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입학시험을 치르게 될 인하대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고 있는 송유근 군.
송 씨는 유근이 또한 전형적인 ‘노력형 영재’라 말한다. 그동안 유근이가 이뤄낸 ‘업적’을 생각하면 선뜻 믿기 어려운 말이다. 한술 더 떠 송 씨는 “맞벌이 가정, 중소도시 거주 가정, 아이 교육비로 한 달에 30만원 이상 쓰지 않는 부모의 아이도 얼마든지 영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이런 주장이 가능한 것일까. 유근이 아빠 엄마의 ‘무심한 듯 치열한 교육법’에 그 답이 있다.
뒤집기도 늦게, 한굴도 늦게늦게 유근이 부모는 “유근이에게 영재성이 있다면 그건 집중력이 뛰어나고 엉덩이가 무겁다는 점”이라 말한다. 사실 유근이는 유난히 늦되는 아이였다. 백일이 되도록 뒤집기를 못했고 또래 친구들이 한글을 다 뗀 다음에도 책을 거꾸로 들고 볼 정도였다. 조바심이 날 만도 하건만 송 씨 부부는 그러려니 했다. 송 씨는 “앉혀보고 세워보고 했으면 좀더 빨리 기고 걸었겠지만 그럼 뭐 하나. 때가 되니 스스로 기다 곧 걸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 부부는 유근이에게, 세상은 네가 걷고 보는 만큼만 네 것이고 아빠 목말 타고 본 세상은 네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소년 백수’와 오냐 할머니 유근이 부모는 맞벌이에 바빠 태교는 물론 조기교육에도 신경 쓸 수 없었다. 친가 부모님과 장모님 등 어른 세 분을 모시고 사는 까닭에 대놓고 내 아이 귀한 티를 내지도 못했다. 만 여섯 살이 될 때까지 유근이를 키운 건 두 할머니였다(할아버지는 유근이가 두 살 때 타계했다). 손자가 그저 귀엽기만 한 할머니들은 뭘 해도 그저 잘했다 잘했다 할 뿐, 비판하거나 비평하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도 유근이는 엎어지고 깨지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없다. 할머니들이 심어준 자신감이요 낙천성이다.
송 씨는 “유근이의 무거운 엉덩이도 할머니들 덕”이라 말한다. “할머니들이 뭘 하겠나. 그저 데리고 나가 하루 종일 풀어놨다. 한 시간 두 시간씩 개미 굴 파는 걸 구경해도 말릴 사람이 없었다. 또래 아이들은 모두 학원에 유치원에, 놀이터엔 덩그마니 유근이뿐이다 보니 그때부터 혼자 뭔가에 오래 집중하는 버릇이 생긴 듯하다.”
인하대 박제남(수학통계학부) 교수로부터 지도를 받고 있는 유근 군.
송 씨는 “수학 연산을 어떻게 가르칠까 참 많이 고민했다. 무조건 2 곱하기 2는 4라고 윽박지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해서 블록도 쌓아보고 카펫 무늬도 활용하고, 하여튼 그렇게 두세 달을 오직 연산 개념을 체득하는 데에만 집중했다”고 말한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일단 개념을 이해하자 한두 달 만에 미적분 계산까지 확 나가버린 것이다.
송 씨는 ‘메스메티카’ 같은 수학학습 컴퓨터 프로그램을 아이에게 제공해 수식과 도형, 그래프, 수열 등이 어떻게 한 몸으로 연결돼 있는지를 보여줬다. 기울기 개념을 익힐 땐 온 동네 미끄럼틀을 다 타보고 다녔다. 중력가속도에 대해 공부할 땐 놀이공원의 자이로드롭 앞에서 스톱워치를 눌렀다. 원서를 보며 절로 영어를 익혔고, 원하는 공부를 실컷 하려면 검정고시에 합격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제 스스로 시험 준비에 몰두했다. 유근이에게 공부는 친구,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놀이가 됐다.
책 3만권을 버리다 아빠는 아이가 돌 될 무렵 3만권에 달하던 책을 모두 버렸다. 송 씨는 “나를 키운 건 8할이 그 책들이었다. 하지만 미래를 살 내 아이까지 같은 방식으로 키울 수는 없었다. 그래봐야 내 정도 사람밖에 더 되겠냐”고 했다.
몰라 엄마, 다알아 엄마 유근이가 엄마에게 뭘 물으면 엄마는 늘 “몰라”라고 답한다. 송 씨는 “아내 같은 ‘몰라 엄마’들은 ‘뭘 모르니까’ 무식하고 그래서 용감하다. 몰라 엄마가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했으면 절대 여섯 살 꼬맹이한테 미적분 책을 사주지 못했을 것”이라 말한다. 박옥선 씨는 “아이가 ‘산이 뭐냐’고 물으면 말로 설명할 수 없어 그냥 아이 손을 잡고 산으로 갔다”고 한다. 누구나 물어보는 것보다는 가르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몰라 엄마를 둔 아이는 항상 즐겁게 엄마를 가르치며 배운다. 송 씨는 “배움의 즐거움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모든 것을 스스로 배웠다는 자부심을 갖는 것”이라 강조한다. 한석봉 어머니가 글씨를 잘 써 명필을 길러낸 것은 아니었다. ‘다알아 엄마’ 밑에서는 큰 인물이 나올 수 없다.
가르치면 망한다 아빠는 20대 후반 2년간 경기도 양평군 문호리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다. 첫해 4학년 담임을 맡았는데 책을 못 읽는 아이들이 태반이었다. 처음에는 무조건 “읽어오라”고 시키다 전혀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안 되겠다 싶어 하루 8시간 480분을 40명에게 쪼개, 한 명 한 명하고 10분 내외의 배움의 나눔을 시작했다. 가르치기보다 아이와 서로 묻고 답하며 같이 배워갔다.
드럼 연주는 유근 군의 새 취미다.
청소 절대로 하지 말라 맞벌이 주부들은 아이가 아프거나 공부가 뒤처지면 죄책감에 시달리곤 한다. 급기야 육아휴직이나 퇴직 등을 한 뒤 아이와 24시간 붙어 있을 생각을 한다. 그러나 송 씨는 “육아휴직의 조건은 단 하나, 엄마가 직접 교육하는 것이 나을 게 분명한 경우뿐”이라 말한다. “전업주부도 방학 일주일만 지나면 아이 학교 갈 날만 기다린다. 자녀를 위해 일을 쉬어놓고도 살림하느라 정작 아이에겐 신경 쓰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부모가 얼마나 ‘선택과 집중’을 잘 하느냐다. 청소니 뭐니 하는 잡다한 집안일은 잊고 아이에게 집중한다. 맞벌이 부부가 퇴근해 저녁 하고 빨래하고 매일 청소까지 하고 나면 아이와 함께할 시간은 없어진다. 엄마에게 팔방미인이 되길 요구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핵심은 선택과 집중 보통 엄마들은 아이가 특정 분야에 재능을 보이면 계속 키워주는 것이 아니라 “이건 잘하니 이제 다른 걸 해보자”고 한다. 만물박사를 만들려는 것이다.
송 씨 부부도 유근이 취학을 앞두고 어떤 공부를 얼마나 시킬 것인지를 두고 설전을 벌였다. 결론은 ‘유근이가 좋아하는 것, 가장 잘하는 것 한 가지만 한다’였다. 송 씨는 “그래서 남들이 서너 개 가방 바꿔가며 이 학원 저 학원 뛰어다닐 때 유근이는 ‘나는 바보로소이다’ 열 번 외치고 책상에 앉아 꿋꿋이 한 우물만 팠다”고 말한다. “어떤 아이라도 지금 하는 공부 과목을 절반으로 줄인다면 선택한 과목만큼은 두 배 이상 잘할 수 있다. 유근이도 영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분야를 선택했기 때문에 하루 14시간씩 공부하는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시간표와 교과서는 잊어버려라 송수진 씨가 “유근이는 영재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근거 중에는 교육인적자원부에서 고시한 수학교육 시간 수도 있다.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생들은 고등학교 1학년 공통과정까지 총 1310시간 동안 수학을 배우게 돼 있다. 그러니 하루 3시간씩 291일, 그러니까 10개월이면 초·중·고 과정을 다 공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송 씨는 “유근이는 교육인적자원부 고시 교육과정대로 7개월 정도 공부한 뒤 미적분을 풀었다. 결코 빠른 것이 아니다. 따라서 학교 수업을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면 누구나 유근이만큼 수학을 잘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대다수 아이들이 수학을 싫어하고 수학에서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송 씨는 “내 아이에게 맞는 교육과정을 찾고 그에 맞는 시간표를 아이에게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 지적한다. 면밀한 관찰과 연구 끝에 내 아이에게 맞는 시간표를 짤 줄 아는 부모가 아이를 영재로 만든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