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택 의원이 해양수산부 장관 재임중이던 2001년 7월 국회에서 해수부 간부와 함께 답변 내용을 상의하고 있다.
자유민주연합(이하 자민련)에서 미묘한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충북 진천-괴산-음성 출신 재선의원인 정우택 의원이 서서히, 그러나 눈에 띄게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김종필 총재가 정의원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자민련 한 고위 당직자는 “2002년 12월27일은 자민련 내 역학구도가 바뀐 전환점”이라고 말했다. 이날 자민련 당무회의에서 정의원은 당발전쇄신특별위원회(이하 쇄신특위)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김총재가 당무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나흘 전 김총재가 쇄신특위 설치 방침을 밝혔을 때 이미 김총재 주변에선 “위원장은 정의원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김총재의 의중이 반영된 인선이었다는 것이다.
현재 쇄신특위엔 김학원 의원 등 김총재 측근 의원들을 포함해 당내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이 기구는 당 지도체제 개편, 당명 개정, 전당대회 시기 및 절차 결정 등 당헌·당규 개정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단순 자문기구가 아니라는 게 자민련측 설명이다. 김총재의 한 측근은 “쇄신특위에서 결정된 대로 자민련 개혁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위원장 임명은 세대교체 포석?
올 들어 쇄신특위 활동은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정우택 위원장은 매주 2, 3차례 쇄신특위 회의를 열어 개혁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쇄신특위로 자민련의 무게중심이 쏠리면서 자연히 정위원장의 당내 위상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쇄신특위는 3, 4월 전당대회를 열어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로 당 지도부를 개편하는 안을 추진중이다. 대표최고위원 또는 당의장을 두고 그 아래 최고위원들로 지도부를 구성한다는 안이다. 대표는 경선으로 선출하는 안이 검토되고 있다. 이와 관련, “세대교체, 낡은 정치 청산, 정당개혁 바람에 부응해야 자민련이 재기할 수 있다”는 당내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3, 4월 전당대회를 통해 JP가 2선 퇴진하는 안이 현재로선 무게를 얻고 있다는 얘기다.
자민련 일각에선 “정의원을 당대표 등 ‘자민련의 간판’으로 내세워 내년 총선을 준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정의원도 기자에게 “비슷한 얘기를 듣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욕심은 없다. 내가 무엇을 맡겠다는 생각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정의원측은 쇄신특위 위원장에 임명된 직후 “정의원은 50세로 젊음, 개혁성, 합리적 보수 이미지를 갖고 있고 장관·당 정책위 의장 등 정책 경험도 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다. 이회창 후보 낙선과 철새정치인 시비로 한나라당 충청권 현역 의원들의 입지가 흔들리는 데다 민주당은 여전히 충청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게 자민련의 분석이다. 새 인물을 내세워 자민련을 개혁하면 총선에서 충청권 기반을 다시 구축할 수 있다는 논리다. 자민련 고위 당직자는 “김총재가 정의원을 쇄신특위 위원장으로 임명한 것은 ‘자민련 세대교체’를 위한 포석이라는 관측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인제 총재권한대행의 정치적 행보는 어두운 밤길을 걷고 있는 형상이다. 경선 재불복 시비를 아직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것. 지역구인 충남 논산의 대선 득표율에서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크게 앞선 것도 부담이다. 이대행은 대선 이후 침묵하고 있다. 쇄신특위 위원장 임명장 수여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최근 이대행은 정위원장과 점심을 함께 했다. 정위원장은 기자에게 “이대행이 대선 때 자민련 분위기를 이해하지 못한 측면이 있는 것 같았으나 향후 행보에 따라 이대행의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자민련은 ‘2004년 총선 충청 사수’와 ‘차세대 충청권 대표주자 양성’이 현실적 과제다. 이를 놓고 김총재, 이대행, 정위원장 3자 간 긴장과 협력관계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