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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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유행 드레스 코드는 ‘초록’

  • 이인성/ 이화여대 의류직물학과 교수

    입력2005-05-20 17: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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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유행 드레스 코드는 ‘초록’

    2005년 크리스챤 라크루와 패션쇼에서 한 모델이 녹색의 재킷을 선보였다.환경주의 열풍은 패션에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와서 이곳 문화를 직접 느껴보고 싶은 욕망에 성당에서 전례 봉사를 했다. 봉사를 하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Excuse me, Where is the restroom?”이었다. 처음엔 당황해서-나 역시 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다른 봉사자를 가리키며 “저쪽에다 물어보세요”라고 했지만, 곧 참석자들의 자리 정돈까지 하는 수준이 되었다. 스스로 한국인의 적응력과 눈칫밥에 놀랄 정도다. 또 하나 놀란 것은 이곳 사람들의 일명 ‘드레스 코드(dress code·복장 규정)’다.

    부활절 미사날, 모든 사람이 금방이라도 나비가 내려앉을 듯 분홍색·노란색·연두색 옷을 입고 멋진 모자들을 쓰고 온 것이다. 그리고 서로서로 “아, ‘부활절 드레스’(Easter’s dress) 입었군요” 하면서 인사를 나누었다.

    부활절은 춘분 후 만월이 지난 첫 주일이고 ‘새 생명이 태어난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부활절 드레스’란 ‘시작의 설렘’ ‘희망에 대한 기대’ 등의 의미로 꽃의 색깔, 특히 분홍색 옷을 입고 부활절 미사에 오는 일종의 약속 ‘드레스 코드’인 셈이다. ‘부활절 드레스’에 시커먼 선글라스는 전혀 어울리지 않으니 벗어야 했다.

    지난 주에는 ‘봉사자 드레스 코드’라는 e메일을 받았다. 별 생각 없이 넘겼는데 일요일에 가보니 남자는 재킷을 갖춰 입고(물론 청바지는 안 된다), 여자는 노출 없이 스커트를 입는 드레스 코드였다.

    우리나라 문화계 행사에도 ‘드레스 코드’를 가진 곳이 많다. 초청장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드레스 코드는 ‘정장’이지만, ‘블랙’ ‘레드’처럼 색깔의 드레스 코드가 있기도 하고, ‘에스닉’ ‘80년대’ ‘꽃’처럼 특정한 주제를 갖고 있는 드레스 코드가 있기도 하다. 드레스 코드는 강제하는 게 아니어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입장을 통제하거나 하진 않지만, 참석자들을 금세 친해지게 하며, 좋은 대화의 주제를 제공하는 구실을 한다. 드레스 코드를 센스 있게 소화한 사람은 그날의 베스트드레서로 뽑히게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드레스 코드에 반감을 갖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다. 또 프랑스에서도 오래 지내봤지만 미국처럼 드레스 코드에 신경 쓰는 나라도 없다. 가장 자유스런 나라라 생각되는 미국이 오히려 전통의 유럽보다 드레스 코드에 더 신경 쓴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올봄의 드레스 코드를 색깔로 지정해보면 단연 ‘녹색’이다. 세계적인 원단 전시박람회인 프랑스의 ‘프리미에 비종’에서도 올봄 유행 색으로 ‘그린’을 정했고 올해 유행을 진단할 수 있는 봄 여름 해외 컬렉션에서도 이러한 초록의 열풍을 감지할 수 있다.

    이전에 유행했던 녹색 계열의 색상이 카키 등 다소 탁하고 무거운 느낌의 색상이었다면, 올해는 연두색·라임색·허벌 티 그린·올리브 그린·애플 그린 등 아주 밝은 느낌의 색상이 셔츠나 드레스 외에도 가방·신발 등 모든 아이템에 걸쳐 폭넓게 사용되고 있으며 플라워 프린트나 기하학 프린트 등의 다양한 패턴에도 선명한 녹색 계열이 많이 사용되는 추세다.

    이러한 초록색의 부상은 최근의 웰빙 열풍과 세계적인 불경기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게 패션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건강하게 잘 살고자 하는 욕구 속에서 일어난 자연주의, 환경보호, 채식주의 열풍이 패션에 초록색으로 반영됐다는 분석이 있는가 하면, 전쟁과 불경기 등 우울한 현실을 피해 평화와 안정의 상징인 자연으로 돌아가고픈 심리를 반영해 자연의 드레스 코드인 초록색이 패션계에서 유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드레스 코드는 서로를 ‘알아봐주는 것’이다. 거리에서 신록의 푸름을 닮은 초록색 티셔츠를 입은 사람을 만난다면, 그의 패션감각을 유심히 살펴보자. 누구라도 ‘자연의 드레스 코드’에 후한 점수를 줄 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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