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고를 운영하고 있는 삼성측은 자립형 사립고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왔다.
9·5 재건축 시장 안정대책 발표 이후 서울과 분당 사이에 위치한 판교가 강남권을 대체할 초특급 주거부지로 떠올랐다. 10·29 주택시장 안정 종합대책 역시 판교를 포함한 신도시에 대한 기대심리를 자극했다. 그중 관심을 끄는 대목은 판교에 조성될 강남권 이상의 교육 인프라. 특히 ‘교육공무원’과 ‘전교조’의 반대로 수도권에서 뿌리내리기 어렵다고 알려진 자립형 사립고에 대한 인가 여부가 관심의 초점이다.
이미 건교부는 1만여평의 자립형 사립고 부지 확보를 포함한 판교 개발계획 수립을 마무리 짓고 관련부처와 협의중이다. 그러나 판교의 자립형 사립고가 화제가 된 이유는 건교부가 “중동고 재단측인 삼성에 자립형 사립고 설립 의사를 타진하고 있다”고 밝혔기 때문. 이에 몇몇 교육공무원과 사학 관계자들이 맞장구를 치고 나서면서 파장이 커졌다. 그 결과 부동산 시장은 중동고의 판교 이전 또는 제2 중동고 설립 추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강남권 주민들 역시 “중동고가 추진한다면 믿을 수 있다”며 높은 기대감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2 중동고’ 파문이 확산되자 건교부와 학교재단측은 근거 없는 낭설이라며 관련 설을 일축하고 나섰다.
“학교를 이전한다는 어떤 계획도 세운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고교평준화 제도는 수정돼야 하기에 우리는 꾸준히 자립형 사립고를 준비하겠습니다.”(중동고 정창현 교장)
이전 걸림돌 많아 분교 형식 대안 힘 실려
현재 전국에 단 6개 학교(전주 상산고, 횡성 민족사관고, 포항제철고 등)에서만 시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자립형 사립고는 선진국형 대안교육이라는 찬사와 ‘귀족교육’이라는 비난을 동시에 받고 있는 평준화 교육의 보완책이다. 그러나 학교재정과 학사운영 모두 교육부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는 매년 재단 부담금이 수십억원에 이르기 때문에 운영에 나설 주체가 많지 않다.
학교법인 중동학원(이사장 윤종용)은 고 이병철 전 삼성 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1995년 삼성이 경영을 맡은 이래 혁신적인 교육투자로 교육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첨단교실 및 학생과 교사의 해외연수 등에 매년 60억원 이상을 투자해 여타 사립학교의 질시 대상이 됐다. 더구나 지난 몇 년간 중동고가 내보인 자립형 사립고에 대한 욕심은 상상을 초월한다. 중동고의 한 교사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천재교육에 대한 지향이 평준화 교육에서 탈피해보고 싶다는 욕구로 분출된 것 같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강남에서 ‘귀족교육 불가’라는 정서를 극복하고 서울시교육감으로부터 자립형 사립고 인가를 받아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 절충안으로 정부가 판교에 특급부지를 내주고 경기도교육감을 설득하고 나선다면 이전 형식이든 분교 설립 형식이든 중동고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적인 제안이 될 수 있다. 게다가 판교가 부각되면 강남 집중현상이 완화될 수 있다는 기대심리 때문. 이에 대해 중동학원 서광열 법인사무국장은 “판교에 여건이 갖춰지고 난 후 경기도에 자립형 사립고 신청 여부를 결정하면 될 일”이라며 “학교가 섣불리 나서 교육청을 자극할 필요는 없다”고 논란을 피해갔다.
중동고는 그동안 강남 아파트 가격에 결정적 영향을 끼쳐왔다. 중동고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가 많고 교육의존도도 높아 학교를 타지역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막강한 동문회의 이전 반대 의견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결국 제2 중동고 설립 형식의 대안이 힘을 얻고 있다.
1만여평 특급부지에 자립형 사립고 설립이 허가된다면 욕심낼 만한 학교들은 적지 않다. 그러나 건교부가 삼성을 택해 이를 언론에 흘리고 나선 까닭은 삼성의 성공적인 중동고 운영과 자립형 사립고에 대한 강한 의지를 높이 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학교를 새로 세우기 위해서는 재단측이 1000억원에 가까운 돈을 쏟아 붓는 부담을 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판교가 강남의 성공적인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삼성의 결심이 중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