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컬렉션에서 모델이 니트와 직물을 혼합한 의상을 선보이고 있다. 인간적인 온기와 아방가르드한 느낌이 섞여 있다.
의상을 공부하겠다며 들어갔던 나의 대학 초창기 시절, 전공 수업 시간이었다. 마치 모든 걸 다 알고 계실 듯한 교수님이 “여러분! 21세기가 되면 지금 여러분이 입고 있는 의복의 형태는 완전히 달라질 겁니다. 과학의 발달로 기능성이 중시되고, 소재가 개발돼 재봉선 없는 옷이 나오고, 특히 니트류의 혁신은 놀라울 겁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마치 모든 사람이 지금의 옷은 다 벗어버리고 니트만 입을 것처럼 들렸다. 마냥 순진했던 우리는 정말 2000년이 지나면 뭔가 획기적인 옷, SF영화에나 나옴직한 옷을 입고 밥 대신 알약을 먹을 줄 알았다. 하지만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던 2001년이 지나 2005년이 왔어도 지금 우리가 입는 옷은 내가 대학시절 입던 옷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유행은 ‘레트로(retro, 복고풍)’라는 명목 아래 돌아오고 있고, 우리는 니트보다 아직도 직물로 만든 옷을 입고 다니며 영화에서나 봄직한 의상은 여전히 영화에서나 보고 있다.
‘짠다’는 뜻의 니트(knit)는 색슨(saxon)어의 니탄(nyttan)에서 유래되었는데 7세기경 고대 이집트 시대의 유물에서 편물 조직의 양말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볼 때 상당히 오래 전부터 착용한 듯싶다. 오늘날과 비슷한 형태의 니트웨어는 14세기경 북유럽의 항구 지역에서 어부들이 사용하던 어망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북해의 차갑고 습한 바람을 막기 위해 어부들의 작업복용으로 실로 스웨터를 짠 데서 기인한 것이다. 특히 스코틀랜드 해안 지역 여인들은 남편의 니트웨어에 로프나 닻, 다이아몬드 문양 등을 짜넣어 무늬만 보아도 선원들의 고향과 신원을 알 수 있게 했다. 때로 배가 침몰하여 익사한 시신이 해안에 떠내려오면 무늬만으로 누구인지 확인한 슬픈 이야기도 있다. 그 이후 1589년 영국에서 윌리엄 리가 편물 기계를 발명한 뒤 프랑스로 건너가 기계식 편물 공장을 세우며 니트웨어는 대중화되었고, ‘스웨터’라는 말은 1880년경 ‘땀을 빼게 하는 것’이라는 뜻의 스웨터(sweater)라고 불렀던 것이 니트웨어의 대명사 격으로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
올겨울을 겨냥한 미소니(왼쪽)와 이세이미야케의 니트 옷.
특히 겉옷으로 입는 니트엔 후드나 모피 트리밍 등을 달아 더욱 활동적이며 멋스러운 느낌을 주기도 하고, 인조 보석 등 장식이 있는 크고 화려한 브로치를 매치하거나 벨트를 매 복고풍을 멋지게 따라잡을 수 있다. 직접 손으로 짠 듯한 판초를 코트 대신 입거나 굵은 실로 두껍게 짠 니트 머플러를 길게 늘어뜨리면 유행뿐 아니라 정감 있는 기분도 느낄 수 있다. 니트가 이처럼 유행하는 까닭은 사람들의 마음이 그만큼 외롭기 때문일 것이다.
이인성/ 이화여대 의류직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