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주부터 성서 속에 드러난 인간의 성을 해석하는 조성기 목사의 ‘성서 속의 성’이 연재됩니다.<편집자>
창세기 1장은 혼돈, 공허, 흑암의 카오스 상태가 어떻게 질서, 충만, 광명의 코스모스 세계로 변화되는지를 노래한다. 특히 공허가 충만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성(性)이 큰 역할을 한다.
하나님은 식물의 성을 먼저 창조했다. 셋째 날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 있는 열매를 맺는 과목을 내라’고 했다. ‘씨’라는 말에서 이미 암수를 구별했음을 알 수 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은 물고기의 성을 창조했다. 다섯째 날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고 했다. 여기서 생물은 물고기뿐만 아니라 물에서 움직이는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의미한다. 그리고 같은 날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의 성도 창조했다.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고 했는데 새들이 번성하려면 암수가 짝을 지어야 한다.
여섯째 날 하나님은 짐승들의 성을 창조했다.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했다. 같은 날 마지막으로 인간의 성을 창조했다. 하나님이 인간의 성을 창조할 때는 다른 경우와는 달리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하여금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면서 서로 의논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기 위해서는 남자와 여자의 성적 결합이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내 뼈 내 살과의 만남 가슴 벅찬 일
무엇보다 ‘복을 주시며’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 인간에게 성은 원래 축복으로서 주어진 것이다.
창세기 2장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는 좀더 구체적인 과정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는지라’고 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을 에덴동산으로 데리고 와 그곳을 다스리게 했다. 그런데 사람이 홀로 거처하는 것이 좋지 않다면서 그를 도와줄 배필을 지어주겠다고 했다. 하나님이 남자를 깊이 잠들게 하여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해 여자를 만들었다. 하나님이 그 여자를 남자에게 데리고 오자 남자가 여자를 보고 외쳤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남자에게서 취했다 하여 여자라 칭했다는 구절이 바로 뒤에 나온다. 남자는 히브리어로 ‘이쓰’고 여자는 ‘이싸’다. 글자로 봐도 남자와 여자는 갈빗대 하나와 같은 한 획의 차이밖에 없다.
그 남자의 이름은 아담이고 여자의 이름은 하와(이브)다. 아담은 흙이라는 뜻인 반면, 하와는 생명이라는 뜻이다. 흙은 인간이 창조된 근원인 동시에 인간이 돌아갈 처소, 즉 죽음을 암시한다. 다시 말해 남자는 죽음이고 여자는 생명이다. 남자는 흙으로 돌아가지만 여자를 통해 생명을 이어나간다. 여자는 남자의 부활이요 영생이다.
‘그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여자와 한 몸을 이룰지로다.’
성경에 나오는 성교에 관한 최초의 표현이다. 남녀가 합쳐지는 과정을 글로 묘사한다든지 그림으로 자세히 그린다든지 하면 외설이라는 판정을 받기 십상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는 구절이야말로 성적 결합에 관한 가장 강렬한 표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과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한 몸을 이루고 싶은 욕망에 관해 그동안 수많은 논의와 연구와 분석들이 진행돼왔다.
태초에 에덴동산에서 뱀이 이브를 유혹해 선악과를 따먹게 하는 모습(라파엘로가 그린 프레스코화 ‘아담과 이브’).
성심리학에서도 인간은 원래 양성성을 지니고 있는데 끊임없이 한 성만을 강요당하는 억압에서 벗어나 다른 성과 결합함으로써 원래 가지고 있던 양성성을 회복하고자 한다고 했다. 음양학적으로 보면 음과 양이 결합된 태극의 상태를 지향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하나님을 뜻하는 ‘엘로힘’이라는 히브리어 단어가 양성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엘로힘은 여성 단수인 ‘엘로’와 남성 복수 어미인 ‘임’이 합성된 단어다.
카발리스트라고 불리는 유대 신비주의자들이 남긴 문서를 보면 태초에 ‘엔 소프’라는 무한한 힘이 있었고 그 힘에서 ‘아담 카드몬’이라는 인간 원형이 나왔다고 한다. 아담 카드몬은 남성과 여성을 함께 갖춘 양성적인 존재인데 그 존재에서 남성인 아담과 여성인 이브가 분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카발리스트의 논리에 따르면 이브와 한 몸을 이루고 싶은 아담의 욕망은 원초적 인간인 아담 카드몬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인 셈이다.
예수 시대 이후 200년 간이나 풍미했던 그노시즘을 주창한 그노시스트(영지주의자)가 남긴 문서들은 인간의 창조는 양성적인 존재인 신의 아들 혹은 사람의 아들로부터 시작됐다고 했다.
‘도마 복음서’라고 알려진 책에는 어린아이를 놓고 예수와 제자들이 주고받은 대화가 기록돼 있다.
‘예수께서 젖 먹는 아이를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이 젖 먹는 어린아이 같아야 천국에 가느니라고 하였다. 제자들이 예수께 묻되, 그러면 우리가 어린아이가 되어야 천국에 갑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둘이 하나가 되고 안이 바깥같이, 위가 아래같이 될 때,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하나 되어 남자가 남자가 아니고 여자가 여자가 아닐 때 천국에 들어가느니라.’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 ‘사랑의 기술’에서 신의 발전단계를 말하면서 초기의 신은 모성의 신이고 그 다음 단계는 부성의 신(여호와)이며 그 다음 단계는 모성과 부성이 합해진 신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남성과 여성이 합해진 신이 더욱 발전된 신의 형태라고 본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원형을 예수에게서 찾았다.
인격체가 되고자 하는 ‘원초적 욕망’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여동생 루스 카터 또한 자신이 쓴 책, ‘마음의 병을 고치는 은사’에서 사람은 아버지의 사랑과 어머니의 사랑을 균형 있게 받지 못할 때 마음의 병이 생긴다고 진단하면서 예수를 통해 아버지의 사랑과 어머니의 사랑을 모두 받으면 그 병이 치유된다고 했다.
남자가 여자와 한 몸을 이루고 싶어하고 여자가 남자와 한 몸을 이루고 싶어하는 욕망은 연속성에 대한 희구일 뿐 아니라 양성성에 대한 희구라고도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좀더 나은 인격체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이 홀로 거처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한 것일까.
성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 있고, 사람이 남성과 여성으로 분화되어 서로 짝을 찾아 한 몸을 이루고자 애태우는 모습들이 신비롭기 그지없다.
참으로 성은 신비로운 축복이다. 그러나 그 신비를 범할 때 그것은 저주로 돌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