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정부의 개혁이 미완으로 끝난 것은 공공 부문에서의 개혁이 불충분했기 때문이다. 2000년 2월 청와대에서 열린 4대 부문 개혁 보고대회.
노무현 정부도 참여정부를 기치로 내세우며 출범과 더불어 정부개혁에 대한 결의를 새롭게 다지고 있다. 386 운동권 출신들을 대통령비서실 비서관으로 대거 포진시키고 행정자치부, 법무부, 문화관광부 등의 장관에 의외의 인물을 배치하여 ‘혁명적인 수준의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5년 뒤 그 성과가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에 대한 기대와 우려는 교차한다. 개혁은 의욕이나 사람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주도면밀한 기획과 집행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의 관료개혁이 실패한 이유는 많다. 개혁 추진세 력이 정치적 계산에 몰두하고 관료들을 개혁 과정에 동참시키지 않아 객체로 전락하게 한 것도 중요한 이유다. 미비한 법제도의 개혁과 사람 위주의 개혁으로 법치주의 대신 인치주의가 판을 치게 만들었다. 그러한 타율적인 관료개혁이 실패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의욕보다 주도면밀한 기획·집행 필요
우리와 달리 영미권의 선진국들은 이미 10여년 전에 정부개혁을 대대적으로 추진하여 21세기에 성공적으로 대비했다. 미국 영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싱가포르 등이 대표적인 나라들이다. 일본도 1995년 이후 총리가 책임자가 되어 정권의 명운을 걸고 대(大)부처주의 원칙에 따라 정부조직을 1부 22성청에서 1부 12성청으로 크게 감축하고 할거주의를 척결하는 개혁을 거국적으로 추진중이다. 여기에는 산하기관이나 국립대학의 대대적인 통폐합도 포함된다.
세기적인 변화의 요구를 바탕으로 출범한 노무현 정부가 개혁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몇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첫째 관료개혁을 정략적인 차원이 아니라 공공 부문의 혁신을 목표로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 역대 정부가 선거 승리라는 정략적인 계산을 바탕으로 개혁의 속도나 범위를 인위적으로 조절하여 개혁을 그르쳤고 선거에도 실패했던 점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둘째, 정부개혁을 사회개혁이나 정치개혁 및 시장개혁의 모범으로 삼을 수 있도록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추진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가 IMF 외환위기 이후 기업, 금융, 노동, 공공 부문이라는 4대 부문 구조조정을 범국가적으로 추진하면서도 금융개혁이나 기업개혁과 달리 공공 부문에서 개혁의 속도가 늦고 내용이 불충분해 국가개혁을 그르친 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미진한 공공 부문 개혁은 기업이나 금융 등 민간 부문의 초기 개혁 성과를 퇴색시키고 노동 부문으로 개혁을 확산시키지 못해 정권운영에 부담이 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특히 ‘4류 정치’ ‘3류 행정’ ‘2류 기업’이라는 사회적 인식에 비추어 정치행정 개혁이 더욱 시급한데도 스스로의 개혁에는 소극적이고 상대적으로 더 나은 민간에만 개혁을 강요한 것은 개혁의 정당성과 도덕성을 의심케 했다. 셋째, 관료집단을 개혁의 자율적인 주체로 삼고 제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위로부터의 개혁이나 타율적인 개혁에는 한계가 있다. 국정운영의 노하우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조직인 관료조직의 개혁을 타율적으로 강요할 경우에는 ‘복지부동’이나 ‘복지안동’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장ㆍ차관은 물론 실ㆍ국장이나 내부관료들이 스스로 개혁경쟁을 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책관리나 업무평가도 개혁의 시각에서 제도적으로 접근해야 중앙개혁기구의 개혁방안이 현장에서 실천될 것이다. 이때 예산과 인원관리를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관료개혁은 자율과 솔선수범의 원칙하에 법제도에 따라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외부의 시민단체나 노조 및 언론의 여론몰이는 개혁을 일회성 이벤트로 만들 가능성이 많다. 어느 나라에도 대중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으로 정부개혁이 성공한 예는 없다. 정도를 걸을 때만이 성공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