을 개발해놨다. 얼다오 평화관광스키장과 왕칭 만티엔성스키장이 2005년 문을 열었고, 허룽셴펑스키장은 2007년부터 사용에 들어갔다. 그리고 천지화랑, 지하삼림, 옌지해란호골프장, 옌볜민속관광공연 등 새로운 상품을 개발했다. 3성급 이상의 호텔 등 관광 인프라도 충분히 확보한 상태다.
관광산업 갈등과 진통 조만간 해소될 듯
이러한 노력의 결과일까. 한국 사람들이 개발한 것이나 다름없는 백두산 관광길은 이제 중국 국내 관광객들로 채워지면서 안정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2006년 백두산을 찾은 관광객 310만여 명 가운데 80% 이상이 중국인 관광객일 정도다. 같은 기간 한국 관광객 수는 20만명 이하였다. 옌볜의 관광수입도 매년 증가해, 2006년에는 25억1000만원으로 옌볜조선족자치주 국내총생산(GDP)의 11.8%에 이르는 규모가 됐다. 옌볜조선족자치주 정부는 2010년 옌볜 관광산업의 목표를 관광객 510만명, 관광 총수입 55억원으로 한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지금까지 백두산 관광은 옌볜이라는 외길을 통해서만 이뤄졌다. 그러나 새해부터는 바이산 등으로 중국 내 관광길도 다변화될 것이고, 서울에서 평양을 경유해 백두산으로 오가는 관광로도 조만간 열린다. 그렇게 되면 백두산 관광이 목적인 한국 관광객들은 당분간 옌볜을 찾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갈등과 진통 과정에서 국가 간 분란이 일어나거나 옌볜지역 내 편가르기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당장의 관광수입 감소보다 더 가슴 아픈 것이 서로에 대한 불신과 이해 부족임을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