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양을 방문하고 10월14일 서울로 돌아온 박상권 사장은 ”평양의 날씨가 추워져 북한은 10월10일 김정일 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올해 마지막으로 아리랑공연을 열고 올해 아리랑 공연을 끝내기로 결정했다. 따라서 아리랑 공연을 목적으로 한 평양 관광은 내년에야 가능할 것 같다”고 전했다.
- 이 기사는 북한이 이러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작성해 보도한 것이라 사실과 다른 내용을 담게 되었다. - 편집자 -
평양관광 대기자만 6000여 명이라고 밝힌 평화자동차 박상권 사장(왼쪽). 10월3일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관람한 아리랑 공연.
청와대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9월 중순 노 대통령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 대북사업을 해온 기업인들을 불러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는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도 참석했는데, 박 사장은 “김정일 위원장과 진정어린 대화를 하고 싶다면 아리랑 공연을 관람하시라. 공연이 진행되는 2시간 동안 주석단에 계신 두 분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대화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한다(그러나 김 위원장은 노 대통령과 함께 아리랑 공연을 보지 않았다).
박 사장은 노 대통령이 방문했던 남포의 평화자동차 공장을 비롯해 평양 보통강호텔을 경영하는 북한통이다. 이 정보를 확보한 기자는 때마침 서울에 들어온 박 사장을 만나 “노 대통령에게 아리랑 공연을 관람하라는 말을 했느냐”고 물었다. 이 질문에 그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지만 “노 대통령의 방북이 끝나면 평화그룹 계열의 평화항공여행사는 아리랑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평양관광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박 사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인권유린? 평양 학생들은 자부심 갖고 공연”
- 아리랑 공연에는 수만명의 평양 청소년이 동원된다. 아리랑 공연을 관람하는 것은 한창 뛰놀고 공부해야 할 어린 학생들을 강제 동원케 하는 인권유린이라는 지적이 있다.
“평양 청소년들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평양 학생들은 아리랑 공연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한다. 성인이 된 다음에도 이들은 아리랑 공연에 참여한 것을 좋은 추억으로 떠올린다. 이 공연은 무용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여학생들이 많이 참여하는데 20, 30대 여성들은 대부분 ‘그때 아리랑 공연을 준비하느라 운동을 많이 해서 튼튼해졌다. 아리랑 공연에 참가한 시절이 내 전성기였다’며 그리워한다. 학생들은 억지로가 아니라 자부심을 갖고 공연에 참가한다.”
1_ 매스게임을 펼칠 학생들이 일정한 룰에 따라 들어와 관중석을 채운다. <br>2_ 매스게임에 참여한 학생들이 흰 판을 들어 스크린을 만들면 그 위에 영화 필름을 비춘다. <br>3_ 학생들이 폭포수가 흐르는 모양의 매스게임을 펼치는 동안 운동장에서는 또 다른 무대가 펼쳐진다. <br>4_ 아리랑 공연은 운동장에 ‘정일화’를 만들고 관중석에서는 ‘김일성 조선이여 영원하라’는 문구를 만드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천만의 말씀. 그런 생각은 현실을 모르는 데서 나온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 아리랑 공연을 관람하는 외부인은 하루에 1000명을 넘은 적이 거의 없다. 20~30명이 관람한 때도 적지 않았다. 대개는 100명 정도가 관람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많이 잡아 1000명이 300달러짜리 특등석에 앉았다고 해보자. 입장료 수입은 30만 달러, 우리 돈으로 3억원도 되지 않는다.
아리랑 공연에 동원된 사람이 10만명이라고 하는데, 3억원을 10만명으로 나누면 3000원밖에 안 된다. 동원된 학생들에게 돈은 주지 않아도 물은 줘야 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이 공연은 어둠이 내린 뒤 해야 하는 만큼 많은 전기를 사용한다. 무대장치와 의상은 쓰던 것을 그대로 쓴다고 해도 물값과 전기값은 매일매일 나가야 하는데, 이것만 따져도 3억원은 넘어갈 것이다. 김 위원장은 아리랑 공연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머닛돈을 꺼내놓고 있을 것이다.”
- 북한은 적자를 보는 공연을 왜 하는가.
“북한 인민들이 최고로 여기는 미덕이 일심단결이다. 그들은 전 세계에 ‘우리는 죽지 않았다. 일심단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공연을 하는 것 같다. 이 공연이라도 하니까 CNN이 들어와서 북한 모습을 찍어 세계에 알리는 것 아닌가. 북한이 갖고 있는 무서운 생존의지, ‘우리를 건드리지 말라’는 투지를 몸짓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리랑 공연이다.”
- 그런 식으로 생존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잘하는 일인가.
“지난 14년간 북한을 127번이나 다녀본 내 판단으로는 아주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리랑 공연이 있는 동안 평양에는 활기가 살아난다. 외국인들의 모습도 보이고 도시가 역동성을 갖는다. 이 공연이 없었으면 평양은 적적하고 한산한 도시가 됐을 것이다.”
- 북한 체제를 선전하는 아리랑 공연을 한국인들이 볼 필요가 있는가.
“아무리 좋은 영화도 관심이 없는 사람은 보지 않으므로 아리랑 공연을 봐라, 보지 마라라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리랑 공연을 보고 감동하는 한국인이 있다는 사실이다. 눈물을 글썽이며 ‘많은 학생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신기하고 아름답고 감동적이며 장관이다’라고 말하는 한국인도 많았다.
체제 선전에 얽매이지 않고 보면, 아리랑 공연에는 대단한 연출기법이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매스게임을 하는 학생들이 하얀 판을 들어 거대한 스크린을 만들면, 그 스크린에 영화를 비추고, 운동장에서는 영화와 관련된 입체적인 무대를 만든다. 이런 연출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예술 국가라는 프랑스의 예술단이 이런 연출을 선보였다면 우리 언론은 무대연출의 극치라고 극찬했을 것이다. 북한이 하니까 야유만 해서 그렇지….
아리랑 공연 초입부에 석란희가 고(故) 김정구 선생의 ‘눈물 젖은 두만강’을 부르는데, 석란희의 노래는 애절하기 그지없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나는 가요도 예술성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선창가수인 석련희가 부르는 ‘아리랑’도 저렇게 잘 부를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슴을 후벼판다.
그리고 남자 성우인 리지영(인민배우)이 남쪽 어투로 ‘이 세상에 갈라진 나라, 갈라진 민족이 있다’는 말로 시작하는 내레이션도 절절하기 그지없다. 공연 도중 학생들이 깃발을 들고 나와 운동장을 빙 둘러서는 장면이 많은데, 이는 운동장으로 나가는 다른 학생들을 관람객의 눈으로부터 가려주는 막(幕) 구실을 한다. 깃발 든 학생을 내보내 막을 만든다는 생각을 한 연출가가 있었는가? 예술이라는 관점에서만 본다면 아리랑은 매우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작품이다.”
- 그러나 매스게임에서 나오는 글자는 선동적이다.
“북한은 사랑을 소재로 예술을 하는 나라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고 전쟁을 소재로 할 수도 없으니…. 그들의 문화가 그렇다고 이해하면 되지 않겠는가.”
- 평양관광을 하는 한국인은 전부 아리랑 공연을 봐야 하는가.
“아니다, 선택이다. 원하는 손님만 요금을 내고 본다.”
- 북한 측은 평양관광이 아니라 ‘평양참관’이라는 용어를 쓴다는데, 이유가 무엇인가.
“관광은 놀러 다니는 마음으로 보는 것이고, 참관(參觀)은 ‘참배(參拜)하다’고 할 때의 ‘참’자를 붙인 것이므로 ‘조상이나 위인의 업적을 경외심을 갖고 견학한다’는 뜻이 된다. 북측은 ‘평양은 피눈물어린 역사를 갖고 있는 곳이니 참배를 하고 순례를 하는 도시이지, 관광을 하는 도시는 아니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금강산을 보는 것은 관광이나 평양을 보는 것은 참관이라는 것이다. 우리도 남쪽에서는 ‘평양관광’이라는 말로 사람들을 모집하지만 북쪽에서는 ‘평양참관’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1박2일에 110만원, 2박3일에 150만~170만원 예상”
- 평양관광에 관한 사업승인은 받아놓았나.
“평화항공여행사는 설립 직후인 2003년 북한 당국으로부터 2000명의 남한 관광객 방북을 승인받아 9차례에 거쳐 1100여 명에게 평양 땅을 밟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것이 수줍음 많은 처녀 같던 평양이 반세기 만에 남한 사람들에게 속살을 드러낸 시작이었다. 4차 방문단 때는 분단 55년 만에 최초로 상업적인 백두산 관광까지 했다.
2005년도에도 9차례에 걸쳐 아리랑 공연 관람객 1200여 명을 보냈지만, 2006년에는 큰물 피해로 아리랑 공연이 중단했다. 노 대통령이 아리랑 공연을 보고 오면 북측은 남측 사람들의 방북을 승인할 가능성이 높다. 북측의 승인이 나면 평양관광 독점권을 가진 우리는 도하 언론에 관광객 모집 광고를 낼 생각이다.”
- 사업적 측면에서 평양관광의 성공을 자신하는가.
“지난 4년간의 실적과 경험 덕분에 우리는 대북관광 대기자 6000여 명을 확보해놓은 상태다. 올해는 지방에 있는 한 여행사와 협조해 지방의 대북관광 대기자 1500여 명도 확보해놓았다. 문제는 날씨인데, 10월 말이 되면 평양은 추워서 공연과 관람이 어려울 것으로 추정된다. 내 예상대로 10월10일쯤 북측의 승인이 난다면 10월15일부터 약 보름간 6000명 정도를 방북시킬 수 있다. 그러나 기온이 낮아지면 올해의 평양 방문은 이뤄지지 못할 수도 있다.”
- 방북 경로는? 그리고 기간과 비용은 어느 정도인가.
“김포공항에서 평양의 순안비행장까지 비행기로 간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을 태운 비행기는 서해를 ㄷ자로 크게 돌아갔기에 한 시간을 날아갔지만, 우리는 그보다 덜 도는 항로를 이용하므로 40분 만에 도착하게 된다. 항공기는 북측 고려항공과 남측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을 모두 이용한다. 비용은 아직 정확한 계산을 해보지 않았지만, 2005년 경험으로 보면 1박2일짜리가 110만원 내외, 2박3일은 150만~170만원일 것 같다.”
박 사장의 주장대로 평양관광이 열린다면 매년 1만여 명의 한국인이 체제선전 성격이 강한 아리랑 공연을 보게 된다. 이 과정에서 남북은 ‘보이지 않는 난타전’을 펼치게 된다. 아리랑 관광을 보고 북한 체제에 동조하는 한국인이 많다면 북한이 이기는 것이고, 자유롭게 평양을 활보하는 한국인을 보면서 부러워하는 북한인이 늘어나면 한국이 기세승을 거두는 셈이다. 아리랑 공연 관람은 남과 북 모두에게 ‘양날의 검’이다. 어느 쪽의 맷집이 더 강할 것인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