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의 영화 ‘피와 뼈’를 보고, 온몸의 피와 뼈가 팽팽하게 긴장하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주인공 김준평은 잊을 수 없는 캐릭터였다. 기타노 다케시가 워낙 연기를 잘하기도 했지만, 동물적 생존본능으로 가득 찬 이 남자는 재일 한국인 1세대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기타노 다케시 역시 어린 시절 수많은 김준평을 목격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영화 속에서 김준평이 고향인 제주도에서 일본 오사카로 건너간 해가 1923년. 훗날 전 재산을 북한에 기부하고 북송된 뒤 84년 북한에서 죽을 때까지 그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는 ‘피와 뼈’는 그중에서도 50년대와 60년대, 그러니까 김준평의 중년 시절을 집중적으로 그리고 있다.
‘감각의 제국’ 조감독 거쳐 ‘10층의 모스키토’로 데뷔
최양일 감독은 나가노현에서 태어나 도쿄에 있는 조총련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조명보조로 영화계 일을 처음 시작했다. 그리고 배우들의 실제 정사로 문제를 일으킨 세계적인 화제작,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감각의 제국’에서 조감독을 했고, 83년 ‘10층의 모스키토’라는 작품으로 감독 데뷔를 했다. 아내에게 이혼당한 경찰관이 마침내 인질 강도로 몰락한다는 내용의 이 영화를 최 감독은 다큐멘터리를 찍듯 정밀하게 접근하면서 한 인간의 내면이 어떻게 붕괴되는지 보여준다. 그는 이 인상적인 데뷔작으로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 스포니치 그랑프리, 요코하마 영화제 신인감독상을 받았으며 베니스영화제에도 초청되었다.
그 후 ‘언젠가 누군가가 살해당했다’(84년)를 만들었고, 93년에는 재일교포 작가 양석일의 소설 ‘택시협주곡’을 영화화한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를 만들어서 호치영화상, 닛간스포츠 영화상 대상 등 무려 53개의 영화상을 받으며 ‘문제적’ 감독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굳힌다.
최양일 감독이 한국 체류 후 만든 영화 ‘개 달리다’. 일본 젊은 세대의 삶을 보여준 영화로 호평을 받았다.
96년 최 감독은 한국으로 건너와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공부를 했다. 그는 한국의 근대 영화사를 연구하며 한국의 많은 영화인들과 교류했다. 교류했다는 것은, 즉 술을 많이 마셨다는 뜻이다. 그 후 일본으로 돌아가서 ‘개 달리다’(98년)를 만들어 속도감 있는 연출로 젊은 세대의 삶을 보여주었고, 2002년에는 ‘형무소 안’이라는 작품으로 블루리본상 감독상 호치영화상 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또 ‘퀼’(2004년)이란 작품이 지난해 아시아 각국에서 흥행에 성공했다.
재일 한국인 1세대 김준평의 삶을 그린 영화 ‘피와 뼈’.
이번에 국내 개봉하는 ‘피와 뼈’는 최 감독의 작품으로서는 ‘개 달리다’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에 소개되는 작품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그의 작품이 단골 초청되어 이미 수많은 영화 마니아들을 형성하고 있지만 대중적으로는 아직까지도 낯설다.
최 감독이 재일 한국인이기 때문에 일본 내 재일교포들의 애환이나 그들의 법적 지위와 관련된 사회적 문제를 풀어내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들의 이기적인 시각이다. 그는 일본 국적을 지닌 한국인이다. 일본에서 태어났고, 평생 일본어를 쓰면서 살았다.
-‘피와 뼈’는 언제부터 준비했나?
“6년 동안 기획한 작품이다. 양석일의 원작이 98년 출간되어 수십만 부가 팔렸다. 나는 이미 10년 전에 양석일 작가의 ‘택시협주곡’을 영화화한 적이 있기 때문에(‘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 이 작품을 읽으면서 꼭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는 나에게 커다란 존재감을 갖게 하는 영화다. 괴물 같은 삶을 살다 간 남자의 일생을 그리는 것은 나의 희망이기도 했다. 영화 주인공 김준평의 실제 모델은 원작자인 양석일씨의 아버지다. 그런 인물을 대상으로 해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하나의 모험이기도 했다. 잘 생각해보면, 나도 ‘스타워즈 에피소드1’을 찍은 루카스 같은 일면을 가진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일본 내에서도 이미 작품에 대한 평가를 받았고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 유럽 등 각국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올해는 ‘피와 뼈’로 인해 스릴 넘치는 한 해가 될 것 같다.”
-김준평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표현하려고 했나?
“그는 고독한 사람으로, 자신의 고독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면서 살아간다. 그는 인간의 강함과 약함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이런 인물은 영화로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다. 반경 200m 내외의 오사카 조선인 마을이 영화의 무대지만, 큰 세계를 지향하는 감독의 의도가 포함되어 있다. 그것이 영화를 만드는 창조자의 자세다. 어떤 특정한 시기의 시대상을 그린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시대에 등 돌리고 살아갔던 인물을 그리려고 했다. 그 인물 주변에 실존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영화 속의 메시지다. 특별히 사회적인 의미를 담은 영화는 아니다.”
“이데올로기와 역사보다 인간이 더 중요”
-사회적인 의미를 담지 않았다고 했지만, ‘피와 뼈’에 묘사된 재일 한국인 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사회적 의미를 띨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왜 이 영화를 만드는가’라는 의미를 중요시한다.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한다는 것은 관객의 반응까지 포함한다는 것이다. 영화에는 다양한 주장이 있다. 이데올로기적 주장을 하는 영화도 있고, 사랑이나 증오, 웃음과 슬픔 등을 담는 영화도 있다. ‘피와 뼈’는 재일 한국인을 주제로 한 영화이기 때문에 그것 자체가 사회적인 존재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의미보다는 사랑이나 증오, 가령 인간이 삶을 살아가면서 어떤 종류의 압력을 받았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대부’는 이탈리아인의 미국 이민사를 그린 영화이기도 하지만, 나는 영화 속의 인물이나 스토리 중심으로 영화를 감상한다. 이렇듯 영화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피와 뼈’는 1000명 넘는 스태프들이 참여하여 시대상을 세밀하게 재현했다.
“세트는 각 장면의 리얼리티를 보장하는 데 큰 구실을 한다. 오픈 세트는 영화 속의 시대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수정해갔다. 주민들의 생활이나 사상이 변해갈 때마다 세트도 조금씩 변한다. 조감독, 미술, 의상 등 현장 스태프들의 연구 결과다. 그런 작업들이 배우에게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엔드 타이틀에는 726명의 스태프 이름이 올라가 있는데 사실은 1000명이 넘는다. ‘피와 뼈’를 제작하면서 우리는 영화를 만드는 재미를 공유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영화인으로서, 이 영화를 만드는 작업에 참여한 것을 긍지로 생각한다.”
-제목은 무엇을 뜻하는가?
“제목은 단순하고 명확하다. 인간관계, 그중에서도 아버지와 딸, 아내, 그들은 피와 뼈로 연결되어 있다. 표현이 단순하기 때문에 좀더 알기 쉬운 부분이 있다. 뼈 안에는, 피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런 철학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원작자인 양석일씨가 다음에 자신의 소설을 영화화할 때 절대 원작 제목을 바꾸지 말라고 했다.”
-원래 시나리오가 7시간 분량으로 집필된 것으로 알고 있다. 영화는 2시간 20분으로 줄었는데, 특히 50년대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들었다. 7시간 분량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있나?
“시나리오를 축소하면서 김준평의 젊은 시절 이야기가 다 생략되었다. 그 역동적 시기에 그의 독특한 인격이 형성돼가는 과정이 들어 있는데, 그것이 필요 없다고 판단해서가 아니라 관객들의 상상력에 맡기려고 생략했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7시간 분량의 대작으로 다시 만들고 싶은 생각도 있다.”
‘피와 뼈’에서 특히 돋보이는 사람은 기타노 다케시다. 자신이 감독한 ‘하나비’로 베니스 국제영화제 대상을 수상하기도 한 그는 14년 만에 처음으로 다른 감독의 작품에서 주인공을 맡았다. 물론 최 감독과의 오랜 친분이 바탕이 된 것이다. 최 감독은 “기타노 다케시가 김준평 역을 수락하지 않았다면 이 영화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만큼 기타노 다케시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기타노 다케시의 부인이 ‘피와 뼈’를 보고 “당신 그 자체”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최 감독은 “기타노 다케시의 가슴속에 있는, 아무에게도 설명하지 않고 설명될 수도 없는 그 암흑이 김준평과 만난다고 생각해서 제의했다”고 말한다.
‘피와 뼈’에 등장하는 재일 한국인들은 모두 제주도 출신이다. 최 감독은 제주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제주도 4·3사건(1948)을 영화화하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하기도 했다. 제주도라는 섬 자체가 중심에 진입할 수 없는 지정학적 조건을 갖고 있으며, 사회의 주변부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이데올로기적 이분법으로 역사와 인간을 바라보는 건 영화적으로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하다.” 그의 이 발언은 ‘피와 뼈’를 재일 한국인 문제로만 바라보는 협소한 시각을 벗어던지게 한다. 최 감독은 인간 자체에 관심이 있다. 사실 중요한 것은 이데올로기나 역사보다 인간 자체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