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출시한 고기능 카메라폰.
전체 휴대전화 시장에서 카메라폰의 시장 점유율이 70%를 돌파했다. 날로 성능이 좋아지는 카메라폰은 이제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기업의 극비문서를 외부로 빼돌리는 첩보 도구로 활약하기에 이르렀다. 낮은 화소대의 디지털 카메라(이하 디카)에 필적할 메가픽셀 카메라폰의 등장은 침체 상태에 있는 휴대전화 시장의 돌파구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메가픽셀 카메라폰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예상외로 냉담하다. 카메라폰을 넘어 캠코더폰으로 진화하는 휴대전화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국내에 처음 카메라폰이 등장한 2001년. 그리고 주변 사람 대부분이 카메라폰을 들고 다닌 2003년 초반까지도 K씨(30)의 휴대전화에 장착된 카메라는 쓸데없이 비싼 장식품에 불과했다. 몇몇 휴대전화 마니아, 얼리어답터로 불리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 혹은 무이자 할부나 신용카드 믿고 구입한 사람들이나 갖고 다니는 것쯤으로 여기며, 자신과는 무관한 물건이라고 무시했다.
컬러 액정에 40화음, 이 정도면 신형 휴대전화를 갖고 다니는 것이라고 내심 자부했던 K씨는 최근 휴대전화 때문에 짜증나는 일이 있었다. 구입한 지 1년 정도 된 휴대전화의 액정이 이유 없이 고장나 전화를 걸고 받는 데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수리비 10여만원을 생각하니 이참에 아예 새것으로 바꾸는 게 낫겠다 싶어서 대리점을 찾았다. 그런데 1년 새 모든 신형 휴대전화가 카메라폰으로 교체된 것이 아닌가. 그리고 휴대전화 카메라 성능도 몰라보게 좋아졌다. 100만 화소가 어떻고, 캠코더 기능이 어떻고 하는 설명을 듣다보니 어차피 살 바에 최고 사양의 제품이 낫겠다는 마음도 슬며시 든다. 단말기 가격은 가장 싼 것이 30만원대였다. K씨는 결국 거금을 투자해 100만 화소대 카메라를 장착한 최신형 단말기를 샀다.
업체마다 특이 제품 경쟁하듯 출시
100만 화소대 카메라폰의 성능은 그야말로 막강했다. 앨범에 넣을 사진 크기로 인화하는 데 전혀 무리가 없으니 굳이 디카를 따로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 카메라폰을 자랑하던 친구들을 한 방에 기죽일 무기를 장만한 셈이라 내심 뿌듯하기도 했다. 하지만 과용 뒤에는 언제나 찜찜함이 남는 법. 할부로 구입한 터라 평소 무시해온 ‘할부 무서운 줄 모르고 쓸데없는 곳에 돈 쓰는 사람들’의 대열에 자신도 합류하게 된 것이 영 못마땅했다.
카메라폰의 폭발적 인기가 제조업체간 경쟁을 더욱 부채질해 카메라 성능의 고도화, 업체 간의 아이디어 전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30만 화소대 이미지 센서를 장착한 카메라가 주류였던 것이 급기야는 100만 화소대로 높아졌고 2004년 상반기에는 200만~300만 화소대 모바일 카메라가 등장할 전망이다. 바야흐로 메가픽셀 카메라폰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카메라폰은 불황의 늪에 빠진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에겐 거의 유일한 기대주다. 10, 20대 사용자들 중 새로 휴대전화를 구매하면서 카메라 기능을 찾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제조업체들은 휴대전화 시장의 중요한 화두인 ‘카메라’에 온 힘을 집중하면서 두 가지 방향으로 카메라폰 시장 패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요가 강의 등을 들을 수 있는 팬텍의 여성 전용 카메라폰
카메라 위치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삼성전자의 SCH-E370은 회전형 카메라를 폴더 끝에 장착했다. 이 위치는 특히 얼굴을 예쁘게 찍는 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삼성전자는 이 모델을 ‘얼짱폰’이라는 컨셉트로 알리고 있다. 렌즈가 촬영하는 사람의 시선 아래쪽에 있어 뺨과 턱 부분이 크게 나왔던 기존 카메라폰과 달리, 얼짱폰은 렌즈가 시선 위 이마 부분에 모아져 얼굴을 예쁘게 촬영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윤도현이 모델로 등장하는 팬택앤큐리텔의 최근 TV광고가 설명하는 PG-K4500은 일반적으로 힌지(폴더와 키패드를 연결하는 부분) 끝에 카메라를 장착한 기존 카메라폰들과 달리 힌지 중간에 카메라를 탑재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가운데만 돌린다’는 것이 주요 컨셉트인 이 모델의 애칭은 ‘롤링폰’이다.
카메라폰의 컨셉트, 디자인 경쟁과 함께 화소수 경쟁은 더욱 가열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팬택앤큐리텔은 이미 130만 화소대의 카메라폰을 출시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이효리, 이서진 커플을 앞세워 130만 화소대 카메라폰 TV광고를 시작했으며 팬택앤큐리텔도 가수 보아와 전속 광고모델 계약을 체결해 후속작을 준비하고 있다. 34만 화소대 캔유폰으로 톡톡히 재미를 봤던 LG전자도 134만 화소대 캔유폰을 출시해 카메라폰 선호 고객층 공략에 나섰다.
그러나 제조업체들이 호언장담했던 메가픽셀 카메라폰 시대는 아직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출시 시기를 서둘러 내놓은 제품들에서 결함이 발견돼 소비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으며 높은 가격대로 인해 매출이 크게 늘지 않고 있다. 판매 부진에 대해 제조업체들은 30만 화소대 카메라폰 시장에서 메가픽셀 시장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이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지나치게 비싼 단말기 가격이 구매를 망설이게 한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고가 카메라폰에 대해 다소 냉담한 소비자들의 반응과 오랜 경기침체로 인한 소비 위축 등 시장 분위기를 파악한 이동통신업계는 저가 휴대전화로 침체된 내수시장을 돌파할 계획이다. 특히 번호이동성 제도 도입을 계기로 단말기 교체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이동통신 사업자들과 제조업체들이 함께 20만원대 저가 카메라폰 출시 계획을 갖고 있다. 따라서 휴대전화를 바꾸려는 사람들은 조금 기다리는 편이 나을 듯하다.
또한 기대를 모으며 출시된 메가픽셀 카메라폰에서 여러 결함이 발견됐다는 것은 제조업체들이 충분한 사전 점검 없이 지나치게 최신형 모델 출시 시기 경쟁을 벌인 결과로 분석된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브랜드만 숭배하지 않는다. 소비자들의 수준이 점점 높아지는 상황에서 더 이상 광고를 앞세운 제품 이미지 홍보나 무조건 최고 사양임을 강조하는 마케팅 전략은 통하기 어렵다는 점을 입증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