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모니터를 개발한 파버나인 이제훈 사장과 3D 모니터(작은 사진).
한국전자산업진흥회가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한 ‘2003 한국전자전’(10월8~12일)에 3D모니터를 선보인 이사장의 표정은 상기돼 있었다. 1년6개월의 연구 끝에 생산한 제품을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새로운 업종으로 사업다각화를 시도한 데다 아직 시장 자체가 형성되지 않은 제품인지라 관람객으로부터 어떤 반응이 나올지 조바심이 났던 것. 하지만 그의 얼굴이 환하게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3D모니터에서 펼쳐지는 컴퓨터게임을 직접 시연해본 관람객들은 저마다 탄성을 내질렀고, 삼성 LG 등 대기업 부스를 주마간산 격으로 둘러본 관람객들도 파버나인의 3D모니터 앞에선 이것저것 질문하며 높은 관심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그는 “걱정이 많았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반응이 뜨거워 힘이 솟는다”며 웃었다.
창업 14년 만에 매출 200억대 회사로 키워
3차원 입체영상 기술은 사실 파버나인에겐 생소한 분야다. 파버나인의 주요 생산품은 알루미늄을 이용한 전자부품. 파버나인은 삼성전자와 대우일렉트로닉스 등에 벽걸이TV 프레임과 스탠드를 납품하고 있다. 최근 수요가 크게 늘고 있는 대형 프로젝션TV의 프레임은 대부분 이 회사의 손을 거친 것이다. 이 회사가 전자부품에서 3차원 입체영상 분야로 사업을 다각화한 것은 중국의 도전에 제대로 맞서려면 인건비를 낮추는 ‘비겁한’ 전략보다는 고부가가치 기술로 중국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놓아야 한다는 이사장의 신념 덕이다.
3차원 입체영상은 향후 정보통신 게임 애니메이션 가상현실 CAD 의료 교육 군사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사용될 첨단기술이다. 차세대 디스플레이 산업은 한국의 미래 성장엔진의 하나로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이사장이 미래의 부가가치를 담보로 과감하게 투자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회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 기술 하나로 이를 극복해냈던 과거의 경험도 한몫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파버나인의 알루미늄 부품 사업은 공해산업으로 분류돼 중국으로 이전될 첫번째 업종으로 손꼽혔다. 다른 업체들이 중국 이전을 고민할 때 그는 고급 기술을 확보하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회사의 매출액이 채 100억원도 안 되는 상황에서 25억원을 들여 인공지능 자동화 설비인 ‘아노다이징 라인’을 갖췄습니다. 전략은 그대로 맞아떨어졌어요. 국내외 가전업체들이 벽걸이TV 대형냉장고 등 고급 가전을 출시하면서 고급 알루미늄 케이스를 선택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로 한동안 ‘먹고살 수 있는’ 투자효과를 거두게 됐지요.”
1989년 자본금 1200만원으로 파버나인을 창업해 200억원대의 매출을 기록하는 회사로 키워낸 이사장의 고급 기술에 대한 신념은 종교에 가깝다. 그는 “기술력은 강화하지 않고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해 인건비를 줄여보겠다는 생각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중국보다 한 발 앞선 기술력을 확보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이 중소기업의 살 길”이라고 강조했다. “2005년께부터는 3D모니터를 전 세계에 1000만대 정도는 팔 수 있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이사장의 기술의 대한 믿음이 어떤 결과를 나타낼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