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5일이면 연쇄살인범 유영철 씨가 검거된 지 꼬박 1년이 된다. 우리 사회에 가공할 충격을 준 유씨 사건은 6월9일 대법원의 사형 확정 판결로 일단락됐다. 이로써 ‘희대의 살인마’라 불렸던 유씨 사건은 잊어도 되는 걸까.
美 연쇄살인범 64%가 ‘성적동기’로 범행
그러나 이 사건을 끔찍한 ‘악몽’으로만 취급하는 것은 일종의 현실회피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여러 명의 목숨을 연쇄적으로(혹은 연속적으로) 빼앗는 비슷한 범죄가 몇 년의 간격을 두고 발생하는 까닭이다. 1997년 이후에는 이런 범죄가 거의 해마다 발생하고 있다(표 참조). 어떤 사람이, 어떤 목적으로, 어떤 심리 상태에서, 어떤 생명을 희생시키는지 이해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유 씨에게 희생된 사람의 수가 특히 많다 뿐이지 그 이전에도 연쇄적으로 여러 생명을 빼앗은 범죄자는 적지 않았다. 70년대 김대두, 80년대 지존파 온보현, 90년대 정두영 사건 등은 대대적인 언론 보도를 통해 익히 알려졌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연쇄살인사건도 종종 있어왔다. 아시아경기대회와 올림픽이 펼쳐진 86~88년에는 청산가리를 넣은 음료로 5명을 살해한 가정주부 김모 씨 사건이, 한일월드컵을 앞둔 2002년 2~4월에는 차량을 이용해 6명의 여성을 납치·강간·살해한 수원시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졌다. 최근에는 충북 청주에서 3개월 동안 3명을 살해한 30대 남성 김모 씨가 검거되기도 했다.
‘연쇄살인’의 정의는 다양하다. 학자마다 살인 횟수, 범행 간격, 수법의 동일성 여부, 범행 동기 등에 따라 서로 다른 정의를 내린다. 특히 미 연방수사국(FBI)은 ‘범행 사이에 정서적 시간의 단절(심리적 냉각기)을 두고 3명 이상을 살해하며, 살해 자체가 범행의 목적인 경우’를 연쇄살인이라고 정의한다. 이 같은 정의에 따르자면 우리나라에서는 두 건의 연쇄살인사건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화성 연쇄살인사건(86~96년)과 유영철 연쇄살인사건이 그것.
FBI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여러 생명을 앗아간 범죄를 연쇄살인사건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한국 현실에 맞지 않는 일이다. 몇 가지 ‘항목’에선 어긋난다 하더라도 이미 여러 명의 생명을 차례로 빼앗았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한국의 연쇄살인’에 대한 정의를 내리려는 노력이 시도되고 있다. 1월 발간된 서울지방경찰청의 ‘한국의 살인범죄 실태와 수사’(김원배 외 지음)는 여러 명을 죽인 범죄를 연쇄살인, 연쇄성 살인, 연속 살인으로 분류했다. 표창원 교수(경찰대 범죄심리학)는 최근 발표한 저서 ‘한국의 연쇄살인’에서 한국형 연쇄살인을 ‘일반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살인의 동기나 계산 없이, 살인에 이르는 흥분 상태가 소멸될 정도의 시간적 공백을 두고 2회 이상 살인을 저지르는 행위’로 정의했다. 이런 정의에 따르는 한국형 연쇄살인의 특징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큰 특징은 범행동기가 ‘성적 동기’에 있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다는 것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선진 백인사회’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의 많은 경우는 범행동기가 성적 동기에서 발견된다. 희생자를 유인해 성관계를 맺거나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함으로써 일종의 성적 쾌감을 추구하는 것이다.
화성 연쇄살인은 대표적 성적 동기 범죄
올해 2월 31년 만에 검거된 미국의 연쇄살인범인 일명 ‘BTK(Bind, Torture, Kill·묶어놓고 고문하고 살해한다는 뜻)’나 90년대 중반부터 자신의 돼지농장으로 여성들을 유인해 살해한 캐나다의 연쇄살인범 로버트 픽턴 등도 그런 경우. FBI가 연쇄살인범 387명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64%가 성적 동기에 의해 범행을 저질렀다. FBI 범죄분석관 로버트 레슬러는 “연쇄살인은 본질적으로 성적인 문제와 관련돼 있다”고 말할 정도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70년대 이후 벌어진 연쇄살인사건을 관찰하면 그런 경향이 매우 미약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김대두는 외딴집에 침입해 노인, 여성, 어린이, 갓난아이를 가리지 않고 폭행을 휘둘러 무참하게 살해했다. 또 지존파에게 살인은 ‘부유층을 제거한다’는 일종의 의식이었다. 온보현은 자기 인생을 비관해 ‘내 나이만큼 죽이고 나도 죽자’며 사회에 대한 복수심을 살인을 통해 드러냈으며, 정두영은 결혼해 행복하게 사는 데 필요한 ‘10억원’을 모으기 위해 강도살인범으로 돌변했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청산가리로 친정아버지와 빚쟁이 등을 차례로 살해한 가정주부 김모 씨는 유흥비 때문에 진 빚에서 벗어나는 것이 범행의 목적이었다. 97년 대인기피증을 앓던 이모 씨는 입영통지서를 받고 우울해지자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11일 동안 모두 4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2000년 4월 천모 씨는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사흘 동안 4명을 살해했다. 2002년 수원 등지에서 6명을 살해해 차에 싣고 다닌 허모 씨 등 일당 2명의 범행 목적은 유흥비로 쓴 카드빚을 갚는 것이었다.
유영철 사건의 경우도 근원적인 범행동기가 성적 동기에 있다고 보기 힘들다는 게 범죄심리 전문가들의 견해다. 박광배 교수(충북대 심리학)는 “성적 동기를 갖는 연쇄살인범들은 보통 천천히 즐기면서 사람을 죽인다. 그 과정이 성행위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 씨는 둔기를 이용해 한순간 목숨을 빼앗았다. 이는 일종의 분노의 폭발로 읽힌다”고 말한다.
몇 건의 사건은 분명 성적 요인에서 촉발된 연쇄살인사건으로 읽힌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화성 연쇄살인사건이 그 예다. 2001년 네 살짜리 여자 어린이를 성폭행한 뒤 토막 살해한 최모 씨 사건 또한 그러하다. 최 씨의 경우 단 1명을 살해했기 때문에 연쇄살인사건으로는 분류되지 않지만, 경찰 관계자들은 “검거되지 않았더라면 연쇄살인을 저지를 가능성이 큰 자”라고 지적한다. 최 씨는 이미 다섯 살짜리 여자아이를 성추행한 혐의로 2년6개월의 형을 산 전력이 있는 소아기호증을 가진 자이기 때문이다. 한 범죄심리 전문수사관은 “최 씨가 조기 검거되지 않았다면 또 다른 아동 성폭행이 일어났을 테고, 이미 살인을 저질렀기에 두 번째 살인을 저지르기는 더욱 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의 연쇄살인범들의 공통점은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분노, 자기 인생에 대한 절망과 좌절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대부분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부모에게서 버림받거나 학대당했으며,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어린 나이부터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를 들락거렸다. 때문에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할 길이 없었다. 김원배(전 서울경찰청 수사부 강력반장)은 이들의 특징에 대해 “고아, 계모 슬하에서 성장, 부모 이혼으로 친척집에서 학대받으며 성장, 아버지의 폭주와 주정으로 가출, 부모 중 한쪽이 음독 자살한 것을 보고 성장, 빈곤으로 인해 상대적 박탈감을 가진 자, 스스로 고독하고 대인기피증을 보이며 자신감이 결여된 자”라고 설명한다. 표창원 교수는 “이러한 환경에서 성장한 사회 부적응자들이기에 박탈감이 크며 ‘남들처럼 잘 살고 싶다’ ‘세상에 복수하고 싶다’는 사회적 동기와 욕구가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국형 연쇄살인’은 범행동기가 외국과는 달리 성적 동기가 적고 사회적 불만에 있다는 것이 곧 우리 사회가 ‘성범죄 안전지대’란 뜻으로 해석돼서는 곤란하다. 잘 알려져 있듯이 우리나라의 성추행이나 강간 등 성범죄는 여느 나라 못지않은 수준이다. 99년부터 대전 등지에서 혼자 사는 여성을 상대로 성폭행을 저지르고 있는 일명 ‘발발이’에 관해서는 경찰에 무려 70여건의 피해 신고가 접수된 상태다.
오히려 전문가들은 성범죄자들이 살인까지 저지를 필요가 없거나 살인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살인하지 않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수정 교수(경기대 범죄심리학)는 “미국처럼 이웃끼리 동떨어져 사는 것이 아니라 오밀조밀 모여 살기 때문에 감금, 성폭행, 살인, 시체유기에 편리한 생활환경이 갖춰져 있지 않은 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매춘산업과 원조교제가 발달해 있는 왜곡된 성문화도 극단적인 성범죄를 억제하는 한 가지 배경요인으로 풀이될 수 있다.
범죄 양상은 사회 발전과 함께 변화한다. 선진국에서는 사회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고 자기 처지를 비관하는 범죄가 적은 대신 개인적인 욕구의 추구나 특정 집단에 대한 미움을 드러내는 ‘헤이트 크라임(Hate Crime)’이 발생하고 있다. 7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연쇄살인사건이 가난, 가정해체, 전과자에게 가해지는 멸시와 냉대, 그리고 그에 대한 복수심과 좌절감에 뿌리를 두고 있음은 그 자체가 우리 사회의 수준을 드러낸다.
우리나라 연간 살인 900~1000건
그러나 이 같은 연쇄살인범의 범행동기는 ‘디스털 코드(Distal Code·원거리 요인)’에 국한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조은경 교수(한림대 심리학과)는 “연쇄살인범들의 프록시멀 코드(Proximal Code·근거리 요인)는 금품 갈취나 성폭행 등 개인적인 욕구 충족에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지적한다. 연쇄살인범이 될 수 있는 ‘잠재 후보’는 사회적 요인으로 길러지는 것이지만 돌이킬 수 없는 잘못된 선택은 순전히 본인 스스로 내리는 것이란 얘기다.
인간사회에서 모든 범죄를 몰아내는 것은 그저 이상일 뿐이다. 서양의 여러 문화권에서 실시한 한 연구 결과는 남성의 5%는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고 한다. 살인 범죄 또한 어느 사회에서나 일정량씩 벌어지고 있다(우리나라에서는 연간 900~1000건, 서울에서는 2.4일에 1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의지에 의한 예방 가능한 몫도 있는 법이다. 아동학대와 가정폭력, 학교와 이웃의 무관심과 냉대는 성격 장애를 일으켜 연쇄살인에 이르게 하는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부모, 교사 그리고 우리 사회가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보듬어줄 때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최대한 줄일 수 있지 않을까.
美 연쇄살인범 64%가 ‘성적동기’로 범행
그러나 이 사건을 끔찍한 ‘악몽’으로만 취급하는 것은 일종의 현실회피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여러 명의 목숨을 연쇄적으로(혹은 연속적으로) 빼앗는 비슷한 범죄가 몇 년의 간격을 두고 발생하는 까닭이다. 1997년 이후에는 이런 범죄가 거의 해마다 발생하고 있다(표 참조). 어떤 사람이, 어떤 목적으로, 어떤 심리 상태에서, 어떤 생명을 희생시키는지 이해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유 씨에게 희생된 사람의 수가 특히 많다 뿐이지 그 이전에도 연쇄적으로 여러 생명을 빼앗은 범죄자는 적지 않았다. 70년대 김대두, 80년대 지존파 온보현, 90년대 정두영 사건 등은 대대적인 언론 보도를 통해 익히 알려졌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연쇄살인사건도 종종 있어왔다. 아시아경기대회와 올림픽이 펼쳐진 86~88년에는 청산가리를 넣은 음료로 5명을 살해한 가정주부 김모 씨 사건이, 한일월드컵을 앞둔 2002년 2~4월에는 차량을 이용해 6명의 여성을 납치·강간·살해한 수원시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졌다. 최근에는 충북 청주에서 3개월 동안 3명을 살해한 30대 남성 김모 씨가 검거되기도 했다.
‘연쇄살인’의 정의는 다양하다. 학자마다 살인 횟수, 범행 간격, 수법의 동일성 여부, 범행 동기 등에 따라 서로 다른 정의를 내린다. 특히 미 연방수사국(FBI)은 ‘범행 사이에 정서적 시간의 단절(심리적 냉각기)을 두고 3명 이상을 살해하며, 살해 자체가 범행의 목적인 경우’를 연쇄살인이라고 정의한다. 이 같은 정의에 따르자면 우리나라에서는 두 건의 연쇄살인사건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화성 연쇄살인사건(86~96년)과 유영철 연쇄살인사건이 그것.
FBI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여러 생명을 앗아간 범죄를 연쇄살인사건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한국 현실에 맞지 않는 일이다. 몇 가지 ‘항목’에선 어긋난다 하더라도 이미 여러 명의 생명을 차례로 빼앗았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한국의 연쇄살인’에 대한 정의를 내리려는 노력이 시도되고 있다. 1월 발간된 서울지방경찰청의 ‘한국의 살인범죄 실태와 수사’(김원배 외 지음)는 여러 명을 죽인 범죄를 연쇄살인, 연쇄성 살인, 연속 살인으로 분류했다. 표창원 교수(경찰대 범죄심리학)는 최근 발표한 저서 ‘한국의 연쇄살인’에서 한국형 연쇄살인을 ‘일반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살인의 동기나 계산 없이, 살인에 이르는 흥분 상태가 소멸될 정도의 시간적 공백을 두고 2회 이상 살인을 저지르는 행위’로 정의했다. 이런 정의에 따르는 한국형 연쇄살인의 특징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큰 특징은 범행동기가 ‘성적 동기’에 있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다는 것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선진 백인사회’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의 많은 경우는 범행동기가 성적 동기에서 발견된다. 희생자를 유인해 성관계를 맺거나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함으로써 일종의 성적 쾌감을 추구하는 것이다.
화성 연쇄살인은 대표적 성적 동기 범죄
올해 2월 31년 만에 검거된 미국의 연쇄살인범인 일명 ‘BTK(Bind, Torture, Kill·묶어놓고 고문하고 살해한다는 뜻)’나 90년대 중반부터 자신의 돼지농장으로 여성들을 유인해 살해한 캐나다의 연쇄살인범 로버트 픽턴 등도 그런 경우. FBI가 연쇄살인범 387명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64%가 성적 동기에 의해 범행을 저질렀다. FBI 범죄분석관 로버트 레슬러는 “연쇄살인은 본질적으로 성적인 문제와 관련돼 있다”고 말할 정도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70년대 이후 벌어진 연쇄살인사건을 관찰하면 그런 경향이 매우 미약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김대두는 외딴집에 침입해 노인, 여성, 어린이, 갓난아이를 가리지 않고 폭행을 휘둘러 무참하게 살해했다. 또 지존파에게 살인은 ‘부유층을 제거한다’는 일종의 의식이었다. 온보현은 자기 인생을 비관해 ‘내 나이만큼 죽이고 나도 죽자’며 사회에 대한 복수심을 살인을 통해 드러냈으며, 정두영은 결혼해 행복하게 사는 데 필요한 ‘10억원’을 모으기 위해 강도살인범으로 돌변했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청산가리로 친정아버지와 빚쟁이 등을 차례로 살해한 가정주부 김모 씨는 유흥비 때문에 진 빚에서 벗어나는 것이 범행의 목적이었다. 97년 대인기피증을 앓던 이모 씨는 입영통지서를 받고 우울해지자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11일 동안 모두 4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2000년 4월 천모 씨는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사흘 동안 4명을 살해했다. 2002년 수원 등지에서 6명을 살해해 차에 싣고 다닌 허모 씨 등 일당 2명의 범행 목적은 유흥비로 쓴 카드빚을 갚는 것이었다.
유영철 사건의 경우도 근원적인 범행동기가 성적 동기에 있다고 보기 힘들다는 게 범죄심리 전문가들의 견해다. 박광배 교수(충북대 심리학)는 “성적 동기를 갖는 연쇄살인범들은 보통 천천히 즐기면서 사람을 죽인다. 그 과정이 성행위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 씨는 둔기를 이용해 한순간 목숨을 빼앗았다. 이는 일종의 분노의 폭발로 읽힌다”고 말한다.
몇 건의 사건은 분명 성적 요인에서 촉발된 연쇄살인사건으로 읽힌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화성 연쇄살인사건이 그 예다. 2001년 네 살짜리 여자 어린이를 성폭행한 뒤 토막 살해한 최모 씨 사건 또한 그러하다. 최 씨의 경우 단 1명을 살해했기 때문에 연쇄살인사건으로는 분류되지 않지만, 경찰 관계자들은 “검거되지 않았더라면 연쇄살인을 저지를 가능성이 큰 자”라고 지적한다. 최 씨는 이미 다섯 살짜리 여자아이를 성추행한 혐의로 2년6개월의 형을 산 전력이 있는 소아기호증을 가진 자이기 때문이다. 한 범죄심리 전문수사관은 “최 씨가 조기 검거되지 않았다면 또 다른 아동 성폭행이 일어났을 테고, 이미 살인을 저질렀기에 두 번째 살인을 저지르기는 더욱 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4년 7월30일 유영철 사건 시신 암매장 현장 옆에서 봉원사 주최로 희생자들에 대한 위령천도제가 열렸다.
‘한국형 연쇄살인’은 범행동기가 외국과는 달리 성적 동기가 적고 사회적 불만에 있다는 것이 곧 우리 사회가 ‘성범죄 안전지대’란 뜻으로 해석돼서는 곤란하다. 잘 알려져 있듯이 우리나라의 성추행이나 강간 등 성범죄는 여느 나라 못지않은 수준이다. 99년부터 대전 등지에서 혼자 사는 여성을 상대로 성폭행을 저지르고 있는 일명 ‘발발이’에 관해서는 경찰에 무려 70여건의 피해 신고가 접수된 상태다.
오히려 전문가들은 성범죄자들이 살인까지 저지를 필요가 없거나 살인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살인하지 않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수정 교수(경기대 범죄심리학)는 “미국처럼 이웃끼리 동떨어져 사는 것이 아니라 오밀조밀 모여 살기 때문에 감금, 성폭행, 살인, 시체유기에 편리한 생활환경이 갖춰져 있지 않은 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매춘산업과 원조교제가 발달해 있는 왜곡된 성문화도 극단적인 성범죄를 억제하는 한 가지 배경요인으로 풀이될 수 있다.
범죄 양상은 사회 발전과 함께 변화한다. 선진국에서는 사회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고 자기 처지를 비관하는 범죄가 적은 대신 개인적인 욕구의 추구나 특정 집단에 대한 미움을 드러내는 ‘헤이트 크라임(Hate Crime)’이 발생하고 있다. 7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연쇄살인사건이 가난, 가정해체, 전과자에게 가해지는 멸시와 냉대, 그리고 그에 대한 복수심과 좌절감에 뿌리를 두고 있음은 그 자체가 우리 사회의 수준을 드러낸다.
우리나라 연간 살인 900~1000건
그러나 이 같은 연쇄살인범의 범행동기는 ‘디스털 코드(Distal Code·원거리 요인)’에 국한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조은경 교수(한림대 심리학과)는 “연쇄살인범들의 프록시멀 코드(Proximal Code·근거리 요인)는 금품 갈취나 성폭행 등 개인적인 욕구 충족에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지적한다. 연쇄살인범이 될 수 있는 ‘잠재 후보’는 사회적 요인으로 길러지는 것이지만 돌이킬 수 없는 잘못된 선택은 순전히 본인 스스로 내리는 것이란 얘기다.
인간사회에서 모든 범죄를 몰아내는 것은 그저 이상일 뿐이다. 서양의 여러 문화권에서 실시한 한 연구 결과는 남성의 5%는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고 한다. 살인 범죄 또한 어느 사회에서나 일정량씩 벌어지고 있다(우리나라에서는 연간 900~1000건, 서울에서는 2.4일에 1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의지에 의한 예방 가능한 몫도 있는 법이다. 아동학대와 가정폭력, 학교와 이웃의 무관심과 냉대는 성격 장애를 일으켜 연쇄살인에 이르게 하는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부모, 교사 그리고 우리 사회가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보듬어줄 때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최대한 줄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