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두 개의 도시 이야기가 있다. 한 곳은 너무도 유명한 도시고, 다른 한 곳은 최근 영화를 통해 살짝 얼굴을 드러낸 도시다. 이 두 도시에 얽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흥미로운 과거의 사실이 발견되며, 시사하는 바를 찾을 수 있다.
영화 ‘굿 우먼(Good Woman)’은 매력적인 중년의 여인 얼린 부인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상류사회의 로맨스와 탐욕, 위선 등에 대한 이야기다. 이 영화에서 뉴욕을 쫓겨나다시피 떠난 얼린 부인이 돈 많은 남자를 꾀기 위해 찾아간 곳은 이탈리아 남부 도시 아말피다. 부자들이 여름휴가를 보내는 곳으로 유명한 이 휴양지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명소다. 세계적인 여행 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 트래블러’가 1999년에 ‘세계 10대 낙원’ 중 하나로 꼽을 만큼 아름다운 지중해의 도시다.
그러나 아말피는 예사롭지 않은 역사를 갖고 있다. 아말피는 비록 작은 도시지만 연륜이 오랜 곳이다. 아말피를 중심으로 한 인근 지역은 이탈리아 반도 최초의 해양 공화국으로 로마시대부터 번성했다. 아말피라는 이름은 특히 나침반과 관련해 더욱 명성이 높아졌다. 나침반을 발명한 것으로 알려진 플라비오 조야(Flavio Gioia)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는 것이다(그러나 나침반의 첫 발명지는 사실 아말피가 아니라 중국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16세기 말까지 바다를 지배하던 규약은 ‘아말피 법전’으로 불렸을 정도다. ‘굿 우먼’의 개봉과 비슷한 시기에 나침반의 역사를 다룬 ‘나침반, 항해와 탐험의 역사’라는 책이 번역 출간된 것도 공교롭다. 다른 또 하나의 도시는 이 나침반을 가장 잘 활용한 도시, 베네치아다. 아말피와 지중해의 상권을 놓고 경쟁한 베네치아는 유럽 대륙에서 생산된 물건들을 아시아로 수출하는 거점이자 관문이었다. 아프리카의 최남단 희망봉을 도는 항로가 발견되기 전까지의 수백 년 동안 베네치아는 동서양을 잇는 무역항로의 요충지로 번성했다.
최근 개봉된 영화 ‘베니스(베네치아)의 상인(사진)’은 왜 셰익스피어가 이곳을 작품의 배경으로 쓰게 됐는지를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샤일록으로 상징되는 유대인은 매우 사악한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지만, 사실 당시 유럽에서 샤일록 같은 유대인들이 가장 자유롭게 살 수 있었던 곳이 바로 베네치아였다.
유대인 거주지 ‘게토’의 원형이 베네치아에서 나오기도 했지만 베네치아는 제한된 여건 아래에서 유대인들을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가톨릭 국가이면서도 종교상의 최고 권위자인 대주교의 거처를 변두리에 둘 만큼 정교 분리의 전통을 고수한 베네치아는 교황청의 간섭을 단호히 배제했다. 이처럼 개방적이고 관대한 베네치아의 기풍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상당 부분 교역을 기반으로 했다는 것과 관련이 깊을 듯하다. 자원이라고는 거의 없는 손바닥만한 땅에다 가장 인구가 많았을 때도 겨우 17만명에 불과했던 베네치아가 강대국이 됐던 원동력은 바다를 향한 끊임없는 진출 의지였다. 시오노 나나미는 ‘세 도시 이야기’라는 책에서 베네치아를 서술하면서 ‘대부분의 국민들이 16세가 되면 선상에서 가장 궂은 일부터 시작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바다와 친숙해졌다’고 쓰고 있다.
‘동방견문록’의 저자 마르코 폴로도 베네치아 출신의 선원이었다. 근대 해운의 기초가 되는 많은 제도들이 대부분 베네치아에서 시작되거나 발전되었는데, 가령 누구라도 담보 없이 신용으로 자금을 빌릴 수 있는 해상융자와 한정합자회사제도가 이곳에서 유래됐다. ‘베네치아의 상인’에서 샤일록과의 기묘한 계약의 대상이 돼 안토니오의 생명을 위협했던 ‘살 1파운드’의 계약은 그만큼 다양했던 금융 거래 방식을 역설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선진적인 제도와 문물을 접하면서 섞이고 융합되는 과정을 거칠 때 그 사회는 역동적으로 진화하는 법이다. 따져보면 고대 그리스가 그랬고, 네덜란드가 역시 그랬다.
우리나라도 요즘 ‘해양 시대’다, ‘서남해안 개발’이다, ‘동북아 시대’다 하는 화두들이 제창되고 있다. 이 같은 구호의 알맹이는 단순히 지리상의 외연적 확장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사회의 내적 건강성과 역동성의 증진이야말로 그 핵심이 아닐까. 어릴 때부터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나라라고 들어왔다. 이를 3면이 바다로 ‘트여 있는’이라고 발상을 바꿀 수 있을 때, 우리는 ‘베네치아’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굿 우먼(Good Woman)’은 매력적인 중년의 여인 얼린 부인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상류사회의 로맨스와 탐욕, 위선 등에 대한 이야기다. 이 영화에서 뉴욕을 쫓겨나다시피 떠난 얼린 부인이 돈 많은 남자를 꾀기 위해 찾아간 곳은 이탈리아 남부 도시 아말피다. 부자들이 여름휴가를 보내는 곳으로 유명한 이 휴양지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명소다. 세계적인 여행 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 트래블러’가 1999년에 ‘세계 10대 낙원’ 중 하나로 꼽을 만큼 아름다운 지중해의 도시다.
그러나 아말피는 예사롭지 않은 역사를 갖고 있다. 아말피는 비록 작은 도시지만 연륜이 오랜 곳이다. 아말피를 중심으로 한 인근 지역은 이탈리아 반도 최초의 해양 공화국으로 로마시대부터 번성했다. 아말피라는 이름은 특히 나침반과 관련해 더욱 명성이 높아졌다. 나침반을 발명한 것으로 알려진 플라비오 조야(Flavio Gioia)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는 것이다(그러나 나침반의 첫 발명지는 사실 아말피가 아니라 중국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16세기 말까지 바다를 지배하던 규약은 ‘아말피 법전’으로 불렸을 정도다. ‘굿 우먼’의 개봉과 비슷한 시기에 나침반의 역사를 다룬 ‘나침반, 항해와 탐험의 역사’라는 책이 번역 출간된 것도 공교롭다. 다른 또 하나의 도시는 이 나침반을 가장 잘 활용한 도시, 베네치아다. 아말피와 지중해의 상권을 놓고 경쟁한 베네치아는 유럽 대륙에서 생산된 물건들을 아시아로 수출하는 거점이자 관문이었다. 아프리카의 최남단 희망봉을 도는 항로가 발견되기 전까지의 수백 년 동안 베네치아는 동서양을 잇는 무역항로의 요충지로 번성했다.
최근 개봉된 영화 ‘베니스(베네치아)의 상인(사진)’은 왜 셰익스피어가 이곳을 작품의 배경으로 쓰게 됐는지를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샤일록으로 상징되는 유대인은 매우 사악한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지만, 사실 당시 유럽에서 샤일록 같은 유대인들이 가장 자유롭게 살 수 있었던 곳이 바로 베네치아였다.
유대인 거주지 ‘게토’의 원형이 베네치아에서 나오기도 했지만 베네치아는 제한된 여건 아래에서 유대인들을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가톨릭 국가이면서도 종교상의 최고 권위자인 대주교의 거처를 변두리에 둘 만큼 정교 분리의 전통을 고수한 베네치아는 교황청의 간섭을 단호히 배제했다. 이처럼 개방적이고 관대한 베네치아의 기풍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상당 부분 교역을 기반으로 했다는 것과 관련이 깊을 듯하다. 자원이라고는 거의 없는 손바닥만한 땅에다 가장 인구가 많았을 때도 겨우 17만명에 불과했던 베네치아가 강대국이 됐던 원동력은 바다를 향한 끊임없는 진출 의지였다. 시오노 나나미는 ‘세 도시 이야기’라는 책에서 베네치아를 서술하면서 ‘대부분의 국민들이 16세가 되면 선상에서 가장 궂은 일부터 시작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바다와 친숙해졌다’고 쓰고 있다.
‘동방견문록’의 저자 마르코 폴로도 베네치아 출신의 선원이었다. 근대 해운의 기초가 되는 많은 제도들이 대부분 베네치아에서 시작되거나 발전되었는데, 가령 누구라도 담보 없이 신용으로 자금을 빌릴 수 있는 해상융자와 한정합자회사제도가 이곳에서 유래됐다. ‘베네치아의 상인’에서 샤일록과의 기묘한 계약의 대상이 돼 안토니오의 생명을 위협했던 ‘살 1파운드’의 계약은 그만큼 다양했던 금융 거래 방식을 역설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선진적인 제도와 문물을 접하면서 섞이고 융합되는 과정을 거칠 때 그 사회는 역동적으로 진화하는 법이다. 따져보면 고대 그리스가 그랬고, 네덜란드가 역시 그랬다.
우리나라도 요즘 ‘해양 시대’다, ‘서남해안 개발’이다, ‘동북아 시대’다 하는 화두들이 제창되고 있다. 이 같은 구호의 알맹이는 단순히 지리상의 외연적 확장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사회의 내적 건강성과 역동성의 증진이야말로 그 핵심이 아닐까. 어릴 때부터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나라라고 들어왔다. 이를 3면이 바다로 ‘트여 있는’이라고 발상을 바꿀 수 있을 때, 우리는 ‘베네치아’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