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이블·위성방송 시청자 1400만명 시대다. 케이블 채널에는 공중파 방송에선 접할 수 없는 갖가지 진귀하고 색다른 프로그램들이 넘쳐난다. 엄청난 콘텐츠 양 때문에 옥석 구분에 어려움을 겪는 독자들을 위해 놓치면 아까운 히트 프로그램 12편을 추천한다. 〈편집자〉
지 난 4월 말 미 백악관 출입기자 만찬에서 영부인 로라 부시는 “대통령이 밤 9시에 잠들면 나는 ‘위기의 주부들’을 튼다. 나야말로 위기의 주부”라는 말을 해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2004 미국 ABC 채널의 최고 히트작인 ‘위기의 주부들’은 미국 방송가에서 오랫동안 1위를 차지하며 인기를 누려온 ‘C.S.I’를 단번에 앞지른 작품이다. 첫 방송에서부터 2200만명을 브라운관 앞으로 불러들여 2004 최고의 드라마 시리즈 탄생을 예고한 이 시리즈는 2005 골든글로브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을 받는 등 작품성과 흥행성을 고루 인정받았다.
이야기는 평온한 마을의 평범한 일상을 죽 훑어 보여주는 화면과 함께 “제 이름은 메리 앨리스 영이에요”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한 중년 여성의 경쾌한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모든 게 평상시와 다를 게 없었어요. 가족을 위해 아침을 준비하고, 집안일을 하고. 보통의 다른 날들과 똑같은 하루를 보냈답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놀라운 이유예요. 제가 갑자기 붙박이장을 열고,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권총을 꺼내들었으니까요.” 그리고 ‘빵!’
주인공이, 그것도 등장한 지 10분도 채 안 돼 자살하는 이 기묘한 이야기는 사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메리 앨리스의 이웃이자 친구인 네 명의 주부, 수잔·리네트·가브리엘·브리가 친구의 유품을 정리하다 “나는 네가 한 짓을 알고 있다. 정말로 역겹더군. 사람들에게 폭로해버릴 거야”라는 내용의 협박편지를 발견하고 그녀의 자살 뒤에 숨은 무언가를 캐들어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위기의 주부들’의 진짜 매력은 주인공들이, 그와 종종 비교되는 또 하나의 히트 드라마 ‘섹스 & 시티’ 속 여자들과는 달리,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속속들이 까발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자살한 메리 앨리스가 그런 것처럼 주인공들 모두 나름의 비밀을 안고 산다. 죽은 메리 앨리스가 내레이션을 통해 이들의 비밀을 조금씩 드러내기도 하고 숨겨주기도 하면서 극의 강약을 조절하는데, 흥미로운 것은 숨기고 싶은 진실이 드러나면 이야기는 오히려 미궁으로 빠지고 만다는 것이다. 이혼녀 수잔이 매력적인 배관공 마이크에게 끌리는 본심을 드러내면 그간 감춰두었던 마이크의 미스터리한 모습을 보여줘 도무지 다음 회를 기다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드라마의 ‘마력’이다.
직접 그 매력을 확인하고 싶지만 ‘캐치온’이 유료 채널이라 어떻게 하느냐고 불평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이 대단한 시리즈는 보수적인 공영방송 KBS를 유혹하는 데도 성공했다. 매주 일요일 밤 11시15분 KBS2를 통해서도 ‘위기의 주부들’을 만날 수 있다. 7월24일 첫 방송.
질병과의 전쟁 … 팽팽한 긴장메디컬 인베스티게이션 XTM/ 월·화 밤 12시
파라마운트사와 NBC 유니버셜이 공동 제작해 2004년 NBC 채널을 통해 방송한 ‘메디컬 인베스티게이션’은 ‘C.S.I’가 개척한 과학 수사 드라마의 또 다른 변주다. 미국 국립의료원인 NIH(National Institute of Health) 소속 기동의학팀의 활약상을 그린 이 시리즈는 미국 방송 당시 금요일 프라임 시간대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큰 화제를 낳았다. 미국 시청률 조사 기관 NTI Galaxy Explorer는 2004년 10월, ‘메디컬 인베스티게이션’의 시청자가 930만명을 넘어섰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의사, 독극물 전문가, 위기 상황에서 사회가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언론을 통제하는 언론담당관 등 총 5명으로 구성된 기동의학팀의 업무는 희귀하고 치명적인 질병과 전염병의 발병 원인, 감염 경로를 밝혀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다. 질병이 발생한 곳이면 어디든 출동하는 이들은 사건 발생지에서 정부의 명령과 같은 전권까지 행사할 수 있는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매사에 ‘완벽’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 점이야말로 ‘메디컬 인베스티게이션’이 높은 인기를 누리는 이유다. 바이러스에 감염돼 고생하기도 하고, 잦은 출장과 격무 때문에 가족과 불화를 겪는 등의 인간적인 모습은 시리즈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스피디한 전개도 매력 중 하나. 들고 찍기와 클로즈업을 적절히 활용한 카메라는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한다.
사생활 들추기 막가파 결정판현장고발 치터스 Q채널/ 월~금 오전 9시·자정
‘내 남편, 내 아내가 바람난 것 같다.’ 이럴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스로 증거 찾기에 골몰하거나 뒷조사 전문 심부름센터를 찾지만, 미국인들은 ‘현장고발 치터스’(이하 치터스) 팀에게 달려간다.
‘치터스’는 미국을 넘어 세계 80여개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 NBC 방송의 심야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이성이건 동성이건, 배우자나 애인의 불륜 여부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의뢰를 받아 2주간 몰래카메라 촬영 등 다양한 확인작업을 거친 다음, ‘현장’을 덮쳐 충격적인 삼자 대면을 연출한다. 이렇다 보니 프로그램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야말로 스릴과 서스펜스, 의심, 불륜, 배신, 외설, 분노, 폭력 등이 넘쳐난다. 눈물을 동반한 의뢰인의 안타까운 상황 고백, 미행이나 ‘침실 몰카’도 서슴지 않는 제작진의 증거 수집, 적나라한 몰래카메라를 본 뒤 혼란과 배신감에 몸을 떠는 의뢰인, 삼자 대면 현장에서의 욕설과 난투극을 동반한 감정적 파국. 그 와중에 시청자들은 어느새 의뢰인이나 바람피운 상대, 그의 새 애인 등 그중 누군가에게 감정이입이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제작진은 마치 범죄 현장을 덮치는 형사들처럼 우르르 달려들어 피의뢰인의 정신을 쏙 빼놓고는, 자극적 질문으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 뒤 실제로 주먹이 오가는 상황이 발생하면 그때서야 달려들어 뜯어말린다. 솔직히, 보다 보면 바람핀 사람들보다 제작진의 행태가 더 기막혀 ‘저 나라에는 인권도 없나’ 혀를 끌끌 차게 될 정도다.
그러나 안심(?)하시라. ‘치터스’의 제작자는 미국 댈러스의 유명한 가정상담전문 변호사인 보비 골드스타인이다. 법률적 측면에 만전을 기했음은 당연지사. 외뢰인이나 바람피운 당사자, 그 새 파트너의 이름과 얼굴이 고스란히 방송을 탈 수 있는 건 그들에게 거액의 사례비를 지급하기 때문이다. 평범한 생활인인 출연자들은 동성애, 매춘, 근친상간 등 자신의 결정적 치부가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드러나는 상황까지도 기꺼이 감수하며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물론 그 이면에는 어떤 주제로든 미디어를 타 ‘유명인’이 되고 싶은 미국인 특유의 심리도 얼마간 작용했을 터다.
재미있는 건, 그토록 ‘반사회적’이며 ‘인권침해적’인 작업을 하는 제작진이 “‘치터스’야말로 정절과 사랑의 신성함을 무엇보다 강조하는 사회정의 구현 프로그램”이라는 식의 멘트를 시도 때도 없이 날린다는 점이다. 얼른 봐도 교육이나 생활수준이 별로 높지 않아 뵈는 출연자들의 의외로 이성적이고 확신 가득한 위기 대응 방식도 눈길을 끈다. 어쨌거나 그래서 더 치졸하고 뻔뻔한, 좀체 시선을 뗄 수 없는 막가파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결정판이 바로 ‘치터스’다.
외모지상주의 … 여자 변신 무죄?미운 오리 백조되기 온스타일/ 금 밤 11시30분
리얼리티 프로그램 장르 중에 ‘메이크 오버’라는 것이 있다. 살을 빼고, 성형수술을 하고, 머리 모양과 옷차림을 바꾸고, 심리치료를 받는 과정 등을 통해 ‘이전과는 또 다른 나’로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에 주목하는 것. ‘미운 오리 백조되기’(원제 The Swan)는 그 종합판이라 할 만한 프로그램이다.
6월17일 시즌2 방영에 들어간 ‘미운 오리 백조되기’는 심한 외모 콤플렉스를 지닌 여성들을 대상으로 ‘메이크 오버’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우선 30만명의 지원자 중 엄격한 심사를 통해 심한 자기혐오와 절망에 빠진, 그러나 반드시 이겨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남다른 여성 16명을 선발한다. 이들은 성형외과, 치과, 안과, 피부과, 정신과, 피트니스 트레이너 등 최고 전문가 집단의 전폭적 지원 속에서 3개월간 그야말로 ‘뼈를 깎는’ 고통의 변신과정을 거친다.
얼굴부터 치아, 아랫배와 종아리까지 그녀들의 온몸에는 칼이 닿지 않는 부분이 거의 없을 정도다. 그 와중에도 운동을 해야 하고 자기 존중감 회복을 위한 심리치료도 받아야 한다. 그 변신의 3개월간 출연자들은 자기 모습을 볼 수가 없다.
드디어 거울 앞에 선 날, 완전히 달라진 외양에 기절할 듯 놀라며 눈물을 쏟는 출연자들을 보고 있자면, 문득 같이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심한 매부리코로 학창시절 내내 연극에서 마녀 역을 도맡아했다거나, 어렸을 때 입은 얼굴 화상으로 고통받아왔고, 치아가 없지만 치료비가 부족해 틀니를 끼고 살아야 했던 여성들의 화려한 변신은 시청자들에게도 적지 않은 대리만족을 준다.
그러나 ‘미운 오리 백조되기’ 히트의 핵심은 역시 ‘어쩌면 저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하는 놀라움 그 자체일 것이다. 때문에 인터넷에는 출연자들의 ‘변신’ 전과 후를 비교해놓은 사진들이 수도 없이 돌아다닌다. ‘성형수술에 올인하는 행위 따위’ 하며 한껏 혐오하다가도 어느새 ‘기회만 온다면 나도’ 하는 쪽으로 생각이 기우는 건, 실제로 우리가 외모가 바뀌면 인생도 바뀌는 요지부동 외모지상주의의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에로
다양한 성문화 ‘화끈한 초대’섹스세테라 스파이스TV/ 목 오후 1시30분 섹시 플래닛 미드나잇채널/ 월·화 밤 11시30분
지난해 성인 채널 시청자들이 사랑한 작품은 16mm 국산 에로 영화였다. 에로틱 장르에서만큼은 ‘나와 다르지 않은 현실감’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서양 여성들의 넘실대는 가슴과 잘록한 허리, 풍만한 엉덩이가 국내 팬들에게 크게 어필할 수 없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2005년, 시청자들의 취향은 조금 달라진 듯하다.
물론 16mm 국산 에로 영화의 시청률은 여전히 나쁘진 않다. 하지만 이른바 ‘이색 성문화 탐험’이라 정의할 수 있는 ‘르포 다큐’ 프로그램의 인기가 부쩍 높아지고 있다. 플레이보이TV의 대표적인 르포 다큐 ‘섹스세테라’와 영국에서 제작한 ‘섹시 플래닛’이 대표적인 예다.
‘섹스세테라’는 요즘 미국에서 유행한다는 ‘곤조 포르노’를 우리나라에 소개했다. ‘곤조’란 짜여진 대본 없이 배우들이 즉흥적으로 즐기는 모습을 담은 포르노 장르. 곤조 포르노 제작자이자 배우이기도 한 메릴린의 “남자만 있다면 언제든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는 매우 인상적이다.
자위기구의 제작과정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도 재미있다. 제작회사의 한 관계자는 “남성용 자위기구는 간단해 보이지만 의외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근사한 몸매의 여자는 모델의 몸을 그대로 본뜨기만 하면 되지만 섬세한 느낌을 살리는 일은 매우 정교한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역시 눈에 띄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크다는 남자의 심벌을 모델로 한 여성용 기구다. 무려 30여cm에 이르는 ‘길이’를 자랑하는 이 기구는 국내 시청자들에게는 매우 ‘임파서블’한 것이지만, 어쨌든 신기하긴 하다는 말씀!
XTM에서 인기리에 방송됐던 ‘섹시 플래닛’의 두 번째 시즌은 미드나잇채널에서 전파를 탈 예정이다. 시즌1과 마찬가지로 포르노 제작현장이며 나체족, 유명 나이트클럽 및 섹스 서커스단의 이야기 등 각국의 독특한 성 풍속을 보여줄 예정이다. ‘섹시 플래닛’ 최고의 아이템은 ‘오럴섹스’ 현장 탐방이다. 여배우의 적나라한 불평도 재미있지만, 조금의 추위에도 쉽게 ‘작아지는’ 남성의 심벌을 보호하기 위한 스태프들의 사투가 눈길을 끈다.
그밖에 일본의 독특한 섹스 산업 현장을 소개하는 ‘일본 섹스 원정대’, 외국의 유명 성인 클럽을 탐방하는 ‘에로티카’와 ‘스트립 투어 걸’ 등도 르포 다큐의 범주에 드는 프로그램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