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료첨가제인 세녹스를 전국 주유소 중 가장 먼저 판매한 인천의 한 주유소. 현재는 세녹스를 판매하는 주유소는 없다(왼쪽). 세녹스 수송차량.
3월12일 한 중앙 일간지에 ‘신임 산업자원부(이하 산자부) 장관께서는 석유산업과가 이런 일을 해온 것을 아십니까’라는 제목으로 실린 광고 내용이다. 대체로 기업이란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독자들로서는 ‘산자부가 이 기업에 얼마나 못되게 굴었으면 ‘불경죄’를 무릅쓰고 이처럼 산자부를 정면공격할까’ 하는 생각을 할 법도 하다.
이 광고를 낸 업체는 연료첨가제 세녹스 제조업체 ㈜프리플라이트. 한마디로 이 회사의 논리는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값도 싸고 환경오염도 줄일 수 있는 대체연료를 개발했는데, 상을 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죽이려’ 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산자부의 이런 태도는 결국 정유회사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것이다.
세녹스란 프리플라이트측이 솔벤트 톨루엔 메틸알코올을 각각 60대 30대 10의 비율로 섞어 만든 자동차 연료첨가제. 지난해 6월부터 국내 시판에 들어가 최근에는 하루 평균 50만ℓ정도 팔리고 있다. 이는 승용차 2만~3만대의 연료통을 가득 채울 수 있는 분량으로, 업체측은 이나마도 없어서 못 파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최근에는 세녹스 인기에 힘입어 ‘LP파워’ ‘ING’ 등 유사 세녹스도 선보이고 있다.
“환경부 무지로 연료첨가제 인정”
세녹스가 이처럼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휘발유에 비해 값이 싸 이를 휘발유 대용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늘고 있기 때문. 현재 세녹스는 1ℓ에 990원에 판매되고 있는 반면 휘발유는 ℓ당 1400원 수준에 이르고 있다. 업체측은 “환경부에서 휘발유에 40%까지 섞어 사용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지만 일부 소비자들은 아예 휘발유 대신 세녹스만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그러나 산자부는 세녹스 근절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다. 석유사업법 26조를 위반한 전형적인 ‘유사 휘발유’로 불법제품이라는 판단 때문. 산자부 석유산업과 염명천 과장은 “지난 10월 검찰의 기소로 현재 1심 재판이 진행중인데 프리플라이트측은 이 재판을 질질 끌면서 최대한 판매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산자부는 최근 프리플라이트에 세녹스 주원료인 솔벤트를 공급하지 말라고 용제 생산·유통업체에 조정명령을 내려 강력한 단속의지를 보였다. 염과장은 “현재 프리플라이트측은 판매 점포당 5000만원 정도의 선납금을 받고 세녹스를 공급하고 있는데 업체측이 도피할 경우 판매업소의 피해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현행 석유사업법은 유사 석유제품의 제조 보관 판매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 석유제품(특히 휘발유)에 고율의 세금이 부과되고 있기 때문. 휘발유 소비자가격이 ℓ당 1300원이라고 가정하면 정유사 출하가격이 350원 안팎, 교통세 등 내국세가 860원 정도, 대리점 및 주유소 마진이 100원 정도 된다. 세금이 출하가격의 250%나 되기 때문에 탈세 유혹을 강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산자부가 국세청에 통보, 세녹스에 휘발유와 동일한 세금을 부과하도록 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프리플라이트 관할 세무서인 목포세무서는 지난해 6~12월까지 세녹스 판매물량에 대해 99억원의 세금을 부과했다. 반면 같은 기간 동안 프리플라이트 매출액은 87억원 정도. 총 매출액보다 세금 부과액이 많은, 기형적 기업인 셈이다. 프리플라이트측은 현재 1억원만 납부하고 나머지는 연기해놓은 상태에서 국세심판을 청구해놓았다.
주유소 관계자들도 세녹스 판매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한국주유소협회(이하 주유소협회) 이규홍 부회장은 “현재 대전 충남 지역 주유소의 경우 세녹스 때문에 평균매출이 30~40% 정도 감소하고 있는 상태”라고 하소연했다. 주유소협회는 자구책으로 3월14일 세녹스와 LP파워, ING 등 전국의 첨가제 판매소 402곳을 석유사업법 위반 혐의로 각 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프리플라이트측은 산자부가 주유소에서의 판매를 금지하자 소방법에 의해 위험물 저장취급소 허가를 받은 전문 판매점 등에서 판매를 강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 프리플라이트측은 세녹스는 유사 휘발유가 아니라 환경부가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라 허가를 내준 연료 ‘첨가제’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산자부가 석유사업법을 적용해 취하는 모든 조치는 난센스라는 것이다. 프리플라이트 전형민 부사장은 또 “검찰이 석유사업법 26조를 근거로 기소해놓았지만 이 조항에 위헌 소지가 많아 헌법소원을 제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산자부와 프리플라이트측의 공방이 가열되면서 정작 혼란스러운 것은 소비자들. 급기야 시민단체인 녹색소비자연대는 3월14일 “연료첨가제에 대한 공방이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현재의 법적인 구조에서 정보가 없는 소비자들이 가장 피해를 보고 있다”면서 “정부는 연료첨가제에 대한 적극적인 기준과 검증 체계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산자부와 프리플라이트 중 어느 쪽 주장이 타당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현행 대기환경보전법상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해 세녹스를 연료첨가제로 인정받은 프리플라이트측에 환경부가 당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알고 보면 세녹스가 별것 아닌데도 무슨 대단한 연료첨가제로 인정한 환경부의 잘못이 크다는 얘기다. 일부 전문가들은 “환경부의 ‘무지’가 드러난 전형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전주의 한 세녹스 전문 판매소. 소방법에 의해 인가를 받았다.
프리플라이트측은 또 세녹스를 휘발유와 섞어 사용할 경우 연비가 10% 정도 향상되고 세녹스에 함유돼 있는 알코올 성분이 엔진을 세척하기 때문에 자동차 수명이 길어질 뿐 아니라 대기오염도 크게 개선된다고 주장한다. 국립환경연구원의 검사 결과 세녹스를 혼합 사용한 경우 휘발유만 사용한 것에 비해 일산화탄소 34%, 탄화수소 25%, 질소산화물 25% 저감 효과가 나타났다는 것.
그러나 전문가들은 연비가 10% 향상된다는 것은 이론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순천대 자동차공학과 김현우 교수는 “자동차 대체연료 개발에서 가장 먼저 고려되는 게 메틸알코올이었지만 여러 문제 때문에 현재는 고려되지 않고 있다”고 전제, “세녹스에 포함돼 있는 메틸알코올이 오히려 엔진 효율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연비가 좋아질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교수는 이어 “세녹스가 값이 싸기 때문에 소비자의 연료비 부담이 적게 든다는 의미에서 연비가 향상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자동차 배기가스가 저감된다는 프리플라이트측의 주장도 마찬가지. 메틸알코올이 함유돼 있어 엔진의 연소 온도가 낮아지기 때문에 일산화탄소나 탄화수소, 질소산화물 등 배기가스가 적게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포름알데히드라는 발암물질이 배출된다. 프리플라이트측은 이에 대해 “의도적으로 이를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은 게 아니라 현행법으로는 포름알데히드가 검사 항목에 포함돼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업체측 “정유사 첨가제만 괜찮나”
물론 틀린 얘기는 아니다. 현행 대기환경보전법에는 연료첨가제 적합 여부 검사에서 포름알데히드에 대한 규제치가 없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프리플라이트측이 현행 대기환경보전법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한 셈”이라고 말한다. 자동차공학을 제대로 모르는 환경부가 프리플라이트측에 당했다는 얘기다.
환경부는 뒤늦게 연료첨가제 기준을 모호하게 ‘소량’으로 규정하고 있는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을 개정, 올 6월부터 1% 이내로 제한하기로 했다. 환경부는 또 프리플라이트측이 첨가제 제조기준에 대한 적합 여부를 검사받은 사실을 환경부의 제조 허가나 인가를 받은 것처럼 부당하게 표시 광고해 소비자들을 속이고 있다면서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에 제소했다.
그러나 환경부의 이런 조치는 프리플라이트측의 ‘반발’만 불러일으키고 있다. 첫 단추를 잘못 꿴 데 따른 수업료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 프리플라이트 관계자는 “현재 정유회사들은 MTBE라는 첨가제를 10% 정도 혼합하고 있는데, 정유회사의 첨가제는 괜찮고 다른 첨가제는 안 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박했다. 또 “환경부의 공정위 제소는 산자부 석유산업과의 ‘압력’에 따른 결과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정당하게 대처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상식적으로 휘발유에 10% 이상 섞는 제품을 단순한 첨가제로 볼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아울러 수십년 동안 많은 연구와 도전이 있었지만 현행 자동차 연료로 휘발유만큼 효율 높고 편리한 연료는 개발하지 못한 상태라는 점을 소비자들이 명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싼 게 비지떡’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