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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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기술 유출 막아야”VS “잠재적 범죄자 취급”

이광재 의원 기술유출방지법안 논란 … “대기업·연구기관 이해만 대변, 의욕 떨어뜨릴 것”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4-12-16 11: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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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심기술 유출 막아야”VS “잠재적 범죄자 취급”
    “산자위 386은 빨갱이가 아니더라.”

    ‘골수 보수’로 불리는 한나라당 K 의원은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소속 이광재 의원(우리당)의 의정 활동을 이렇게 평가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 의원은 이념 논쟁 와중에 실용주의적 접근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이 의원이 주도하는 의정연구센터는 삼성경제연구소와 함께 경제 살리기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전경련 회장단과 간담회를 여는 등 경제 이슈에 천착하고 있다. 386세대 의원들을 주사파로 몰아붙이던 K 의원이 낙인을 지운 것은 이 의원의 이런 활동 때문이다.

    “기관 밖으로 유출 때 처벌 산업보안법”

    최근 이 의원은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하 기술유출방지법)을 대표 발의했다. 예의 ‘경제 올인’ 행보의 일환. 이 법안은 산업스파이에 의한 기술 해외 유출 사건이 거푸 불거지면서 국부 유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가운데 국가 핵심기술의 해외 유출을 통제하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이 의원은 “산업기술의 불법 해외 유출이 심각한 수준에 있으나 기존 법률은 기술 유출 방지 및 근절에 큰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면서 “법률안은 국가 핵심기술의 해외 유출을 규제해 연구자들을 보호 지원하고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법률 제안 이유를 설명했다.

    그런데 이 의원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역풍을 맞고 있다. 과학기술인들이 법률안을 ‘과학기술인을 무시한 친(親)기업적 산업기술 분야의 국가보안법’이라고 규정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의원은 한국을 먹여살릴 기술을 보호함으로써 국부를 늘릴 수 있다는 ‘국익(國益)’에 주목한 반면, 과학기술인들은 “법률안이 연구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하고 있어 인권 침해 소지가 크고, 기업과 연구기관의 이해만을 대변하고 있어 결과적으로 과학기술인들의 연구 의욕을 떨어뜨려 국가 경쟁력을 좀먹게 할 것”이라고 반박한다.



    법안의 골자는 산업자원부·국가정보원 등 정부와 민간위원들이 참여하는 가칭 ‘기술보호위원회’를 두어 정부출연연구소·기업연구소·대학 등의 기술을 보안 관리하고 통제한다는 것이다. 기존 법안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대학과 정부출연연구소까지 관리 대상에 넣은 것으로 핵심기술을 부당하게 유출하면 최고 7년 이하의 징역형과 재산상 이득액의 최대 10배에 이르는 벌금이 가해진다. 또 산업보안관리사를 둬 대학·정부출연연구소·기업연구소 등의 핵심기술과 개발인력을 관리할 수 있게 했으며 미수범, 즉 예비 음모의 경우도 처벌할 수 있게 돼 있다.

    현재 산업스파이를 처벌하는 ‘부정경쟁 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법’(이하 부정경쟁방지법)에선 제3자에게 유출했을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었으나, 기술유출방지법은 통제를 더욱 강화해 기술을 기관 밖으로 유출한 것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다. 국회와 정부 여당은 기술유출방지법을 바탕으로 조항을 일부 손질해 국회 본회의를 통과시킬 계획이다.

    과학기술인들은 법안의 문제점으로 크게 5가지를 지목한다. △부정경쟁방지법의 옥상옥 △과학기술인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인권 침해적 요소 △이직을 통한 직업 선택의 자유 침해 가능성 △첨단·핵심기술 기준의 모호성 △기술 거래와 유출 구분의 모호성 등이다. 항공우주연구원의 한 박사급 연구원은 “기술유출방지법의 포괄주의적 규제는 연구개발 의지를 크게 위축시킬 것”이라며 “사실상 모든 연구기관들이 국가의 통제 대상이 되며 연구원들의 직업 선택 자유(이직)를 제한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과학기술인들은 부정경쟁방지법과 형법 제316조 비밀누설죄 등으로 산업스파이를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국가보안법을 연상케 하는 ‘산업보안법’(기술유출방지법)을 따로 만들어 과학계 전체를 국가 통제 아래에 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 대한변리사협회 고영회 이사(변리사)는 “기존 법안을 일부 보완하는 것만으로도 산업스파이에 의한 기술 유출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 인센티브조차 제대로 제공되지 않는 상황에서 연구자의 목을 죄어서는 안 된다. 텅 빈 곳간에 자물통을 채울 때가 아니라 곳간을 풍성하게 할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빈 곳간 자물통보다 곳간 채울 생각을 해야

    기술유출방지법의 보호 대상은 ‘핵심·첨단기술’로 한정돼 있다. 과학기술인들의 지적을 받아들여 이처럼 제한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핵심·첨단기술’의 범위 역시 모호하다. 기술을 해외 기업에 이전하거나 거래하려고 해도 핵심기술로 낙인찍히면 정부의 승인을 얻어야 하고, 해외공장 이전 합작투자 등 기술 이전도 당연히 신고 대상이 된다. 정부출연연구소·기업연구소·대학 등이 대부분 기술유출방지법의 통제 아래에 놓일 가능성이 높은 것.

    기술유출방지법이 유출 범위를 ‘보호대상 기관 외부로 유출하는 것’으로 규정한 부분은 특히 과학기술인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예비-음모 조항이 악용될 경우 실제로 산업스파이 활동을 하지 않은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화학연구원의 한 선임연구원은 “내란죄도 아닌데 웬 예비-음모 조항인지 모르겠다. 법대로라면 거의 모든 연구원들이 처벌 대상이다. 연구 프로젝트를 집 컴퓨터에 보관한 것만으로도 미수범, 즉 기술 유출 예비 음모가 아니냐”고 꼬집었다.

    과학기술인들은 또 법률안이 대기업의 이익에 지나치게 편향돼 있다고 주장한다. 국가 간의 기술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흐름에 역행하는 조처라는 것이다. 선진 기술의 도입뿐 아니라 기술의 ‘정당한’ 수출도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법률안이 대기업 연구소 출신 연구자의 벤처 창업을 가로막고, 중소기업의 고급 인력난을 가중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과학기술부의 한 관계자도 “외국으로의 기술 확산 메커니즘은 과학기술인들의 연구 의욕을 높이는 데 기여해왔다”면서 “연구 인력의 벤처 창업과 자유로운 이직이 일부라도 제한받으면 기술 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광재 의원 측은 “과학기술계의 의견을 받아들여 법 조항의 일부를 손질하고 있다”면서 “일부 반발이 있지만 국가 핵심기술의 유출을 막아야 한다는 당위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과학기술인들이 법 내용을 오해하고 있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선 법 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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