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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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끝난 독일 ‘짝짓기 정국’

어느 당도 원내 과반수 달성 못해… 정권 잡기 위해 ‘신호등 연정’ ‘자메이카 연정’ 등 시도

  • 슈투트가르트=안윤기/ 통신원 friedensstifter@gmail.com

    입력2005-09-28 15: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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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는 끝났지만 독일 정국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선거 직후 각 당은 제각기 승리를 자축했지만, 실제로 독일 국민은 어느 쪽의 손도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9월18일 치러진 연방의회 구성을 위한 총선에서 각 당이 얻은 의석수와 득표율은 아래 그림과 같다.

    결과는 나왔지만 과연 누가 진정한 승자인지, 향후 독일을 이끌어나갈 정권은 어떻게 구성될지 등 아무것도 결정되지 못했다. 어느 진영도 내각 구성을 위한 원내 과반수(307석) 달성에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달 이내에 총리 선출하고 내각 조직

    현 여당인 사민당-녹색당 연합(적-녹)은 원래의 임기를 1년 줄이며 조기총선을 치르는 승부수를 던졌으나, 과반수 달성에 실패함으로써 지난 7년간의 집권에 종언을 고하게 됐다. 당초 승리가 유력했던 기민련/기사련과 자민당의 연합(흑-황) 역시 독일을 이끌고 나갈 대안 세력이라는 신임을 국민들에게서 얻지 못했다.

    독일은 의원내각제 국가다. 따라서 총선을 통해 연방의회를 구성한 뒤 한 달 이내에 대통령의 후보 지명을 받아 의회에서 찬반 투표로 총리를 선출하고 내각을 조직한다. 대통령의 지명을 받은 후보가 과반수의 표를 얻지 못하면 재투표에 들어가고 2차 투표에서도 과반수를 얻지 못하면 마지막 3차 투표를 치르는데, 이때는 찬성이 반대보다 많으면 무조건 총리로 선출된다. 어렵게 총리를 선출했다고 해도 집권 연합 세력이 원내 과반수를 이루지 못해 정치 불안이 우려되면, 대통령은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다시 치르게 할 수 있다.



    기민련/기사련은 원내 제1당 자리를 탈환했음에도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낮은 득표율에 다소 충격을 받은 분위기다. 선거 직전의 여론조사 결과만 보아도 기민련/기사련의 지지율은 40% 이상을 유지했기 때문. 총리 후보인 앙겔라 메르켈이 방송 토론에서 게르하르트 슈뢰더 현 총리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이고, 기민련 재무장관 후보인 파울 키르히호프의 조세 정책안이 ‘빈부의 격차를 더 벌리는 나쁜 정책’으로 치부되면서 민심이 서서히 이들을 떠났던 것이다. 반면 ‘선거의 귀재’ 슈뢰더는 막판에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해 사민당의 지지율을 25%에서 34%로 끌어올렸다. 역전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사실상 자신과 사민당이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누가 정권을 잡느냐’다. 이번 선거에서 현 여당인 적-녹 연합, 그리고 유력한 대안 세력이었던 흑-황 연합이 모두 과반수 의석 달성에 실패했기 때문에 향후 한 달 동안 다양하고도 복잡한 합종연횡이 진행될 전망이다.

    사민당은 현재의 적-녹 연정에 자민당이 추가되는 이른바 ‘신호등 연정(적-녹-황)’을 가장 무난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정권의 연속성이 가장 많이 확보되는 형태다. 그러나 자민당은 차라리 야당을 할지언정 ‘흑-황 연합’ 외에는 일절 참여하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사민당이 생각하는 또 다른 가능성은 이른바 ‘대연정’, 즉 기민련과의 ‘적-흑 연정’이다. 이 경우에도 반드시 연합 총리 후보는 슈뢰더가 돼야 하며, 기민련의 자매당인 바이에른 주의 기사련은 연정 파트너에서 제외한다는 조건이 따른다. 반면 라퐁텐과 귀지가 이끄는 좌파 연합과의 결속, 즉 ‘적-적-녹 연합’은 분명하게 거부했다. 중도좌파를 표방하는 슈뢰더가 볼 때 강경좌파는 우파 이상으로 불편한 상대이기 때문이다.

    ‘흑-황 연합’ 집권의 꿈이 사라진 기민련/ 기사련은 일단 강경좌파를 제외한 모든 세력과의 연합에 대해 가능성을 열어놓은 상태다. 자메이카 국기 색깔과 같기 때문에 ‘자메이카 연합’이라고도 불리는 ‘흑-황-녹 연합’도 기민련은 받아들인다는 자세지만, 파트너인 자민당이 녹색당과의 연합을 거부하고 있다. 따라서 기민련에 남은 카드는 사민당과의 ‘대연정’ 하나뿐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원내 제1당인 기민련/ 기사련이 총리 자리를 슈뢰더에게 양보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선거 막판에 당 지지도가 추락한 원인이 메르켈에게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미 당내에서는 그에 대한 반발이 높아지고 있다. 과연 지도력이 심하게 실추된 메르켈이 산적한 난관을 뚫고 협상을 통해 독일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옛 동독 공산당의 맥을 잇는 좌파 연합이 처음으로 연방의회에 진출한 것 역시 이번 선거가 낳은 중요한 결과다. 슈뢰더의 개혁 정책이 사회보장의 축소를 가져오자, 이에 불안을 느낀 사회적 약자층이 라퐁텐과 귀지의 좌파 연합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좌파 연합은 옛 동독 지역에서 더 뛰어난 성적을 거두기는 했으나 당초 우려했던 대로 ‘동서 지역감정’이 심하게 나타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남북 지역감정’이 확실하게 드러났다. 북쪽에서는 사민당이, 남쪽에서는 기민련/기사련이 대부분의 선거구를 석권했기 때문.

    양보와 협상이냐, 야합과 혼란이냐

    자민당은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둠으로써 좌파 연합과 더불어 이번 선거의 최대 승자가 됐지만, 유일하게 가능성을 열어놓았던 ‘흑-황 연합’이 집권에 실패해 야당의 길을 갈 수밖에 없게 됐다. 현재 자민당은 사민당과 기민련/기사련 모두로부터 연정 제안을 받아 몸값이 한껏 올라가 있지만, 과거 양측을 오가며 연정을 함으로써 국민들에게 각인된 ‘박쥐’ 내지는 ‘변절자’ 인상을 이번 기회에 떨쳐버리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녹색당은 원내 제3당에서 제5당으로 위상이 추락했다. 하지만 과거 녹색당의 고유 브랜드라 할 수 있었던 환경 및 남녀평등 정책 등이 이제는 모든 정당에 보편화됐기 때문에 앞으로의 진로와 당의 정체성을 놓고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이렇듯 내각 구성을 둘러싸고 온갖 연합 형태들이 논의되고 있지만 어느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극적인 연합이 체결된다고 해도 정체성이 다른 정당 간의 연합은 조금만 수가 틀려도 쉽게 붕괴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국민들의 불안을 덜어주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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