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②영화로 만들어진 소설 ‘흙’(1)과 ‘자유부인’(2) <br>③ 이광수의 ‘흙’에 들어간 삽화. ④ 심훈의 ‘상록수’가 신춘문예에 당선됐다는 소식을 전하는 동아일보 기사. ⑤ 당시의 여행 가이드북. ⑥ 이광수의 ‘무정’ 표지. ⑦ 전시장 내부
우리에게 근대는 아픔, 수탈 또는 식민지성과 연결되어 다가온다. 개항과 함께 소비와 자본이라는 어설픈 꽃을 꽂은 채 신지식인 사이로 파고들어 온 근대라는 바람은 신문을 통해 급속도로 확산됐다. 당시 신문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해주는 매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문화의 즉각적인 현상을 반영해주는 바로미터 구실을 했다. 신문에 실린 소설은 근대 문명을 전파하고 풍속을 개량하는 수단으로서 일반 대중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다. 사람들은 소설을 통해서 근대의 정보 전달 방식인 편지와 전보를 익혔고, 등장하는 삽화를 보며 패션을 접했다. 대중은 신문 속 소설을 통해 배재학당이나 이화학당에 있는 근대적인 생활공간을 간접 경험할 수 있었다.
실크모자와 핸드백 등 100년 전 사용되던 일상의 물건들도 함께 전시됐다.
신문 소설의 다양함을 볼 수 있다는 장점에도 이 전시는 100년 전 일상의 물건과 인쇄된 프린트물만 진열했다는 지루함을 준다. 이 전시물들을 부산의 근대 역사 이야기와 충분히 연결시킬 수 있음에도, 이를 향한 노력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다. 부산근대역사관이 개관한 지 2년이나 됐지만, 아직도 “옛 미문화원이 어디에 있느냐”라고 물어야 그 위치를 알려주는 대답을 들을 수 있는 현실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