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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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람들은 몇 번을, 어떻게 하나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03-03-05 13: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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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사람들은 몇 번을, 어떻게 하나
    ‘다른 사람들은 몇 번이나 할까, 또 어떻게 할까, 늘 만족할까?’ 문득 이런 호기심에 사로잡혀도 친지나 직장 동료들에게 정색을 하고 묻기에는 너무나 쑥스러운 질문이다. 대신 프랑스 사회학자 자닌 모쉬 라보가 140명에게 내밀한 성생활에 대해 물었다. ‘현대인의 성생활’은 저자가 1999년부터 2001년까지 프랑스에 거주하는 다양한 계층, 인종, 직업의 남녀 140여명과 일대일로 만나 심층 인터뷰를 한 결과다.

    이 책은 ‘성에 대한 최초의 자각과 첫경험’ ‘사랑을 하는 여러 가지 방식들’ ‘행복한 성을 위협하는 것들’ ‘그들에게도 사랑할 권리가 있다’ 등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솔직히 ‘오르가슴’이 궁금하다면 책의 순서에 관계없이 곧장 제2부 4장 ‘성생활의 다양한 모습들’을 펼쳐라. 저자는 현대사회가 성적 쾌락을 금기시하기보다 더 자주, 공개적으로 언급함으로써 오히려 사람들에게 쾌락에 대한 일종의 의무감 같은 것을 갖게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13.4%의 남성과 31.8%의 여성이 오르가슴과는 인연이 없다.

    도대체 무엇을 성적 쾌락이라 하는지도 분명치 않다. 여자들이 말하는 오르가슴을 요약해보면 파도 혹은 물결의 이미지, 상대방과의 일체감, 자기 자신이 아닌 것 같은 느낌, 그리고 쇼크(마비·경련)로 나타난다. 남자들도 비슷한 반응이지만 표현하는 방법에 차이가 있다. 그들은 충만, 마음의 평온 혹은 깊은 만족, 자신을 비우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애정 없는 성적 쾌감이 가능한가라는 민감한 질문에 대해 여자들은 대체로 성적 쾌락은 애정을 전제로 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이 말을 뒤집으면 애정이 식으면 외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남자들의 경우 대다수가 섹스를 위한 섹스가 가능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오늘날 젊은 여자들도 더 이상 쾌락을 위해 ‘위대한 사랑’이 필요하지는 않다. 유감스럽게도 애정과 섹스의 밀착도는 점점 떨어지고 있다.

    이 책에서는 오르가슴 외에도 다양한 성생활의 면면이 가감 없이 이야기된다. 전희를 둘러싼 남녀갈등, 애무와 성교를 겸한 오럴 섹스, 침대 위의 주도권 싸움, 자위행위, 항문성교, 아내와 애인의 차이, 그룹 성교, 스와핑, 이중생활 등이 현장체험과 함께 공개됐다. 특히 항문성교에 대해서는 끔찍하다는 반대파와 쾌감이 훨씬 강해진다는 찬성파의 목소리가 모두 실려 있다.



    어느 정도 호기심이 충족됐다면 다시 목차로 돌아가보자. 1부는 남녀의 첫경험에 초점을 맞췄다. 첫경험은 누구나 거치는 통과의례. 보통의 프랑스 여자들은 평균 21.3세에 첫경험을 하지만 어린 그룹일수록 첫경험의 시기가 빨라지고 있다. 그리고 남자들은 만지려는 충동과 자위에 몰두하다 대개 연상의 여자와 첫경험을 한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2부 ‘사랑을 하는 여러 가지 방식들’은 평생 남자가 11명, 여자가 3.3명의 성 파트너를 갖는다는 통계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이런 수치의 이면에는 함정이 있다. 남자들은 파트너 수를 부풀리려는 경향을, 여자들은 줄이려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또 성 파트너를 삽입까지 한 경우로 제한할 것인가, 오럴 섹스를 한 경우도 포함시킬 것인가에 따라 숫자는 달라진다. 그러나 평생 상대한 파트너 수를 세는 것보다 사람은 왜 사랑에 빠졌다가 헤어지게 되는지를 살펴보는 쪽이 더 의미가 있다. 이별의 이면에는 상대의 죽음, 서로 다른 가치관과 성적 취향, 가정폭력, 임신, 불륜 등이 자리잡고 있다.

    이 책의 3부와 4부는 소외된 이들의 성 문제를 다룬다. 성폭력과 종교적 억압에 의해 뒤틀린 성의 피해자는 대부분 여자들이라는 사실과 동성애자, 양성애자, 성전환자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사실 4부의 제목 ‘그들에게도 사랑할 권리가 있다’는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다. 저자는 자칫 흥밋거리로 전락할 수도 있는 140명의 성체험을 그들의 숨소리까지 들릴 만큼 자세히 전달하면서, 성에서 정상과 비정상이란 없다는 신념을 분명히 드러낸다. 심지어 여성으로 성전환을 한 뒤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고 가족과 함께 사는 샤를로트(가명)도 ‘변태’라는 손가락질 대신 자신이 인정한 ‘성’을 가지고 살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현대인의 성생활’이 한국의 현실과 거리가 멀다고 지적하는 이들에게 역자인 정장진씨는 이렇게 충고한다. “이 책에 인용된 수많은 증언들은 우리가 알아야 할 현실일 뿐이다. 이 증언을 듣고 놀라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은 현실을 잘 몰랐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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