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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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과 언니 야곱 핏줄 잇기 싸움

자기 몸종까지 주며 치마폭 시기와 경쟁 … ‘無錢일처 有錢다처’ 아직도 불변

  • 조성기/ 소설가

    입력2003-12-31 15: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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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과 언니 야곱 핏줄 잇기 싸움

    아브라함의 부인 사라가 이삭을 낳음으로써 이삭과 이스마엘 간의 갈등으로 인해 하갈과 이스마엘은 집에서 쫓겨난다. 그것이 이스라엘과 아랍 간 쟁투의 시작인 셈이다.

    카를 융은 자서전을 통해 완전한 결혼의 형태를 찾아 아프리카 지방을 여행하며 결혼의 유형들을 연구한 기록을 남겼다. 융은 우간다 지역 에르곤족 가운데서 아내 셋을 둔 남편이 자신의 거처를 아내들 집 중앙에 두고 있는 형태를 보고는 완전의 원형인 사위일체(四位一體) 결혼 유형을 발견한다. 무엇보다 경작지를 소유하고 스스로 농사를 지으며 그런 결혼생활에 만족하는 아내들의 모습에서 깊은 인상을 받는다.

    그들의 관념으로는 한 남자가 여자 셋을 데리고 살아야 완전한 결혼으로 여긴 모양이다. 여자 입장에서 볼 때는 세 여자가 한 남자를 공동으로 소유하는 셈이다. 그 아내들 사이에는 독점욕이나 질투 같은 것도 없다. 일부일처제 때보다 아내는 남편을 덜 의식하면서 살아갈 수 있어 여유롭고 편하다. 이 경우에는 축첩의 풍습과 성격이 다르므로 어쩌면 여자들에게 더 유리한 결혼 형태인지도 모른다.

    후궁만 1000여명 거느린 ‘솔로몬의 사랑’

    이슬람교의 모하메드도 남자는 아내를 네 명까지 둘 수 있다는 율법을 공포했지만, 그것은 잦은 전쟁으로 인해 아이들과 여자들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하메드는 왜 하필 아내를 네 명까지 둘 수 있다고 한 것인가. 복지정책상 ‘넷’이라는 수가 나왔을 수도 있지만 성경에서 그 원형을 찾았을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 싶다.



    흔히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일컫는다. 그만큼 아브라함, 이삭, 야곱 세 사람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최고의 조상들인 셈이다. 그런데 이삭만 빼고 나머지 두 조상은 일부일처제를 지키지 못했다.

    아브라함은 원래 사라만을 아내로 삼으려고 했으나 사라가 자식을 낳지 못하자 하갈이라는 몸종을 첩으로 삼아 이스마엘을 낳는다. 그러나 그후 사라도 이삭을 낳음으로써 이삭과 이스마엘 간에 생긴 갈등은 끝내 하갈과 이스마엘을 집에서 쫓겨나게 만든다. 그것이 이스라엘과 아랍 간 쟁투의 시작인 셈이다. 그러니까 아브라함도 말년에는 다시 사라 한 사람만을 아내로 삼고 살게 되었다.

    야곱도 원래는 외삼촌의 둘째 딸 라헬만을 아내로 삼고 싶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7년간 일한 대가로 라헬을 요구했던 것이다. 그런데 야곱을 놓치기 싫은 라반은 첫째 딸 레아를 라헬처럼 분장시켜 야곱과 혼인 첫날밤을 보내게 했다. 아침에 일어나 그 사실을 알게 된 야곱이 라반에게 항의하자 라반은 동생이 언니보다 먼저 혼인하는 법은 없는 것이라며 라헬도 줄 테니 7년간 더 봉사해달라고 했다. 야곱은 라헬을 얻기 위해 할 수 없이 7년 동안 더 봉사한다. 그러니까 레아는 후불로 받은 셈이고 라헬은 선불로 받은 셈이다.

    그런데 야곱을 두고 동생과 언니 사이에 아들 낳기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진다. 라헬은 자신의 몸종인 빌하를 야곱에게 첩으로 주어 아들들을 낳게 하고, 레아 역시 자기 몸종 실바를 첩으로 주어 아들들을 낳게 한다. 그 네 명의 여자들에게서 난 아들들이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레아), 단, 납달리(빌하), 갓, 아셀(실바), 잇사갈, 스불론(레아), 요셉, 베냐민(라헬)이다.

    여기서 민족공동체의 기초인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형성되었으니 이스라엘인의 핏 속에는 여호와 신앙과 아울러 태생적으로 시기와 질투, 경쟁심이 유달리 짙게 깔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이 좋은 방향으로 작용하면 창조적인 업적을 이루고, 나쁜 방향으로 작용하면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다.

    그런데 야곱 기사가 실린 ‘창세기’에서는 남자가 여러 아내를 두는 것에 대해 어떠한 가치판단도 내리지 않고 있다. 너무나 당연한 듯이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아들들을 통해 자손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명제에 짓눌려 다른 가치판단들은 고개를 들지 못한다.

    동생과 언니 야곱 핏줄 잇기 싸움

    야곱을 두고 언니 레아와 동생 라헬 사이에 아들 낳기 경쟁이 벌어진다(왼쪽).성왕으로 추앙받는 다윗도 여러 아내와 첩들을 두었고 그의 아들 솔로몬도 1000여명의 후궁을 거느렸다.

    성경에서는 원래 아담과 하와의 결합이 완전한 결혼의 유형으로 제시되어 있다. 신약에서 예수가 제시한 이상적인 결혼 형태도 바로 에덴의 일부일처제다. 성경에 일부다처제가 처음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노아의 자손 라멕의 결혼에서부터다. 라멕이 아내를 둘 두었는데 한 사람은 야발이요, 또 한 사람은 씰라였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성왕(聖王)으로 추앙받는 다윗도 여러 아내를 두었고, 그 아들 솔로몬도 1000여명의 후궁을 거느렸다. 솔로몬은 그냥 거느린 정도가 아니라 여자들에게 푹 빠져 ‘아가서’와 같은 사랑의 시를 남겨놓기도 했다. ‘열왕기상’에는 이런 기록도 있다.

    육체적 간통보다 더 무서운 정신·영적 간통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중략) 솔로몬이 저희를 연애하였더라.’

    솔로몬이 사랑하고 연애한 여인들은 지금의 중동 지역 여인들로 그들의 매혹적인 미모는 보기만 해도 유혹당할 정도다. 솔로몬은 거룩한 예루살렘 성전까지 짓고도 결국 여자 문제로 무너지고 말았으니 탁월한 종교적인 업적을 세운 솔로몬도 아름다운 여인의 유혹 앞에서는 약해지고 마는가 보다.

    많은 여성 신도들과 함께하는 목회자들은 일부다처의 은밀한 욕망을 그 여성 신도들을 통해 대리만족하고 있지 않은지 살펴볼 일이다. 육체적인 간통보다 정신적, 영적 간통이 사실은 더 끈질기고 무섭다고 하지 않은가.

    이스라엘에서 일부일처제가 언제부터 정착되었는지는 잘 알 수 없으나 전 세계적으로 볼 때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일이고, 지금도 특정 종교나 지역에서는 일부다처제를 허용하고 있다.

    그리고 일부일처제를 법으로 정한 나라에서도 재력 있는 자들은 그들의 부를 과시하려는 듯이 여러 여자들을 거느리며 살고 있고, 그들에 대한 윤리적 판단은 일반 서민의 경우와 다르게 적용된다. 결국 법이나 도덕이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재력이 판단의 기준이 되는 셈인데, 그래서 재력도 별로 없는 자가 여러 여자들을 거느리려고 하는 것은 타락한 행위로 지탄의 대상이 된다. 이래저래 돈 없는 서민들만 억울하다.

    중국에서도 오랜 세월 동안 축첩을 통한 일부다처제가 유지돼왔으며 공산혁명이 있고 나서야 비로소 일부일처제가 정립되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명나라의 가정규율을 적어놓은 어느 책에 충격적인 신첩신고식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반 훌릭의 ‘중국성풍속사’(까치 펴냄)에서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남자는 (신첩을 얻었을 때) 자기의 욕구를 조절하고 잠시 신첩을 가까이 하지 말고 다른 처첩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가 자기의 다른 여자와 교접할 때마다 신참자를 상아 침대 곁에 얌전하게 서 있게 해야 한다. 이렇게 4, 5일이 지난 뒤 반드시 첫번째 부인과 다른 첩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처음으로 그 신참자와 관계를 맺는다. 이것이 한집안 여성들간에 화목과 행복을 이루기 위한 기본원리다.’

    이런 신첩신고식을 소설이나 영화로 형상화한다면 그야말로 에로티시즘의 극치를 이루는 장면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한집안 여성들간에 화목과 행복을 이루기 위한 기본원리’, 다시 말해 성의 공정한 분배를 위한 엄숙한 의식으로 인식할 때는 섣불리 외설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아브라함이나 야곱이 이런 신첩신고식을 시행했다면 아내나 첩들 간에 그런 심한 시기나 질투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는 중국인들이 유대인들보다 지혜롭다고 할 수 있다. 아프리카 우간다의 에르곤족은 이런 신첩신고식을 하지 않는데도 아내들끼리 불평 없이 서로 도와가며 살았다니 그들은 생래적인 지혜를 가지고 있었던가 보다. 인류는 이제 막 일부일처제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것인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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