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청렴위원회는 7월21일, 부패방지위원회에서 명칭을 바꿔 출범했다. ‘부패 방지’라는 부정적 의미에서 ‘청렴’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로 탈바꿈함으로써 미래지향적인 부패 척결의 패러다임을 꾀했다.
12월12일 오전 10시, 전남 목포시에서는 ‘부정부패척결 자정결의대회’라는 긴 명칭의 행사가 열렸다. 그런데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의례적인 행사가 아니었다. 공무원들은 하나같이 매우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목포시장의 대시민 사과성명에 이어 목포시 공무원들은 “앞으로 금품수수 행위가 있을 경우 사직을 포함한 어떠한 인사조치도 감수하겠다”는 청렴사직 서약서를 목포시장에게 제출하는 등 비장한 풍경이 연출됐다.
이와 흡사한 분위기는 여타 지방자치단체(지자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입가에 웃음을 그치지 못하는 지자체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소속 공무원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이웃 지자체의 높은 청렴 성적에 놀라며 “현 시장은 다음 선거에서 재선하기 어렵겠다”는 얘기를 쏟아냈다.
선거 및 다양한 평가 자료로 활용
공직사회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일찍이 찾아보기 힘들었던 ‘청렴 경쟁’으로, 진원지는 다름 아닌 국가청렴위원회(이하 청렴위)다. 12월9일 청렴위가 발표한 ‘2005년도 공공기관 청렴도 측정결과’에 따른 본격적인 후폭풍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청렴위는 올해 8월부터 10월까지 대국민, 대기관 업무비중이 높은 중앙부처 등 325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민원인과 공무원 8만8892명에 대해 조사해 매긴 ‘청렴 성적’을 발표했다. 이른바 청렴위의 1년 농사가 공개된 셈. 이 자료는 2006년에 있을 지자체 선거와 다양한 공직평가 자료로 쓰일 전망이다.
목포시 공무원들이 놀란 까닭은 목포시의 청렴지수가 10점 만점에 6.96을 기록했기 때문. 전국 241개 자치단체 가운데 7점 이하를 받은 최하위는 전남 목포, 경기 안산(6.9), 경남 통영(6.97) 단 세 곳에 불과하다. 특히 안산시는 민선 1, 2, 3기 시장 모두 비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목포시는 지난해에도 6점대의 전국 최하위권에 머물러 다양한 형태의 청렴운동을 펼쳐왔기에 이번 결과로 받은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시민들에게는 이같이 계량화된 성적은 타 지자체와 비교할 수 있는 근거가 될 뿐 아니라 공직자의 윤리 및 서비스 평가의 지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크게 만족해하는 눈치다. 공무원 사회 역시 순위를 매김으로 인해 정체된 공직사회에 효과적인 자극제가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반부패’에 대한 국민적 욕구가 폭발하는 시점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연말에 발표되는 청렴위의 공직기관 성적표에 전 국민의 관심이 쏠리게 됐다.
올해 결과는 일단 고무적이다. 공공기관 청렴도가 꾸준하게 상승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평균 8.38점에 그쳤던 종합청렴도는 올해 8.68점으로 상승했고, 금품이나 향응 제공률 역시 1.5%에서 0.9%로 크게 개선됐다. 종합첨렴도가 9.0 이상인 우수기관이 지난해 11개에 비해 62개로 대폭 늘어났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지난해 11개의 청렴 기관은 올해 조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또한 중앙행정기관 및 공직 유관단체의 개선도 역시 눈에 띄게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평가 대상이 추가됐음에도 청렴도가 높아졌다는 것은 공직사회가 전체적으로 상향 평준화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같이 큰 틀에서의 청렴도는 나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공직사회의 고질병이 적잖게 포착된다.
우선 교육부와 일부 지방교육청 등의 부패 정도가 지난해보다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인적자원부의 평가 결과 10점 만점에 8.29점으로 지난해보다 0.43점이 떨어진 것이 대표적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보다 0.17점 하락한 8.31점, 충남교육청은 0.12점 떨어진 8.65점, 경남교육청은 0.23점 떨어진 8.36점, 제주교육청은 0.10점 하락한 8.49점으로 조사됐다. 이는 역으로 국민들이 공직사회에서 체감하는 부패 개선율에 비해 교육계의 변화가 크지 못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정부 부처에서 교육부에 이어 건설교통부, 환경부, 보건복지부, 산업자원부 순으로 청렴도가 낮게 나타났다. 조사 대상 12개 청 중 가장 낮은 점수를 기록한 곳은 해양경찰청으로 7.44점을 받았고, 가장 높은 점수는 중소기업청의 9.14점이었다.
힘 있는 기관들 청렴도 낮아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이른바 힘 있는 기관으로 알려진 단속·규제 기관들의 청렴도가 낮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검찰청(8.37), 경찰청(8.48), 국세청(8.42) 모두 평균 이하를 기록했다. 반면에 정보통신부(9.25)와 법무부(9.06), 과학기술부(9.04), 법제처(9.19) 등의 부패지수는 비교적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기업 및 공직 유관단체에서는 서울지하철공사(7.11), 한국도로공사(7.65), 한국철도시설공단(7.86) 등 교통 관련 단체들의 청렴성이 떨어진 반면, 국방과학연구소(9.15), 한국전자통신연구원(9.13), 한국산업인력공단(9.02) 등의 성적은 높게 나타났다.
지자체별로는 충북(8.97), 충남(8.81), 강원도(8.95)와 대전시(8.78)가 높은 평가를, 서울시(8.31)와 경남(8.07), 전남도(7.96)가 낮은 평가를 받게 됐다. 흥미로운 점은 전남과 경북(8.36)의 극명한 대비다. 경북은 지난해보다 무려 1점 가까이 높이는 데 성공하며 탈꼴찌에 성공했지만 전남은 최하위로 주저앉고 말았다.
그렇지만 이 같은 순위 중심의 성적 공개에 불평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른바 일을 열심히 할수록 민원인들의 불만이 커지는 업무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복지부동 공무원을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한 것. 또한 평가방법이 지나치게 민원인의 주관적인 인식만을 바탕으로 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특히 올해 꼴찌를 차지한 해양경찰청은 “우리는 소형 저인망 어선을 강력하게 단속한 죄밖에 없다”면서 억울함을 하소연해 눈길을 끌었다.
이에 청렴위 측은 “올해 4회째를 맞는 청렴도 측정은 국내외 평가전문가들에 의해 객관성 및 신뢰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검증됐다”며 “앞으로 지적 사항을 개선하여 업무성격과 관계없이 부패 척결에 힘을 실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