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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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 삿담? 압달라히? 압둘라? 수퍼? 슈퍼? 귀도 헷갈리네

국립국어원 외래어 표기 심의위 격론 … 아름다운 한글로 태어나 표준어 대접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7-08-01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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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담? 삿담? 압달라히? 압둘라? 수퍼? 슈퍼? 귀도 헷갈리네

    7월4일 제76차 정부·언론 외래어심의공동위원회회의가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는 2005년 10월 부임 초기만 해도 한글로 ‘브시바오’라고 적힌 명함을 돌렸다. 자신에게 한국말을 가르쳐준 선생이 소리나는 대로 적을 경우 ‘브시바오’가 맞는 표기라고 해 한글 명함을 만들어 돌린 것이다. 그의 이름 영어 철자는 ‘Alexander Vershbow’. 그러나 한국 언론들이 대부분 ‘버시바우’로 표기하자 대사관 측은 2006년 초부터 다시 대사의 한글 이름을 ‘버시바우’로 적어달라고 요청했다. 한국인의 뜻을 존중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는 것.

    정부·언론 외래어심의공동위원회(이하 심의위원회)도 당시 긴급회의를 소집해 재심의까지 벌인 끝에, 외래어 표기법상의 영문 표기원칙에 따라 ‘버시바우’로 적는 게 맞다고 결정했다.

    이는 외래어 표기를 둘러싸고 겪게 된 혼란의 단적인 예다. 세계화의 영향으로 다른 언어권과의 교류가 많아지면서 일상생활에서 외국어와 외래어를 활용하는 일이 많아지고, 그만큼 한글로 표기할 때 혼란도 많이 겪는다. 이를 막기 위해 국립국어원은 심의위원회를 두고 정기적으로 회의를 열어 자주 사용되는 외국 고유명사, 일반명사의 한글 표기를 통일해왔다. 그동안 바로잡은 고유명사 등이 8000여 건에 이른다. 1991년 발족된 심의위원회는 94년까지는 불규칙하게 열리다가 95년부터 격월로 개최되고, 사안에 따라 긴급 소위도 열린다.

    바르게 표기 보이지 않는 손

    소설가 이윤기 씨의 표현처럼 외국어는 ‘아름다운 이국 처녀의 눈동자’다. 이를 바르게 쓰고, 바르게 표기하는 것은 아름다운 언어문화의 핵심이다. 심의위원회는 그 핵심을 지키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7월4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76차 심의회의에 들어가봤다. 구성원은 위원장인 이상규 국립국어원 원장, 부위원장인 여규병 동아일보 어문연구팀 팀장, 심재기 서울대 교수 등 16명. 정부 측과 언론계 인사가 반반씩 섞여 있다.



    이날 회의에 상정된 것은 지난 두 달 사이 언론에 등장한 외국인명 32건, 외국지명 1건, 외국 일반용어 1건, 프랑스 행정부 인명 17건, 앞으로 사용하게 될 2009~2011년 허리케인 이름 64건 등이다. 이윤표 연구위원이 회의 전 혼동의 우려가 있는 것을 중심으로 정리하고, 그것을 위원들에게 배포했다. 국립국어원 관계자와 위원들은 해당 언어권 사람들이나 인터넷 오디오 클립을 통해 어떻게 소리나는지 들어보고 인명사전, 홈페이지 등 관련 정보를 조사한 다음 회의에 참석한다.

    이날 가장 먼저 논란이 된 단어는 미국의 주멕시코 대사를 지낸 정치인 ‘Josephus Daniels’. 논란의 초점은 ‘조시퍼스’ 가 맞느냐, ‘조지퍼스’가 맞느냐였다. 여규병 팀장은 “오디오 파일을 들어보니 ‘조시퍼스’로 들렸다”라고 말했다. 박한상 홍익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시’와 ‘지’ 발음의 차이는 미묘하다. 또 개인마다 발음에 변화가 있을 수 있으므로 기본적인 표기법을 따르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다. 찬반이 엇갈렸지만 “비슷한 단어인 ‘Joseph’를 조지프로 적는 것에 비춰 일관성 있게 ‘조지퍼스’로 적는 게 혼란을 줄일 수 있다”는 김세중 국립국어원 어문자료연구부장의 중재에 대부분 수긍해 결국 ‘조지퍼스’로 결론이 났다.

    아랍어를 사용하는 북아프리카 국가 모리타니의 대통령 이름 표기에 대한 논란은 더 뜨거웠다. 아직까지 아랍어 표기 세칙(상자기사 참조)이 확정되지 않아 의견이 분분했다. 모리타니 대통령의 이름을 로마자로 표기하면 ‘Sidi Mohamed Ould Cheikh Abdallahi’. 1차 자료에는 ‘압달라히/압델라히, 시디 모하메드 울드 시크’로 표기돼 있었다.

    먼저 ‘압달라히’와 ‘압델라히’ 중 어느 것이 합당한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김세중 부장은 “아랍어에서 사용하는 모음이 아, 이, 우 세 가지밖에 없으므로 현지 발음원칙을 좇는다는 원칙에 따라 압달라히로 적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사담? 삿담? 압달라히? 압둘라? 수퍼? 슈퍼? 귀도 헷갈리네
    다음으로 ‘Mohamed’를 어떻게 표기할 것인지가 문제였다. “무함마드 혹은 무하마드가 나아 보인다. 일반인은 무하마드 알리에 대한 인식이 크다. 아랍어 옹호자는 아니지만 태국이나 베트남까지 표기원칙이 있는데, 세력이 더 큰 아랍어권의 대표적 이름인 무함마드를 아직도 확정짓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강성곤 KBS 한국어팀 수석차장)

    “매일 수많은 아랍어권 단어들이 언론에 등장한다. 그런데 아랍어 표기 세칙이 확정되지 않아 혼란을 겪고 있다. 세칙이 확정될 때까지는 기존 방식으로 쓰고 고시할 때 그것을 반영하는 게 어떤가.”(여규병 팀장)

    이런 논란 속에서 확정되지 못했던 모리타니 대통령의 한글 표기는 다시 국어연구원의 추가 조사를 거쳤다. 아랍어 전공교수에게 확인한 결과 ‘Abdallahi’의 ‘hi’는 로마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생긴 철자여서 무시돼야 하고, ‘압둘라’로 적는 게 현지음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위원회에서 이 의견을 받아들여 모리타니 대통령 이름은 ‘압둘라, 시디 무함마드 울드 샤이크’로 확정됐다.

    현지 발음 정보 부족이 가장 큰 고충

    이날 상정된 외국어 하나하나가 쉽게 통과되지 못했다. 무성음이냐 유성음이냐, 장모음이냐 중모음이냐, 파찰음이냐 슈와(schwa.약모음)냐 등 따져야 할 항목이 많다. 언어권마다 표기 세칙도 각양각색이다. ‘현지 발음을 준용해서 그대로 적는다’는 큰 원칙이 있지만 그마저도 사람에 따라, 지역에 따라 다른 경우가 비일비재다. 심의위원회의 정보 부족 문제도 제기된다. 김세중 부장은 “현지 발음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부족해 한글 표기 결정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이처럼 심의위원회가 고심 끝에 결정을 내리지만 여기에 반기를 드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일부 언론사에서 심의위원회의 결정 사항을 따르지 않고 회사 방침대로 하는 경우도 있다. 심의회의에서 ‘게놈’으로 결정됐지만 ‘지놈’으로 표기하거나, ‘슈퍼’로 결정됐는데 ‘수퍼’로 표기하는 곳도 있다. ‘파열음 표기에는 된소리를 쓰지 않는’ 원칙에 아직도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프랑스 사람들이 ‘빠리 쎄느(강)’라고 발음하는데, 외래어 표기법상 ‘파리 센(강)’으로 적는 것은 현실과 괴리된다는 지적이다.

    물론 국립국어원은 관용적으로 쓰이는 말 에서 예외를 인정해주고 있긴 하다. 그러나 이런 사례가 많아지면 외래어 표기법 자체가 무너질 수 있어 사안에 따라 심의회의를 통해 대응해나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이상규 위원장은 “심의위원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앞으로 위원회의 기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정부 문서에서도 가버넌스나 매니페스토 같은 외국말이 등장하는 심각한 상황이므로 외래어 사용 실태를 조사해 어느 정도 받아들일지도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랍어 표기법 8월 중 고시 예정

    사담→삿담 … 겹치는 자음 다 적기로 규칙 정해


    ‘사담은 삿담, 모하메드는 무함마드.’

    국립국어원은 이르면 8월 중 그리스어, 아랍어, 터키어 등 3개 국어에 대한 표기법을 고시할 예정이다. 이로써 24개 외국어에 대한 표기법이 완성된다.

    무엇보다 논란이 돼온 아랍어 표기의 핵심은 ‘같은 자음이 겹치는 경우에는 두 자음을 다 적는다’는 규칙이다. 예컨대 지금까지 ‘Saddam’은 ‘사담‘으로 적었지만 앞으로는 ‘삿담‘으로, ‘무하마드’ ‘모하메드’로 적었던 ‘Muhammad’는 ‘무함마드’로 표기하게 된다. ‘q’는 ‘k’와 구별하기 위해 ‘ㄲ’으로 적게 되어 ‘qasr’는 ‘까스르’로 표기한다. 또 ‘x(kh)’는 모음 앞에서는 ‘ㅋ’로 적고 어말에서는 ‘크’로 적는다. ‘xalifah’는 칼리파, ‘Sayx’는 샤이크로 적는 것이다.

    그러나 표기법을 새로 제정한다 해도 관용으로 굳어진 말은 예외를 인정할 계획. 국명은 대체로 그동안 써온 표기를 인정한다. 아랍어로는 ‘레바논’을 루브난이라고 하지만 혼란을 막기 위해 관용을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리비아(리비야), 모로코(알마그립), 시리아(수리야), 이집트(미스르), 카타르(까타르)도 마찬가지. 알카에다(알까이다), 모스크(마스지드)도 예외적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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