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가 헷갈려.” 교육행정정보시스템, 일명 ‘나이스’는 전교조의 주장대로 인권 침해인가, 교육부의 해명대로 정당한 정보공개인가.
상대는 NEIS 저지를 외치며 투쟁에 나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여기에 NEIS의 일부 영역이 인권 침해 요소가 있다고 권고한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전교조를 훈수한 셈이 됐고, 참교육학부모회 등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이하 교육연대)와 참여연대가 NEIS 저지 투쟁을 지지했다.
“혼란 가중 … CS 복귀 땐 업무 거부”
이들을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NEIS를 ‘나이스’로 읽으면 찬성파, ‘네이스’ 혹은 ‘네이즈’로 읽으면 저지파일 가능성이 높다. 굳이 ‘교육행정정보시스템’ 혹은 ‘엔 이 아이 에스’라고 ‘꾹꾹 눌러’ 말하면 아직 입장을 정리하지 못했거나 대세를 따르겠다는 중도파로 볼 수 있다. 교육부가 공식 발표한 NEIS의 명칭은 나이스.
NEIS 저지를 위해 5월28일 집단연가투쟁을 선언해 놓고 배수진을 쳤던 전교조는, 26일 협상에서 교육부가 전교조의 안을 대부분 수용하기로 합의하면서 투쟁을 철회했다. 그러나 이로써 NEIS를 둘러싼 교육계의 갈등이 완전히 봉합된 것은 아니다. 전교조와 반대 입장에 있는 교총이 “교육부가 인권위 결정을 받아들여 기존 CS(학교종합정보관리시스템)로 복귀할 경우 18만 회원이 CS 업무 거부운동을 벌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이번 합의 소식이 전해진 후 “정부의 정책결정 유보는 학교현장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무책임한 짓”이라고 비난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NEIS 시행을 촉구해온 일부 학부모 단체 등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공식석상에서 전교조의 집단행동을 비난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뜻에 따라 NEIS 강행 불가피론을 펼쳤던 교육부 실무자들은 혈세 낭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매우 난처한 입장이 되고 말았다.
애초 윤덕홍 교육부총리는 부임 초부터 NEIS 사태 수습을 위해 전교조측과 직접 협상을 벌여왔다. 양측은 5월12일 인권위 권고가 나오기 직전 민주당 이미경 의원의 중재로 ‘교단 갈등에 대한 전교조의 대국민 성명과 NEIS 중단’을 골자로 한 합의안을 마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윤부총리는 성명서 내용 불충분과 교육부 내부의 반발을 이유로 합의안을 발표하지 않았고, 이어 전교조의 “NEIS는 인권침해” 주장에 힘을 실어준 인권위의 권고가 나오면서 상황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전교조는 총력투쟁을 앞세워 “무조건 인권위 권고대로”를 내세웠고 교육부는 ‘시행 불가피론’으로 맞받았다.
이어진 노대통령의 국무회의 석상 발언은 불난 데 기름을 부은 꼴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5월20일 전교조의 연가투쟁에 대해 “일개 교원단체인 전교조가 국가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면서 일방적으로 정부의 굴복을 요구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NEIS 시행을 반대하며 청와대 부근 인도 위에서 단식농성을 벌였던 전교조 집행부(위).인권위 권고안을 반대하고 NEIS 실시를 주장한 교총 이군현 회장 (아래 왼쪽)과 김수연 부회장.
이에 대해 김창국 국가인권위원장은 “교육부가 이미 예산이 집행됐고 학사행정에 혼란이 우려된다는 점을 들어 NEIS를 강행하려는 것은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전교조는 노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공식논평에서 “국가기관인 인권위의 ‘권고 수용’이 왜 ‘정부의 굴복’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인권과 정의보다는 법질서를 앞세우는 듯한 대통령의 잇따른 발언에 대해 ‘개혁은 이미 물 건너간 게 아니냐’고 배신감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맞받았다. 전교조 소속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노대통령이 문제를 해결한 게 아니라 오히려 갈등을 증폭했다”면서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게 만들어놓았다”고 안타까워했다.
지금까지 교육부가 내세운 ‘NEIS 불가피론’의 핵심은 세 가지. 첫째 당장 NEIS를 실시하지 않을 경우 엄청난 학사일정 혼란이 예상되며, 둘째 연가투쟁으로 인한 수업일수 손실로 학생들이 큰 피해를 보게 되고, 셋째 이미 NEIS에 투입된 예산 521억원이 고스란히 날아갈 뿐 아니라 기존 시스템 보안체제 구축을 위해 천문학적인 예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혈세 낭비’ 책임져야 할 판
이처럼 전교조와 교육부가 NEIS를 놓고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서로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마당에 마지막 협상에서 교육부가 전교조의 주장을 대부분 수용한 것은 지금까지 교육부가 주장해온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입증한 셈이 됐다. 이번 합의안에 따르면 △인권위의 권고를 수용하고, △도입문제를 전면 재검토하며, △올해는 고3에 한해 NEIS와 기존 시스템인 CS, SA를 모두 허용하되 내년부터 다시 CS로 전환하게 된다.
윤부총리는 “법률 전문가와 정보 정문가, 현장교사들로 교육행정정보화위원회를 새로 구성, 올해 말까지 인권침해, 관련 법률의 보완 등 모든 검토를 끝낼 계획”이라고 했다. 사실상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이다.
교육행정정보화위원회에 대한 논란은 출범 당시부터 있었다. 3월 교육부는 인권 침해 여부 등 교육행정정보화사업과 관련해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교육행정정보화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그러나 3월28일 첫 회의 소집 이틀 전에야 NEIS를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에게 개최 사실을 통보해 처음부터 함께 논의할 의사가 없었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후 전교조, 참교육학부모연대, 교육연대 등이 “교육부가 위원회를 구성하는 시늉만 해서 여론을 잠재우고 제 입맛대로 NEIS를 강행하려 한다”며 참가를 거부해 반쪽짜리로 출발했다. 교육부는 “전교조 및 관련 단체의 불참은 의견 개진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므로 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정책을 추진하겠다”며 강행 의사를 밝혀왔으나 이번 합의로 전면 재조정에 들어가게 됐다. 이번에는 교총측에서 교육행정정보화위원회 탈퇴를 선언하고 나섰다.
NEIS 사태로 가장 큰 상처를 입은 것은 윤덕홍 교육부총리다. 막판 극적 타결을 이뤄내긴 했지만 그동안 정책 혼선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합의안에 대해 전교조에 굴복했다는 빈정거림도 나온다. 이에 윤부총리는 “원칙에 따라 결정을 내린 것이지 어떤 단체에 굴복한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교총은 “특정 집단을 달래기 위한 정책적 야합”이라며 윤부총리를 비난하고 나섰다. 이군현 교총 회장은 5월19일 기자회견에서 정책혼선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며 윤부총리를 압박했다. “취임 초기에는 특정 단체 입장만 듣고 NEIS를 중단하겠다고 했다가 학교현장 방문 후에는 NEIS에 별 문제가 없다고 했다. 또 인권위의 권고를 수용하겠다고 섣불리 표명하는 등 입장이 오락가락하고 있다.” 또 이회장은 윤부총리가 NEIS문제뿐만 아니라 교장단과의 간담회에서는 학교장의 권한을 강화하겠다고 하고, 학부모 간담회에서는 학부모회, 교사회를 법제화하겠다고 밝히는 등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전교조가 소속해 있는 교육연대도 윤부총리에 대한 시선이 고운 것만은 아니다. 교육부와 전교조가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대결국면으로 치닫던 5월23일 교육연대측은 ‘노무현 대통령께 보내는 공개서한’을 발표하고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을 촉구했다. 공개서한을 발표한 함께하는 교육시민모임 대표 김정명신씨는 “NEIS 문제는 이제 교육부총리도 풀 수 없는 문제”라며 “NEIS를 둘러싼 교육계의 갈등과 대립이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지 않도록 대통령이 적극적인 중재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윤부총리의 역할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가장 큰 상처 입은 교육부총리
이처럼 윤부총리의 입지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참여정부의 교육개혁 일정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이들이 많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참여했던 한 교육전문가는 “NEIS 문제에 끌려다니느라 새 정부 출범 이후 교육부가 한 일이 없다”고 지적하면서 “당장 참여정부 교육개혁의 중심이 될 ‘교육혁신위원회’를 구성해야 하는데 각 단체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려 자기 사람 심기에만 몰두해 있는 상태”라고 개탄했다.
교육부가 어렵사리 한쪽 매듭을 푸는 동안 다른 쪽 매듭이 엉켜버렸다. 교총은 교육행정정보화위원회 탈퇴를 포함해 향후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 일체 참여하지 않고 ‘정책 불복종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전국 16개 시·도 교육감들이 교육부 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해 사실상 이번 정부 결정을 반대했다. NEIS 중단의 후유증은 새로운 교육대란을 예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