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기 시작했다. 후두둑거리면서. 맨살로 파고드는 빗물이 체온을 빠르게 끌어내렸다. 엄습해오는 추위에 이빨이 덜덜거렸다. 체력은 바닥나고 다리는 따로 놀았다. 마중 나온 가족들과 만나기로 한 결승선은 아직 보이지도 않는데…. 그러나 출발선의 다짐만은 버릴 수 없었다. ‘포기는 곧 실패’라며 이를 악물지 않았던가. ‘파이팅’을 외치는 딸아이에게는 주먹을 쥐어 보이지 않았던가. 길바닥에 주저앉지만 않으면 성공이었다. 그리고 또 한참이 지났다. 42.195km의 고독한 질주를 마치고 결승점에서 얼싸안은 ‘철각’들. 그들은 다름아닌 자랑스런 우리 아빠, 그리고 사랑스런 나의 남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