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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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고대 유적들 ‘풍전등화’

제2 걸프戰 초읽기 문화유산 파괴 불 보듯 … 일부 수집가는 수집품 목록까지 작성

  •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입력2003-01-16 14: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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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라크 고대 유적들 ‘풍전등화’

    유물을 청소하고 있는 이라크 국립박물관 직원(큰 사진). 우르에서 출토된 하프의 금제 장식(작은 사진)으로 4500여년 전에 수메르인들이 만들었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이 바미안 석불을 산산조각으로 만들었을 때 전 세계의 문화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떤 이유에서건 간에 재생이 불가능한 문화유산을 파괴하는 것은 인류에 대한 중대한 범죄행위다.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2년이 지난 지금, 또 한 번의 야만적 행위가 저질러질 위기에 처해 있다. 바로 바미안 석불 파괴를 가장 맹렬하게 비난한 미국에 의해서다. 미국의 대(對)이라크 전쟁이 초읽기에 들어간 만큼 이라크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고대의 문화유산들은 바람 앞에 선 촛불과도 같은 운명이다.

    이라크는 흔히 말하는 ‘4대 고대문명’ 중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발생한 지역이다. 이곳에서 세계 최초의 도시인 ‘우르’가 탄생했고 수메르, 아시리아, 바빌론 등 여러 제국들이 융성했다.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세계 최초로 문자 기록을 남겼고 처음으로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누었다. 이들은 또 어떤 인류보다 먼저 도자기 그릇에 밥을 담아 먹은 문화인들이었다.

    바빌론 등 1만여곳 유적 존재

    이라크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성지이기도 하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에덴동산은 바로 현재의 이라크 지역에 자리하고 있었다. 우르는 유대교와 기독교가 모두 신성시하는 인물 아브라함의 고향이다. 때문에 이라크에는 아직도 구약성서의 흔적이 적지 않다. 예를 들면 바그다드 북쪽 40km 지점에는 구약성서에 ‘죄의 도시’로 묘사되었던 아시리아의 수도 니느웨의 유적이 남아 있다. 니느웨에 있는 네비 유니스 모스크에는 고래뼈가 전시되어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이 고래뼈는 바다에 빠진 선지자 요나를 꿀꺽 삼켰던 문제의 고래라고 한다.

    중세에 들어 기독교 성지이던 이라크는 이슬람의 중심지로 변모했다. 이슬람 성전인 모스크는 이라크에서 태어나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바그다드는 중세 당시 가장 세계적인 도시였다.



    이라크 고대 유적들 ‘풍전등화’

    바빌론 느부갓네살 2세 왕궁에 있는 사자석조상.바빌론의 성벽들. 이라크의 유적들은 91년 걸프전 당시 지진에 버금가는 피해를 입었다. 바그다드의 이라크 국립박물관 내부(위 부터).

    그러나 이 같은 이라크의 문화유산들은 이미 1991년의 걸프전 때 큰 손상을 입었다. 우르 근처에 있는 지구라트(메소포타미아 시절에 지어진 신전 건축물. ‘바벨탑’ 역시 바빌론에 지어진 지구라트였다)에는 미 공군의 공습으로 지름 10m의 커다란 구멍들이 400여개 이상 뚫렸다. 우르 남동쪽에 있는 알람 성벽에도 기관총 공격으로 인한 구멍들이 수도 없이 나 있다. 이 밖에도 바그다드, 바스라 등에 있는 고대 건축들이 연속된 폭격으로 지진에 버금가는 피해를 보았다고 전해진다.

    시카고 대학 동양학연구소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연구하는 맥과이어 깁슨 교수는 “걸프전 당시 아홉 군데의 박물관이 불타고 3000여점의 문화재가 소실되었다”고 밝혔다. 유네스코는 이라크 고대 건축과 문화재들이 입은 피해에 대한 정밀조사를 실시하자고 주장했지만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유네스코의 제안을 거부했다.

    이라크에는 아직도 1만 곳에 달하는 고대유적들이 존재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매거진’이 소개한 바에 따르면 바그다드 교외에 있는 크테시폰 왕궁은 걸프전 때 상당 부분 파괴되었다. 전문가들은 다시 한번 전쟁이 벌어지면 높이 30m에 달하는 파르티아 왕국의 성벽과 왕궁이 산산조각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또 이라크 국립박물관은 4000여년 전에 만들어진 은제 하프 등이 전시된 세계적 수준의 고대유적 박물관이지만 수도 바그다드에 위치하고 있어 전쟁이 난다면 집중 폭격을 피할 수 없는 처지다.

    이외에도 함무라비 법전과 바벨탑의 고향인 바빌론, 아시리아 제국의 왕궁이 있었던 님루드, 9세기에 지어진 모스크를 비롯해 많은 이슬람 유적들이 남아 있는 사마라, 5000여년 전에 건설된 고대도시 에르빌 등은 세계적인 유적지로 손꼽힌다. 미국의 고미술사학자들은 이라크의 유적 지도를 미 국방부에 전달하며 유적의 피해를 최소화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미군이 ‘적국’인 이라크의 문화유산에까지 신경을 쓸지는 미지수다. 미국은 전쟁에서 문화·종교 유적을 공격 목표로 삼지 못하도록 규정한 1954년의 헤이그 협정에 가입하지 않았다.

    이라크 고대 유적들 ‘풍전등화’

    이라크 각지에서 출토된 유물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이라크에 남아 있는 수많은 유산들이 걸프전 이후 유럽과 미국, 일본 등의 골동품 시장으로 속속 빠져나가고 있다. 깁슨 교수는 문화재의 소실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가 이라크 문화재의 불법적인 해외 반출이라고 말한다.

    이라크의 유물들은 1960년대 중반까지 고미술 시장에서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고가에 거래되었다. 고대 성벽에 붙어 있던 부조가 1200만 달러에 거래된 일도 있었다. 58년의 이라크 혁명 이후로 이라크의 고고문화부는 유물의 국외 반출을 금지했다. 때문에 60년대 이후로 이라크 국외에서 이라크의 유물을 볼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걸프전 이후 이라크에 가해진 서방국가들의 경제제재 조치와 이어진 경제난은 이 같은 법률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도굴꾼들은 우르 등 사막지역에 있는 각종 유적과 무덤들을 파헤쳐 조금이라도 돈이 될 것 같은 유물을 모조리 걷어 갔다. 이 유물들을 밀수꾼 조직이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요르단 등으로 빼돌렸다. 이라크와 요르단 국경에서 세관에 압수된 유물만으로도 국립박물관 하나를 채울 수 있을 정도였다.

    심지어 도굴꾼들은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마저 훔쳐 갔다. 국립박물관들이 경영난으로 인해 직원과 경비원들을 무더기로 해고했기 때문이다. 특히 지방의 박물관들은 도둑과 밀수꾼 천지가 되고 말았다. 이라크의 건축가이자 외교관인 니자르 함둔은 “전쟁 이후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유물이 이라크 각지의 박물관에서 사라졌다”고 말했다.

    90년대 중반부터 런던과 뉴욕, 도쿄 등지의 고미술상에서 이라크의 문화재들이 비싸게 팔리기 시작했다. 주로 토기나 점토판 등이지만 이중에는 제법 덩치가 큰 유물도 있었다. 컬럼비아 대학 고고학과의 존 러셀 교수의 증언에 따르면, 1990년까지 니느웨의 센나체렙 왕궁에 있던 거대한 부조가 세 조각으로 나뉘어서 국제 미술품 시장에 등장했다고 한다.

    다시 한번 전쟁이 난다면 이라크의 유물들은 어떤 운명을 맞을까. 깁슨 교수는 “수집가들에게 이번 전쟁은 미술품 수집의 황금시대나 다름없다”며 몇몇 수집가들은 이미 수집품 목록까지 작성해둔 상태라고 개탄한다.

    바미안 석불 파괴 당시 미국의 CNN 방송은 파괴 장면을 생중계로 전달하며 이 ‘야만적인 행위’를 소리 높여 규탄했다. 그렇다면 미국식 정의의 이름으로 자행될 또 하나의 파괴 행위는 어떻게 규정되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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