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0일 대전 충남지역 유림 600여명이 대전역 광장에 모여 ‘호주제 폐지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호적과 유사한 제도는 국가체계가 성립된 고조선 때부터 있었다고 한다. 신라시대에는 이를 ‘연적(烟籍)’이라 불렀고, 최근 헌법재판소 판결로 새롭게 조명받은 조선의 기본법전인 ‘경국대전’에도 ‘호적’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호주제 존치론자들은 이를 근거로 호적제도, 그리고 그에 기초한 호주제도가 관습헌법적 지위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신라시대의 ‘연적’이나 조선시대의 ‘호적’이 오늘날의 ‘호적’과 같았던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에는 동거하는 노비까지도 호적에 올랐다. 당시 호적은 지금과 같이 남자 가족에게만 승계되는 ‘호주’와 그에 따른 ‘가족’이라는 개념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조세나 요역의 부과에 필요한 호구조사 단위로서의 의미가 컸다.
현재와 같은 호주를 중심으로 한 호적제도는 일제시대 때 만들어졌다. 일제는 갑오경장 때 만들어진 호구조사 규칙을 폐지하고, 민적법을 제정해 시행한다. 동거 여부를 중심으로 호적을 작성하던 것을, 호주를 중심으로 일정한 혈연관계에 있는 자만을 가족으로 특정하기 시작한 것. 과거 부모자식, 형제자매, 조손(祖孫) 관계 등과 같은 관계적 개념의 가족이 호주의 부모나 호주의 자녀와 같이 호주를 중심으로 한 가족으로 바뀐 것이다.
가족법 학자들은 이러한 가족제도의 기원을 사무라이 중심의 일본 가족제도에서 찾는다. 종법(宗法), 즉 ‘적장자(큰마누라가 낳은 큰아들) 위주의 가계 계승과 그를 바탕으로 한 제사의례’를 강조하는 성리학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 제도의 국내 정착이 가능했던 셈이다. 이런 점에서 현행의 호적제도가 우리의 전통과 완전히 별개라고는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일본식 호적제도가 도입된 지도 어언 100여년이 흘렀기에, 그것만으로도 관습이 되었다고 하기에는 충분할 수 있다. 따라서 현행 호적제도와 같은 ‘관습’이 있었는지 여부를 논하는 것은 미궁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성매매 제도’를 헌법이 보장하는 제도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모든 ‘관습’이 ‘관습헌법’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이를 “관행이 헌법관습으로서 국민들의 승인 내지 확신, 또는 폭넓은 컨센서스를 얻어 국민이 강제력을 가진다고 믿고 있어야 한다”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호주제는 국민적 공감대를 획득한 강제력을 지닌 ‘규범’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호주제 존치론자들은 헌법 제9조가 전통문화의 계승ㆍ발전을 천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호주제의 규범적 근거로 내세운다. 그러나 호주제가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라는 것에 대해서는 앞서 말한 것처럼 논란의 여지가 많다. ‘관행’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전통문화가 될 수 있다면, 성매매 제도 역시 전통문화가 되지 못하란 법 없다. ‘관행’이 ‘전통’으로 승격되기 위해서는 ‘오늘날에도 유지ㆍ발전되어야 한다’는 주관적 가치평가가 더해져야 한다.
그러나 남성만이 호주가 될 수 있는 호주제는 남녀평등을 천명하고 있는 헌법 제11조에 비춰볼 때 전통문화로 보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게다가 일제시대 때 만들어졌던 호주제도 중 상당 부분이 이미 폐지됐고, 이제는 국회의원 과반수가 호주제를 거부한 상황에서는 호주제가 ‘국민들의 폭넓은 컨센서스를 얻고 있다’고 말하기도 어렵게 됐다.
김지홍 ㅣ 변호사, 법무법인 지평
사실 호주제는 이미 2001년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이 있었던 사안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헌법재판소는 3년 넘게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고, 결국 국회에서 먼저 손을 쓴 셈이 됐다. 호주제 존치론자들이 3년 넘게 호주제를 심리하고 있는 헌법재판소에 “호주제가 ‘관습헌법’임을 확인해달라”고 반격에 나선 모양새가 됐다. ‘과거’와 ‘현재’, ‘관습’과 ‘규범’이라는 인간사의 본질적 갈등관계의 대표적 상징물인 호주제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어떻게 판단할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